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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Mar 01. 2020

내 가방은 어디로 갔나요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면서 대합실에 가방을 놓고 차에 올랐다.

꼭 한 달이 됐다. 중국에 살고 있는 딸과 손주들이 우리 집에 오게 된 날이.. 어제 딸과 손자 둘이 서울 분당 시댁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둘이서만 한가롭고 가지런하게 살다가 한 달은 집이 왁자 지껄  정신없이 살았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섭섭함은 덜 했다.


우리 가족은 연말이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일 년 동안 살아낸  날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한다. 지난해 연말은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내가 팔목을 다쳐 깁스를 하 되어 연말이 지난 이월에야 만나게 되었다.  하마터면 못 만났을 셋째 사위도 만나게 되어 반갑다. 오늘은 가장인 남편이 자녀들에게 밥을 사는 날이다. 남편이 일 년중 가장 즐거워하는 날이기도 하다. 남편 나이 팔십이 되면서 갖게 된 가족 모임이다.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본인의 삶을 의미 있고 가족과 추억을 남기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남편은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나 보다. 본인의 삶은 멀리하고 가족이 우선이었다. 때로는 온몸을 던져 가족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모습이 고맙다.


딸 중에 두 가족은 멀리있어 다 함께 모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번에는 셋째네 가족이 구정 전에 중국에서 나와 코로나19 인해 아직 한국에 있기 때문에 다같이 만날 수 있가 있다. 멀리 있는 큰 딸네는 만날 수 없어 아쉽지만 도리가 없다. 가깝지도 않은 뉴욕에 살고 있으니 갈 수도 올 수도 쉽지가 않다.


 한쪽을 채우려면  한쪽은 비워야 하는 것이 삶이 진리라 생각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라는 말도 맞다.                                          모든 것은  내 마음 안에 있다.    

나이가 들어  자식이 멀리 살게 되니 자주 볼 수 없어 마음 한편이 아린다. '옛 어른들 말에  멀리있는 자식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사촌이 낫다.'라는 말이 실감이 날 때가 종종 있다. 삶의 희로애락을 같이 할 수가 없음이 때로는 허허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은 나이 탓아닐는지..  젊을 때는 자식이 어느 곳에 살든 성공한 삶만을 기대했는데 나이가 들게 되니 생각이 바뀌게 된다.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보고 싶을때 보고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해본다.


오늘 둘째 딸 아들인 손자와 우리 부부가서울을 가기위해 군산 고속버스 미널에 갔다.  TV에서는 날마다 코로나 19  확진환자정보와 국민들 위생 주의사항에 대해 거의 하루 종일 뉴스를 내보낸다. 그렇다고 일이 있는데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도 우리애들은 신종 코로나19 발생 전에 중국에서 나와서 안심이 되었다.


나는 오전에 서둘러 정형외과를 찾았다. 병원과 약속된 날은 내일이지만 행여나 오늘 깁스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며 병원엘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 본 후 의사 선생님은


 "오늘 깁스 풀읍시다"  "네"? 귀를 의심했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된 말이다. 팔목 깁스를 한지 사십 일 다.


잠시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십 일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프고 불편하고 힘들었으며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던 시간들.. 내게는 긴 시간들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우울한 날이 많았다. 사람이 사는동안 어떤 일이 내 앞에 올지 예측을 못하고 산다고 하더니 내가 그랬다. 인생이란 그저 오면 오는 대로 맞이하고 살뿐이다. 아주 미약한 게 인간이 아닌지 싶다. 이번 일로 절실히 느꼈다.


깁스를 풀고 손을 만져 본다. 아직도 부어 있고 아프지만 감옥에서 석방된 느낌이다. 자유구나! 내가 아팠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더 많은 고통을 견디는 팔과 다리를 깁스 한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려보는 기회가 됐다. 겪어 보아야 그 사람 마음을 안다. 아프면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랜 시간 남편은 집안일 설거지를 말없이 해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조금 섭섭한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할 듯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을 올라가게 되었다. 신종 코로나19 때문에 택시도 안 탔다. 남편 차를 가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주차하러 간 사이 승차시간은 되급한 마음에 내 짐을 손자에게 맡기고 남편을 찾으러 건물 뒤편을 돌았다. 전화를 하니 다른 쪽으로 와서 남편은  버스 앞에 손자와 기다리는 중이었다. 당연히 가방은 실었겠지하고 확인을 안 한채 폰에 예매된 바코드를 찍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다. 버스는 달려 한 시간 정도 되면 정안휴게소에 쉬어간다. 나는 차 타기 전 물도 안 마셨다.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서울을 수없이 다녔지만 휴게소에서 화장실 안 가기는 처음 일이다.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기 위해서다. 답답하지만 마스크도 한 번도 벗지 않았다.


