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친구 엄마가 돌아가셨다
셋째 딸이 군산에 내려왔다
요즈음은 일 처리를 카톡으로 하기 때문에 수시로 핸드폰을 열어본다. 카톡 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그림일기' 방에 부고가 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딸의 절친인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다. 나는 깜짝 놀라 확인을 했더니 정말 이다. 원래 아프시기는 했어도 누워 계실 정도는 아니고 정신도 말짱하고 말도 잘해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으신 걸로 알고 있었다. 어제 일어난 일이다.
오빠는 멀리 서울에서 살고 딸 친구인 H가 한 아파트 층이 다른 곳에 주거를 마련하고 돌보고 있었다. 옛날 세상과는 달리 지금은 언감생심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는 일은 생각도 말아야 한다. 별도리 없이 양로원 아니면 딸과 가까이 살면서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딸은 힘들어도 안타까운 마음에 엄마를 돌보지만 그 일도 보통은 아닌 일이다. 성인이 되면 부모 자식도 본인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글 쓰기 수업을 받으면서도, 그림일기를 쓰면서도 딸 친구는 온통 엄마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분이지만 마음은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한번 한 일은 찰밥을 한번 해 준일과 봄에 화전을 부쳐 딸 친구에게 보내 준 일이었다. 좀 더 챙기지 못한 점이 아쉽다.
딸 친구 이 지만 나와는 같이 에세이 수업과 그림일기를 같이 공부하는 사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더 안타깝고 놀랍다. 딸 친구는 지난해 책을 내면서도 엄마 이야기를 써서 선물해 주었다. 이렇게 돌아 가실 줄 몰랐지만 어쩌면 딸 친구는 큰 일을 해냈다. 엄마가 눈 감기 전에 엄마 이야기를 글로 써서 애 닮고 행복한 엄마와의 추억을 마음 안에 간직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다행히 아닐까 싶다.
그림일기 방 회원들과 장례식장을 가는 시간은 약속했다. 부고를 받고서 내 마음도 참 착잡하다. 사람이 가려면 이처럼 쉽게 가는구나 하고 허망하 다. 용인에 살고 있는 셋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바로 군산에 내려온다고. 딸은 너무나 바쁘게 살고 있다. 20년 동안 살았던 중국에서 코로나로 한국으로 나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고군분투하며 힘들게 정신없이 살고 있다. 생각하면 안쓰럽고 마음이 짠하다.
"부의 금만 전하고 안 내려오면 안 되니?" 하고 말하니 " 엄마 그럴 수는 없어요."라고 말하니 도리 없다. 알아서 해야지, 아무리 코로나로 사람이 모이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가야 할 곳은 가야 한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니 고인이 되신 딸 친구 엄마에게 헌화를 하고 묵념을 드렸다. 부디 아프지 않은 좋은 세상에 가셔서 영면하시기를 빌어 본다.
딸 친구는 내 품에 안겨 서럽게 흐느낀다. 나도 따라 눈물이 나온다. 세상에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삶에서 큰 위안이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젠가는 이별을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발목을 잡고 애원을 해도 떠날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영정 속의 사진은 환하게 웃고 계신다. 그림일기 회원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뒤돌아 나온다. 마음이 참 허허롭다.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은 장례식장 다니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집에 돌아오니 딸은 와서 벌써 줌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3시간째 얼굴도 못 보고서, 수업이 끝난 뒤 장례식장으로 달려간다. 밤 열 시가 되어서 돌아온 딸과는 대화 한마디가 할 시간도 없이 자야 할 시간이다. 다음 날 아침에도 장지까지 따라간다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간다. 시간이 조금 어긋나 장지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버스터미널에 가서 다시 용인으로 떠났다.
사람 사는 일은 젊어서는 매일 전쟁처럼 살아간다. 아직은 아이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바쁘고 힘든 날도 세월이 가면 다 지나갈 것이다. 딸을 보내고 돌아서는 마음이 아프고 짠하다. 얼만큼 동당거리고 살아 내야 할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삶은 이어지고 지나간다. 훗날 웃으며 이야기할 것이다,
엄마를 보내는 딸 친구도 지금은 아프고 힘들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모두 이별을 한다. 세상에 영원한 건 하나도 없다. 딸 친구가 허전하고 슬픔을 잘 견뎌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