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오늘도 아픈 친구 운전해 주려 병원으로 갔다
남편 친구가 아프다. 멀리사는 자녀들을 대신해 대리운전을 한다
어제도 비가 오고 오늘도 비가 계속 오고 있다. 여름 장맛비는 매년 거쳐야 하는 연례행사와 같다. 아랫녘 남쪽에서는 집이 무너지고 인명 피해까지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 온다. 장마가 오면 몸도 나른하고 마음이 우중충 괜 시리 착 가라앉고 만다. 먹는 것도 그저 냉장고 파먹기로 시장을 가는 것도 싫어지고.
요즈음 우리 집 남편은 다른 때와 달리 분주하다. 다름 아닌 아픈 친구 때문이다. 운전 못하는 친구에게 운전을 해서 보호자 노릇을 하고 있어서다. 남편 전화 벨소리가 쉴 사이없이 울린다. 날마다 친구는 아픈 곳 하소연을 한다. 몸이 아프고 힘들고 답답해서 그러겠거니 생각한다.
아마도 부인에게 말하는 것보다 친구에게 말하는 것이 더 편해서 그런가 보다. 사람이 아프면 마음부터가 고통스럽고 외로움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사는 게 허무해 지기 마련이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살짝 불편한데 남편은 참 어쩌면 저렇게 친구에게 다정히 조언을 해주고 저리 정성일까 싶어 놀란다.
남편 친구는 남편에게 마치 어린 해 보채듯 한다. 모든 것을 남편에게 물어온다. 응급실을 갈 때도 보호자가 따라가지를 않고 남편 차를 타고 가면서 살고 싶지 않다고 넋두리를 계속한다고 한다. 그런 말도 한두 번이지 듣는 사람은 우울하고 힘들 것이다. 남편 친구는 아픈 곳이 많기도 하다. 아플 때마다 전화로 어떻게 할까 물어보면 의사도 아닌 남편은 어떻게라도 도움이 되려고 본인이 알고 있는 상식 안에서 안내를 해 준다.
그분은 남편의 고등학교 친구다. 평소 건강할 때는 가끔씩 만나 몇 사람이 식사를 하고 우정을 나누던 사이다. 그런데 지난 구정 때 자녀들이 아버지 좋아하는 홍어를 사다 주었는데 그걸 먹고 식도에 걸려 수술을 하고 지금까지 다른 병이 함께 오면서 많이 힘든 상황이다. 남편은 매번 걱정을 하면서 "친구가 얼마 못 살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창밖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남편 친구는 자녀들이 넷이나 있지만 가까이 살지 못하고 직장 관계로 매번 올 수 없으니 남편이 자청해서 친구 도우미를 하고 있다. 남편도 적은 나이가 아닌 84세 나 되니 나는 걱정이 된다. 딸들은 아빠가 운전도 안 했으면 하고 자꾸 말리지만 알았다고만 하고 듣지 않는다. 남편이 운전을 안 하면 사실 나도 불편하다. 내가 가야 할 곳은 남편이 다 태워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시내만 잠깐 운전을 한다.
딸들이 아빠 운전을 말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자동차 사고를 내고 몸도 안 좋아한 동안 고생을 하고 경제적으로도 쾌 많은 지출을 해야 했었다. 나도 남편 차를 타고 다니면서 항상 불안하다. 사고 난 그때가 떠올라서, 그래서 되도록 시내가 아닌 먼 거리는 운전을 못 하도록 딸들은 권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도 비가 많이 오는데 남편은 친구를 태우러 익산에 있는 병원을 간다고 하니 불안했다. 나는 "언제까지 당신이 그분 보호자 노릇을 할 거야" 가족이 알아서 해야지 하고 약간 짜증 섞인 말로 말을 했지만 남편은 내 말엔 요지부동이다. 오후 2시가 못되어 병원엘 간 사람이 6시가 넘어도 오시지를 않는다.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마음이 불안하고 점점 걱정이 된다.
저녁 7시에 서점에서 김설 원 작가 강의가 있는데 남편 저녁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걱정을 하다가 나는 혼자 간단히 먹고 막 나가려는데 문을 열고 남편이 돌아오신다.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살짝 짜증이 나려 한다. 왜 인제 오시는데, 전화도 안 받으시고, 종합 병원을 가면 여러 가지 복잡하다고, 이것저것 검사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남편 친구는 검사할 것이 남아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혼자 오셨다고 말했다.
남편은 또 " 그 친구 오래 못 살 것 같아" 하면서 마음이 심란해하신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안됐다 싶어 마음을 누구려 뜨리고 저녁을 차려 드리고 서점에 강연을 들으려갔다. 강연을 들으며 소설 속 이야기들은 나를 더 슬프게 한다. 아무리 가상의 이야기 라 하지만 소설도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 이야기다. 삶이 고달프고 인간의 가장 어렵고 힘들게 살다가 죽는 사람들 이야기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 아픈 이야기들이 나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사람마다 부모에게 태어나 저마다 인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사람 살아가는 과정은 어찌 그리 아프고 애달픈지 마음이 시리다. 집에 돌아와서 부드러운 말씨로 남편에게 친구분 상황을 물어본다. 어찌 생각하면 남편이 건강해서 할 수 있는 만큼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감사하다고 마음을 돌린다.
친구는 남편이 얼마나 고마울까 생각이 들면서, 사람은 도움을 받을 때 보다 누구를 도움을 줄 때 홀가분하고 마음이 흐뭇하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꾸 귀찮고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성가시다.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 아닌 남편의 의리 있고 속 깊은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요즈음 보기 드문 '썩 괞찮은 남자' 구나 하고 미소를 지어본다. 괜히 불안한 생각으로 불편한 생각을 하지 말자, 너무 과민한 반응이 내 마음을 지옥을 만들고 있구나 하면서 생각을 바꾼다. 좋은 일 하는데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어본다.
남편은 오늘 아침에도 전화를 한다. 친구에게, 응급실에 혼자 두고 온 친구가 궁금해서 걱정이 되는 것 같다. " 오늘 집에 올 수 있나, 그래 내가 9시까지 병원으로 데리러 갈게" 하고 약속을 한 다음 아침밥을 달라고 한다. " 아니 그곳까지 데리러 가? 택시 타고 오라고 해야 하지"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친구가 혼자 못 움직인다고 남편은 서둘러 아침을 드시고 빗속을 뚫고 친구를 데리러 먼 곳인 군산에서 익산병원 까지 달려간다.
아쩌랴! 본인 좋아서 하는 일을, 나는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남편이 아무 일 없이 건강만 하면 더 바랄 게 없다. 남편은 속 깊고 마음 따뜻한 의리의 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