차가 밀리지 않으면 군산에서 서울까지 두 시간 삼십 분이면 도착한다. 막내딸에게서 터미널에 나와 기다린다고 전화가 왔다. 서울 도착. 버스 아래 짐을 꺼내려니 우리 가방이 없었다. 손자 캐리어와 배낭만 있고..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나는 기사님에게  물었다.


 "내 가방은 어디로 갔나요"?  하고, 

기사님은  버스 아래 짐 실은 곳을  다 찾아 보고서는

"가방은 없는데요" , "어떻게! " 놀라서 소리쳤다.


순간 당황해서 진정이 안다. 내가 군산 터미널에서 당연히 가방을 실었거니 했는데 손자는 자기 가방만 싣고 우리 가방은 그곳에 두고 온 거다. 우리가 발을 동동 구르니 "지하 고속버스 사무실로 가보세요"

기사님이 말해준다.


"군산 터미널 대합실에 가방을 놓고 왔는데요"  "확인이 필요하니 잠깐 기다리세요"   


기다리라고 한다. 군산터미널과 연락을 하고 그곳에 있는 가방을 영상통화로 보여 주는데 우리 가방이 맞다. 가방을 보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다음 고속버스로 기사님이 가져올 겁니다. 걱정마시고 아홉시 전까지만 찾으러 오세요"

정말 다행이다. 참 요즈음은 시스템이 편리하다.


아직까지는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주인 잃은 가방을 가져 간 사람이 없으니 너무 고마운 일이다. 요즘 사람들 의식도 많이 달라진 듯하다. 남의 물건은  안 가져간다. 마음이 흐뭇했다. 가방을 잃어버렸으면 기분이 찜찜했을 것이다.


"너는 할머니 할아버지 짐을 잘 챙겨야지 젊은애가 왜 그렇게 정신이 없니"


막내딸이 손자에게 야단치니 손자는 의기소침하고 풀이 죽는다.


 "급한 마음에 확인을 하지 못한 내 책임도 있다"  


일 처리할 때  당연한 일은 없음을 새삼 알게 되어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 차리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 와도 정신을 차리고 살자.  다시 다짐을 한다.


오늘 가족모임은 막내 사위가 금호동 금남시장에 새로 작은 식당을 개업해서 그곳에서 가족모임을 하기로 했다. 먼저 막내딸 아파트에서 셋째 딸네 가족과 만나고 둘째네는 식당에서 만나기를 약속하고서.




          사위가 운영 중인 식당 내부

                                                       

막내딸 아파트에 도착하니 셋째네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셋째 사위는 처음 오게 된 막내아파트를 들어탄성을 지른다. 앞이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해서,  밖을 바라보며 마시기 딱 좋은 뷰다. 차 한잔 후 가까이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시장 골목을 올라가니 아파트가 주변에 많다. 가게는 젊은사람들 감각으로 세련되고 예쁘게 인테리어를 해놓아 꼭 카페 같다. 신길동에 이어 두 번째. 저녁에만 예약 손님을 받는 테이블이 세 개뿐이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응원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우리 가족 중에 이런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조금 뒤 둘째 딸과 사위도 도착하고 맛있는 음식과 가족이 함께 모였다. 집에서는 보지도 못하는 색다른 음식들이 나온다. 살면서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이 이렇게 많구나.


남편은 말한다. "가족들 지난 한해 동안 아무 일없이 잘 살았으니 감사하고 올해도 서로 화합하고 더욱 열심히 잘 살자 " 하고 건배를 한다. 남편에게는 일년 중 가장 기쁜 날이다. 지난해부터 건배의 하면서 마지막처럼 목이 멘다. 본인의 나이듦이, 세월의 허망함이, 먹먹한 느낌인 듯 싶다.   


마음이 울컥해진다. 아직 건재한 남편이 곁에 있어 너무 감사하고, 여기 모인 사람들이 내 삶에 두께이며 살아가는 힘이구나! 자식은 온 힘을 다해 살아낸 우리 부부의  흔적이다.

주류 진열대

저녁을 먹고 있는 사이 어느 결에 막내딸은 고속 터미널 가서 군산에 놓고 온 가방을 찾아왔다. 마음이 홀가분하고 고맙다. 순발력에 일처리 잘 하는 막내딸.  나이 들어 늦게 낳은 막내딸이 어려운  여러 일을 많이 해결해 준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셋째 네 가족과 함께 새로 이사한 둘째 딸네 고덕동 아파트로 향했다.  


밤길,  올겨울 보지 못했던 눈발이 하나씩 휘날린다.  입춘 날이었다.

가족에게는  일 년에 한 번 모이는 날. 아쉬운 시간은 그냥 흘러간다. 평범한 일상 하루가 추억의 한 페이지를 쌓아놓는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가방을 찾게 되고 아직은 세상은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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