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지금 서울 둘째 딸 집에 와서 휴가처럼 보내고 있다. 남편이 종합 병원에서 검진해야 할 일이 있어 서울에 올라왔다. 올라 온 첫날 병원에 가서 문진 후 다음 일요일, 시티를 찍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다.
며칠 째 남편은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워낙 성격이 예민하고 꼼꼼한 성격이라서 조금만 힘든 일이 있으면 얼굴에 다 나타낸다. 나조차 평화롭던 마음에 파문이 일렁인다.몸에 무슨 이상이 있나 신경이 쓰인다.
지난주 화요일, 잠깐 외출했다 집에 들어오니 집에 계셔야 할 남편이 안 계셨다. 웬일일까 싶어 전화를 하니 의료원이라 한다. 나는 의외라서 "왜요" 하고 물어보았다. " 응, 몸이 좀 안 좋아 검사 한번 하려고, "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알았어요" 대답은 했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많아진다.
기계도 오래되면 노화가 되어 고장이 나듯 사람도 나이가 들면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살면서사람이 가장 우려되는 것이 건강을 잃는 것이다. 병의 경증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일이지만, 사람에게 누구나 찾아오는 생로병사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남편 나이가 적지 않아서 피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이에 따라 찾아오는 일을 어찌 거부할 것인가.담담히 내 앞에 오는 일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일이다.
남편에게 일이 있으면 곧바로 딸들에게 연락을 한다. 가족 간에 일어난 일은 서로 의논하면서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둘째 딸이 병원 예약하고 막내딸은 버스표 애매해서 카톡으로 보내 준다. 서울 종합병원은 예약하기 어려운데 딸이 바로 예약이 되었다고 전해 주니 다행이면서 안심이 된다.
전화 연락을 받고 짐을 간단히 꾸렸다. 남편은 딸네 집도 어떤 명분이 있어야 방문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일없이 가지는 않는 사람이다. 집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양반. 사람이 한 곳에만 머물면 때때로 답답하고 지루하다. 딸네 집에 가서 쉬면서 딸네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나름 즐겁다. 남편 검진 때문이 지만 서울에 올라가잠시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는 것도 여행자처럼 마음이 산뜻하고 자유롭다.
요즈음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살고 싶어 좋아하는 곳을 찾아 한 달 살기가 유행이다. 한 달 살기는 못할 망정 딸네 집에서 조금이라도 보내고 싶다. 둘째 딸은 새로 입주한 아파트 단지가 여러 가지 편리한 시스템으로 살기 좋은 환경이다. 아빠 엄마도 함께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맙다.
딸이 병원 예약을 해놓고 오라고 하니 안 갈 수가 없다. 나는 마음속으로 여행도, 휴가도 못 가니 아예 휴가 간다는 생각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도 프리미엄 버스는 아주 쾌적해서 오히려 자가용보다 더 편하다. 옆 사람과 커튼을 칠 수 있고 티브이 시청도 개인별로 한다. 의자가 안락해서 누워서 잠을 잘 수도 있으니 편리하다.
버스는 뜨거운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에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어 밖을 볼 수 없다. 나는 서울을 수없이 많이 다녔다. 1990년 큰 딸이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딸 넷이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다. 매번 여행하듯 설렘으로 수많은 날 버스를 타고 서울을 올라 다녔다.오늘은 피곤했는지 잠을 자면서 왔다. 한숨 자고 나니 서울이다.처음 있는 일이다. 휴게실 쉬는 시간도 내리지 않고 서울까지 왔다.
한참 만에 서울에 와서 지하철을 타니 조금 어리둥절 해진다. 둘째 딸과 만나서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병원엘 갔다. 큰 종합병원 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웬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마치 공항에서 티켓팅을 할 때처럼 줄을 쳐 놓고 열을 재고 철저하게 검사 후 병원엘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병원에 오면 모두가 아픈 사람 같다. 요즘은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미리 검진을 하기 위해서도
그런가 보다.
사람이 많으니 예약된 시간 지켜지지 않아 얼마를 기다린 후 문진을 하고 다음 일요일 시티를 찍기로 하고 돌아왔다. 환자의 지난 이력을 가져와서 정확이 살펴보아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 동생에게 부탁을 하고 우린 딸네 집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남편 일 때문에 서울에 왔지만 나는 책도 빌려다 보고 아파트 단지 내 깨끗하고 예쁜 길들을 산책하고 휴가처럼 보낸다.
마치 여행 온듯한 느낌이다. 막내딸 부부가 강원도 휴가 갔다가 들려 맛난 것도 잔뜩 사다 주고 간다. 딸들과 사위들은 남편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 준다. 멀리 있던 가족들이 가까이서 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든든하다. 남편에게 큰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휴가처럼 몸도 마음도 잠시 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