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
셋째 딸과 손자가 우리 집에 다녀갔다
지난 목요일, 셋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 엄마 나 주말에 군산 내려갈 거예요."그래, 그러렴" 하고 대답했다. 왜? 무슨 일로? 물어보면 불편해할 까 봐 묻지 않는다. 상대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요즈음 사람은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복잡한 건 피하고 머리를 를 쉬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삶이 복잡할수록 때때로 몸도 마음도 쉬고 싶은 때가 있다. 엄마는 어쩌면 방석 같은 존재다. 딸들이 쉬고 싶을 땐 언제나 내어 주는 자리, 그저 바라만 보아주고 원하는 걸 하도록 인정해 주면 된다. 마음이 힘들 땐 말없이 같이 있어만 주면 되는 것이다.
딸네가 이사를 간 곳은 시댁이 바로 보이는 같은 아파트에서 산다. 어른들이 좋으신 분들이라 불편하게는 안 하지만 며느리인 딸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을 수 있고. 남편과도 온종일 같이 있다 보면 불편한 일도 있을 수 있다. 사랑이란 서로의 구속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엄연히 개체이고 다른 인격체인데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구속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몇 년 전 지인 따님 결혼식을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주례사가 지금 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서울대 교수님이란 분이 주례사를 하셨다. 그런데 주례사 어찌나 짧은지 기억이 오래도록 남는다. 아니 그만큼 공감을 많이 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두 부부에게 축하 말씀을 전한 뒤 " 신랑 신부는 사랑은 하되 구속은 하지 말라"는 말을 당부하고 끝이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하면서 간결한 주례사가 인상적이었다. 살면서 가끔씩 그 말을 생각해 본다.
가족도 서로가 다른 인격을 가진 다른 사람이다.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걸 못해 서로 부딪치고 갈등관계가 만들어진다. 남편과 나도 몇십 년을 살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갈등을 피하는 방법을 안다. 내가 먼저 상대를 인정해 주고 지고 사는 것이다. 어쩌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부도 거의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다 보면 서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에는 부딪치고 불편한 사항이 많았다. 그렇다고 맨날 다투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서로 적응이 되고 많이 달라졌다. 나는 남편의 삶을 이해하고 본인이 살고 싶은데로 생활하도록 침묵을 한다. 부부이지만 서로가 다른 개체의 삶이고 자유롭기를 원한다. 남편도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금도 본인 마음대로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다. 무조건 상대의 의견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타고난 기질이 있는데... 나는 참는다. 그게 내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딸이 우리와 함께 군산에서 살 때는 아무것도 신경 쓸 일이 없이 엄마 밥을 먹다가 이사 가서는 살림하랴, 일하랴 피곤한 일이다. 가끔씩 주부에서 벗어나 피난 가고 싶은 곳이 주부들은 엄마가 있는 친정이다. 친정이란, 딸들의 피난처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모든 걸 받아 주고 안아 준다.
나는 가끔씩 딸이 부럽다. 피난 나올 친정도 있고, 나도 때론 쉬고 싶어도 피난 갈 곳이 없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친정이 없어진다. 오로지 내가 살고 있는 집이 피난처다. 나는 딸들의 피난처인 것이다. 사람 사는 집은 어린애들이 있어야 삶에 활력이 있다. 11살 된 손자는 아직은 할아바지 할머니를 부르며 사랑한다고 하트를 날려 주고 애교를 부리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아가 형성되면 그 모습도 보기 힘들 것이다.
노부부만 조용히 살다가 손자와 딸이 오고 집안 분위기가 금방 다르다. 어제는 " 엄마 더운데 집 밥 신경 쓰지 말고 나가서 먹게요"라고 말한다. 나도 바라는 일이다. 딸은 맛집을 예약하고 맛난 것도 사준다. 사람이 사는 즐거움에 가장 큰 것이 먹는 즐거움이라 했다. 맛있는 걸 좋은 사람과 먹을 때 행복한 마음에, 마음이 흐뭇하다.
나이 드신 남편은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몇십 년을 집밥만 먹고살고 있으니, 때론 밥에서 해방되고 싶다. 가끔씩 멋진 식당에 와서 맛있는 것도 좀 먹고살아도 되련만 남편은 그러지를 못한다. 딸이 있어야 근사한 곳도 간다. 셋째 딸은 에너지가 많아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달란트가 있다.
딸은 요즘 일이 많다. 사람이 일이 많으면 머리가 복잡해서 몸과 마음이 피로가 쌓이기 쉽다. 젊어서는 일이 많아 생활이 피곤하다.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그중에 하나다. 또한 힘든 환경을 잠시 바꾸고 몸과 마음을 비우고 일을 잠시 쉬는 것도 방법이다. 딸이 쉬는 동안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삼일 동안 딸이 가져갈 음식 준비에 분주하다. 시장에 가서 알타리 무을 사서 무 김치도 담그고 실파도 사서 파김치를 담갔다. 장조림, 콩조림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박스에 하나 가득해서 실려 보냈다. 뭐 더 줄 것 없나, 찾아본다. 자식은 줄 수 있는 만큼 주고 싶다. 박스로 한가득 보내고 마음이 놓인다. 엄마 반찬으로 한참을 먹겠지.
이제 금방 셋째 딸과 손자가 차를 타고 살고 있는 용인 수지 자기 집으로 떠나가는 걸 보고 집으로 올라와 글을 쓰고 있다.
딸은 아들과 함께 지난 주말에 군산에 내려왔다가 친구도 만나고, 가고 싶은 곳도 다니고 나서야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은 살다가 때때로 숨을 쉬고 싶은 때가 있나 보다.
모든 생물을 숨을 쉬어야 하고 산소가 부족하면 아프다. 아프지 않도록 조율을 잘해야 한다. 엄마인 나는 딸들에게 산소 같은 역할을 하려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사랑이다. 딸과 손주가 떠난 자리는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처럼 훈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