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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Sep 18. 2021

가을의 문턱에서

월명 공원 산책길 꽃 무릇이 만발했다

 태풍이 지나갔다. 비도 많이 내리지 않고 바람만 불고서. 어제는 하늘이 끄물끄물하고 바람이 불어 밖에 나가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를 않아 집에만 머물렀다.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나 창 밖을 보니 햇볕이 쨍쨍하고 날씨가 화창하고 좋다. 아직도 한 낮에만 햇볕이 뜨거워  걷기가 힘든다. 아침저녁의 기온 차가 많다.  


며칠을 이어서 시니어에 나갔다. 명절 안에 작업량을 맞추기 위해서다. 시니어에 나가는 날은 나는 운동을 못하지만, 남편은 차를 주차해 놓고 가까이 있는 공원에 가서 걷기 운동을 한다. 다행이다. 내가 시니어에서 그림을 그리는 날은 남편과 나는 서로 각자의 생활리듬에 맞추어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오후에 산책을 가자고 한다. 날씨가 사람을 밖으로 불러낸다. 화창한 날씨에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두 실 그야말로 가을이다. 기분 좋아 심 호흡을 해 본다. 풀숲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는 더욱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가을의 문턱이다. 산책을 하려고 공원 안에 들어오니 약간 서늘한 기운의 공기도 상쾌하고 발음도 가볍다. 며칠 만에 오는 공원에서 만나는 나무들과 꽃들도 반갑다.


 한참을 걸어가니 꽃 무릇이 활짝 피었다. 며칠 사이에 공원 산책길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계절의 시계 추는 어김없이 자연의 모습을 바뀌어 놓는다. 지난 주만 해도 꽃대만 나오고 꽃은 작은 봉오리만 올라왔는데 며칠 사이 꽃이 만발했다. 만발한 꽃 무릇 꽃을 보면은 애달프다. 꽃무릇의 전설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산길을 걸어 다녀도 눈에 보이지 않고 흙속에 숨어 있던 꽃 뿌리는 어느 사이 올라와 신기하게 활짝 꽃을 피워 낸다. 참 자연의 이치는 생각할수록 놀랍고 경이롭다. 자연의 변화는 우리의 삶의 환희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은 우주의 흐름 속에 살고 있다. 우리 인간은 그 속에서 함께 흘러가는 아주 미약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도 결국에는 자연의 일부다. 살다가 어느 날은 자연으로 돌아가  소멸하게 되어있다.


공원 산책 길 길섶마다 꽃무릇이 한창이다. 매년 추석이 돌아올 무렵이면 꽃무릇은 꽃을 세상을 빨갛게 물들인다. 우리가 산책하는 월명 공원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꽃을 피워 내고 우리에게 선물처럼  감성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역시 살아있음 축복이다.


자연은 신비하고 오묘한 모습이다.  남편과 나는 매일 공원 산책을 하며 일 년 열두 달 자연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사색을 하며 삶을 즐긴다. 그 얼마나 축복인가 싶어 가슴이 시큰해 온다.



꽃 무릇은 꽃과 잎이  만날 수가 없다. 꽃대만 올라와 꽃을 피우고 한 동안 화려함을 자랑하다가 어느 사이 꽃이 지고 나면 그다음에 잎이 올라온다. 참 신기하다. 변화무쌍한 자연을 바라보며 인간의 미약함을 새삼 느낀다.


꽃과 잎이 만나지를 못해 더 애틋하고 가슴 저린 그리움을 불러온다.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님을 보고 싶은 애달픈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산책길은 온통 꽃 무릇이 피어 있다. 걸어가는 발길마다  줄 서서 나란히 나란히.


꽃무릇이 필 때면 고창 선운사가 가고 싶다. 선운사는 동백꽃만 유명한 곳이 아니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 무릇이 가히 장관이다. 전국에서 작품 사진을 찍으려 오는 사람들도 많다.


꽃 무릇에 대한 전설이 애달프다. " 옛날 절은 여인이 절에 기도하려 갔다가 그 절에 계신 스님을 연모하게 되었는데, 수행 중인 스님을 마음대로 뵐 수도 없고 사랑한다고 전 할 수도 없는 마음에 차츰 병 이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이윽고 여인은 상사병을 앎다가 죽게 된다. 죽은 후 그 무덤가에  핀 꽃이 바로 꽃 무릇이다. 그 죽은 여인이 상사화" 라 말들을 한다. 참 사랑이란 가슴이 아린다.


꽃 무릇이 만발했다

꽃의 전설만큼이나 피우지 못한 아픈 사랑을 핏빛 붉은색으로 아픈 마음을 토해 내나 보다. 매년 추석이 오면  꽃무릇이 어김없이 핀다.  일 년 동안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던 가족은 명절이 되면  모인다. 사람들은 고향과 가족에게서  따뜻한 기운을 받고  그 기운으로 힘든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창 선운사와 영광 불갑사가 있다. 그곳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꽃 무릇은 가히 장관이다.  나는 올 추석 멀지 않은 곳에 여행하듯 꽃무릇도 구경을 하고 추억도 만들어  보고 싶다. 


'화무는 심일 홍이요 날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다. 꽃 무릇은 지금 한창 만발해 보기 좋지만 며칠 지나면 시들고 지고 만다. 말 그래로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다. 시든 꽃을 바라볼 때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때가 지나면 예쁜 모습도 다 사라지고 만다.


우리 부부도 적은 나이가 아니다. 자꾸만 세상과 멀어지는 삶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 시간이 맞는 딸 가족과  올 추석은  가까운 곳에 가서 꽃무릇을 보면서  코로나로 힘든 마음을  날려  보냈으면 좋겠다. 모두가 가족과 함께 따뜻한 기운을 받는 추석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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