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정집은 딸이 넷이다. 셋째 넷째는 인천에서 살고 맏이인 나와 동생은 군산에서 살고 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아파트 분양할 때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 동생네 집은 우리 아파트에서 찻길만 건너면 바로다. 시어머니랑 제낭이 살아있을 때는 가끔 만났지만, 시어머니와 아픈 딸이 하늘로 가고 얼마 후 제낭이 하늘로 간 뒤에는 나도 동생네 집을 자주 간다.
혼자된 동생은 애완견인 앵두와 살면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고, 앵두가 유일한 가족이었다.
제낭이 하늘로 간 뒤 에는 동생 혼자 밥 먹는 것이 쓸쓸할 듯해서 거의 함께 우리 집에서 같이 밥을 먹는 날이 많았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지만 밤이 오면 더 쓸쓸해지는 것이 혼자 있는 시간이다. 있을 때는 모르지만 사람이 떠난 빈자리는 더욱 그리움과 쓸쓸함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동생은 결혼 후 바로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옛말에 '다 보아도 홀시어머니 모시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말로는 다 할 수는 없는 힘든 세월을 동생을 견디며 살아왔다. 살면서 며느리의 진심을 알았는지,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분 살아계실 때는 동생네 집을 자주 가지 않았다. 내가 가는 것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서다.
동생에게는 몸이 불편한 딸이 있었다. 어려서 뇌에 문제가 있으면서 30년이 넘는 날들을 혼자서는 밥을 먹지도 못하는 딸을 동생은 먹이고 씻기고, 힘든 날이 많았지만, 그 딸이 자기를 더 열심히 살게 하는 에너지 란 말을 하며 신앙에 마음을 의지하며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면서 항상 웃었다. 음식을 만들어 남들에게 나눔도 많이 하며 사는 철인 같은 사람이다.
곁에서 동생의 삶을 바라보는 나는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워 가끔은 눈물을 짓곤 했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가끔 외롭지 않게 전화하고 밥 먹이고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일이었다. 달리 도리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삶의 무게가 있어서다. 삶의 무게란 나누어질 수는 없다.
동생 큰딸은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애완견을 결혼하면서 친정에 두고 가면서 자연스럽게 키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먹했던 애완견은 차츰 정이 들고 동생의 둘째 딸이 누워만 있고 말도 못 하는데 항상 딸 곁에서 자고 누가 딸을 만지면 짖어대며 만지지도 못하게 동생 딸을 보호하곤 했다 한다. 무슨 연유에서 그랬을까? 알 수가 없다. 말 못 하고 누워만 있는 조카애와 서로 어떤 교감도 나누지 못하는 관계인데 어떤 생각으로 그랬을까? 그게 궁금했다.
제낭은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 있으면서 신장병이 찾아와 투석하는 힘든 투병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럴 때 애완견 앵두는 제낭의 친구가 되어 곁에서 떠나지 않고 위로를 해 주는 사이였다. 낮에 혼자 있는 시간은 앵두와 친구 하면서 다정하게 지낸 사이였다.
동생네 가족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몇 년 전에 가시고 몇 년 후 동생 딸이 가고 또 몇 년이 흐른 후 제낭도 하늘나라로 갔다. 혼자가 된 동생에게 앵두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낮에는 집에 있다가 동생이 집에 들어가면 꼬리를 치며 반가워하며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외출하려면 따라가려고 언제나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며 매달리곤 했었다 한다.
몸이 안 좋았던 앵두
앵두는 내가 가끔 동생네 집에 가면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해 준다. 머리를 쓰다듬고 예뻐하면 곁에 와서 앉는다. 나는 사실 애완견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네 집 드나들면서 애완견의 사랑스러움을 보았다. 정말 사람과 교감을 하면서 말도 잘 듣고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개도 사람처럼 사고할 줄 알고 잘잘못도 안다. 말을 참 잘 알아들어 신기했다.
동생은 큰딸이 결혼해서 수원에 살고 있으면서 엄마를 가끔 부른다. 동생은 일이 바쁜 딸을 도와주려 올라간다. 어제는 아들과 함께 수원을 간다고 하면서 나에게 부탁을 한다. " 언니 우리 집 앵두가 오래 못 살 것 같아 잘 못되면 형부랑 산에다 좀 묻어 주어" 어쩔 수 없이 동생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어떻게 하겠나.
동생은 수원 갔다가 일주일 후쯤 올 거라고 했다.
동생이 집으로 좀 오라고 나를 부른다. 동생은 음식을 잘한다. 딸과 사위가 좋아하는 감자탕을 끓여 가면서 우리 것도 나누어 준다. 며칠 만에 보는 앵두는 살이 많이 빠져 훌쭉해졌다. 짖지도 않는다. 며칠째 밥을 안 먹는다고 한다. 숨도 가쁘고, 물도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고 동생은 말했다. 병원에서도 수명이 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눈동자는 또릿하고 맑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 모습을 보니 짠하다. 애완견은 수명은 13년이 보통이라고 한다 앵두 나이는 14세이다.
앵두 문제로 동생운 아들과 다투었다고 한다. 아들은 수원 올라가는데 앵두를 데리고 가자고 하고 동생은 그냥 놓고 가자고 했다 한다. 결국 아들 생각대로 수원으로 데리고 가면서 앵두 잠자리 메트랑 이불까지 챙기고 차로 떠났다. 나도 한편 마음의 짐을 덜었다. 동생 부탁이지만 만약에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쩌나 마음이 개운치 않았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죽음을 대하는 것은 고통이다.
동생이 떠난 후 1시간쯤 흘렀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우리 앵두 갔어" 울면서 말을 잊지 못한다. "엉 어떻게 하니? 예감은 했지만 막상 앵두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쿵하고 놀란다. 동생네 집에 와서 14년째 되었으니 앵두는 살만큼 살고 자연사한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사람도, 동물도 모든 생물은... 막상 앵두가 갔다고 하니 한 시간 전 또릿했던 눈망울이 자꾸 생각난다. 그리 쉽게는 갈 줄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동생도 울고, 나도 울고. 때에 딸라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음과 마주 해야 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생과 사의 진리다.
그래도 앵두는 복이 많은 개였다. 가족 모두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귀함을 받았다. 동생은 부지런하고 깔끔해서 언제나 잘 씻기고 잘 먹였다. 마지막 가는 길도 동생품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다행이다. 만약에 집에 놓고 갔으면 그 후회를 어찌했을까 싶다. 앵두는 바로 화장터로 가서 장례절차에 따라 잘 보내주었다 한다.
앵두 장례 하는 모습
한 줌의 재가 된 앵두는 제낭과 먼저 간 동생의 딸 이 묻혀 있는 곳에 뿌려줄 예정이라고 한다. 동생은 집에 같이 있던 가족을 다 보내고 결국 애완견 앵두까지 보냈으니 그 허전함을 어찌할까 그 게 걱정이다. 동생 생각에 내 마음이 저민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동생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