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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Sep 20. 2021

추석, 우리 집은 막내 사위가 부침개를 부칩니다

어제 막내사위가 와서 부침개를 해 주고 서울로 갔습니다

아직도 코로나 방역이 엄중한 가운데 우리의 일상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추석은 가족이 백신을 맞은 사람과 함께 8명만 모일 수 있다고 방역 당국은  말했다. 추석이 오면  민족의 대 이동이 예상되면서 걱정이다. 작년 추석과 설에도 우리는 큰집에서 가족이 함께 모이는 일을 자제하고 제사도 지내지 못하고  지나갔다.


우리 집은 딸만 넷이다. 하나는 외국에 살고 셋은 수도권인 서울에서 살고 있다. 남편은 코로나가 아직 멈추지 않고 위험하니 딸들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우리 부부도  올 추 큰집에 가지 않고 산소만 각자 따로 다녀오기로 형제들과 약속을 다. 코로나가 이처럼 오래 우리 곁에 머물  줄은 몰랐다.


코로나가 오면서  세상 사는 일이 정이 없어지고 우리들 삶의 일상도 많은 변화가 왔다. 다른 날도 아닌 설과 추석 양 명절에는  멀리 흩어져 사는 형제자매 사촌들까지 만나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며 격려와 덕담으로 정을 나누며 따뜻했던 정이 사라지고 사람 사는 게 삭막하기만 하다. 사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렵고 힘든다. 많은 사람들은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삶은 외롭고 쓸쓸하다.


남편이 딸들에게 "추석에 내려오지 마라" 하고 당부의 말을 해 놓아서 당연히 집에 내려오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그제 막내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 김서방 영업 끝나면 10시 정도 되니까 12시 막차로 군산 내려갈 테니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주무세요. 아마도 새벽 2시 넘어 도착할 거예요."


버스표까지 예매해 놓았다고 하니 나무랄 수도 없다. 자식이 부모 만나려 온다는데 생각하면 기특한 일이다. "알았다. 조심해서 내려오렴" 하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막내딸 부부가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부터는 무얼 해서 먹여야 할까 신경이 쓰인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언제 도착할까 신경이 쓰여 깊은 잠은 못 이뤘다. 한잠 깜박 잠이 들었는데 현관 문소리에 깼다. 속으로 '왔구나'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살금살금 우리 부부는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아이들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나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아침을 거의 안 먹는다.

사위와 딸은 10시가 넘어 일어났으니 아침은 건너서  점심을 먹으려 갔다. 군산에 오면 막내 사위가 좋아하는 생선집이 있다. 처음 군산에 인사하러 왔을 때 먹었던 생선집이다. 올 때마다  막내 사위는 그 집 음식을 좋아한다. 명절 전이라서 그런지 점심 먹기 위해 찾아간 생선집은 사람이 많지 않고 한가했다.


점심을 먹고 은파 호숫가에 새로 생긴 호텔 커피숍에 갔는데  다른 때와는 달리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명절이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잠시라도 깨끗하고 멋진 공간에서 차도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쉬고  싶어 찾아온 사람들 같다.


딸과 사위는 여러 가지 사는 이야기를 한다. 앞으로 살아야 할 일에 대해 아빠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부모는 조언만 해줄 뿐 결국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일 들이다.

             

 시장에 가서 김치 담글 배추, 무, 파, 여러 가지 야채를 샀는데 가격이 평소의 두배는 될 것 같다. 물가가 명절이라고 너무 많이 올랐다. 비싸면 비싼 대로 먹어야지 도리가 없다. 막내 사위는 그냥 쉬어도 되련만 파도 다듬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오늘 제가 하는 일 글 쓰세요. 주인공은 저로 하고요."

"그럼 그래야지, 막내 사위를 주인공으로 하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인 것 같다. 막내 사위는 나이 든 우리를 많이 걱정하면서 같이 살자는 말도 가끔 한다.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하다. 딸들은 항상 바쁘고 명절에 음식을 같이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제사가 없는 우리는 항상 큰집에 가기 때문에 집에서 부침개를 부치는 일이 거의 없고 명절엔 언제나 큰집에 가서 부침개 담당은 나였다.  54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큰집에서 부침개 하는 일은 이제는 졸업이다. 


딸들이 모두 결혼하고 딸들 가족이 집에 내려오니 우리 집에서 부침개를 부치며 명절을 맞이 해야겠다. 처음으로 막내 사위가 부침개를 했지만 다음에는 미리 해 놓고 수고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다. 본인이 좋아서 한다고 하지만  혹시라도 사위 명절 증후군이 생기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혼자 웃어본다.

                    

                                             전 부칠 준비 물 

               

                                                 부쳐 놓은 전들 


 파를 순식간에 다듬고 난 후 전 부칠 것을 준비해 주니 전도 부친다. 며느리가 없는 우리 집은 사위가 며느리를 대신한다. 나도 처음 겪어 보는 일이라 생경하면서 사람 사는 집 같이 온기가 느껴져서 좋다. 전을 부치면서 전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이라면서 남편은 맥주 사러 마트로 간다. 맥주 사는 일은 아무 일이 없는 남편 몫이다. 


사실 제사가 없는 우리 집은 전을 안 해도 된다. 그러나 명절에 전을 안 부치면 쓸쓸하고 기름 냄새가 나지 않으면 명절 답지 않아 전을 부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추석 전에 내려온 막내딸과 사위가 전 안 부치냐고 물어와서 시작한 일이다. 


바로 옆에 사는 동생도 부르고 따끈한 전을 놓고 맥주 한 잔씩 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사람은 사람과 만나고 살 때 마음이 따스하고 사람 사는 것 같다. 특히 명절에는 가야 할 곳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을 때 느끼는 행복이 배가된다. 작년에는 정말 코로나로 모두가 조심하느라 만나지 못했지만 올해는 백신도 맞고 조금은  마음이 느긋해진 듯하다.


저녁 메뉴는 사위는 만들어 준 메밀국수를 먹었다. 우리 부부는 만나면 무엇이라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 주려 애쓴다. 저녁으로 먹고 두 사람은  밤차로 서울로 올라갔다. 막내 사위는 인스타 그램에서 예약을 받고 퓨전 음식점을 하는 나름 인기 있는 세프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 나를 만나면 농담도 달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고 나도 잘 받아준다. 딸과 사위가  떠나고 나니 아쉬움에 마음이 휑해진다. 부모는 자식과 떨어질 때는 항상 섭섭하다. 서울 토박이 인 막내사위는 군산에 장가 올 줄 몰랐다고, 나를 만나면 전라도 사투리 흉내를 내며 놀리기도 한다. 막내라서 그런지 그래도 귀엽다.


추석 한가위란 가을의 달빛이 가장 밝고 좋은 밤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일 년 중 만월을 이루는 날, 한 해 농사를 잘 지어 햇과일과 곡식을 거두어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모시는 날이다. 또한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만나 정을 나누고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가족은 서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아직도 물러가지 않은 코로나로 힘들지만 마음만이라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따뜻한 추석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올해 추석은 특별한 추석인듯하다. 내일 큰집에 제사는 못 가지만 막내 사위가 부친 전과 과일과 아버님이 좋아하신 막걸리와 어머님이 좋아하신 환타를 사 가지고 성묘를 가서 제사를 해야겠다.


우리 시어머님은  남편이 아들이 없다고 살아생전 섭섭해하셨는데 며느리 몫, 아들 몫 하는 사위들이 네 명이나  있으니 염려하시지 말고 마음 놓으시라 말하고서 절을 올려야겠다. 명절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또 다른 기쁨이며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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