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숙자 Mar 31. 2022

화분 위치도 자로 잰 듯... 식 집사 남편을 지켜보며

우리 집 봄맞이는 새로운 반려식물을 들이면서 시작한다. 매년 달라지지 않는 우리 집 봄 풍경이다. 일 년 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식물 중 어느 식물은 생명을 다 하고 어느 식물은 시들 시들 생기를 잃어간다. 화분 관리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님을 실감한다. 남편이 정성을 다 한다고는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여러 가지 식물을 잘 키워내지는 못한다. 


사람이 제각기 다르듯 식물도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그와 알맞게 생육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 햇볕을 좋아하는 식물 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식물을 살 때 남편은 화원 사장님에게 며칠 만에 물을 주어야 하고, 어느 곳에 놓아야 하고 등등을 세밀히 물어본다. 집에 오면 달력에 적어 놓고 그대로 물을 주고 온갖 정성을 다한다.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들은 외출하는 시간이 줄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식물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기 위해서 그렇기도 하다. 식물의 자라는 모습과 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고 즐겁다.       

                                                                     거실 화분 

성격이 내향적인 남편은 조용히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좋아하는 식물들을 거실과 베란다에 들이고 키우는 일이 남편의 취미다. 식물을 키우는 일도 사실은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새로운 식물을 사려고 화원에 가고 식물을 고를 때에도 남편은 나에게 물어보긴 하지만 나와는 취향이 달라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많다. 결국 본인 취향대로 골라 집으로 가지고 와서 혼자 작업을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낸다. 


나는 내 방에서 컴퓨터 하고 놀다가 가끔 심부름만 해 줄 뿐 화분 갈이를 하는 일과  베란다 식물 자리를 배치하는 일도 본인 마음대로 하도록 나는 관심을 끈다. 본인이 취향을 준중해 주기 위해서다. 모든 물건을 각을 맞추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야 성이 차는 남편 성격은 본인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곁에 있으면 마찰이 있을 수 있어 혼자 마음대로 하도록  한다.


해가 갈수록 나이 든 남편은 봄이 오면 분 갈이를 할 때 힘들어한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만류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와 일이 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무언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살아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상들이다.


<새는 날아가면서 되돌아보지 않는다>라는 류시화의 산문집에 '카렌시아'라는 설명이 있다.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 지치면 그곳에 가서 기운을 모아 숨을 고른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두렵지 않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 서다. 소만 아는 그 장소를 카렌시아라고 한다.  자아 회복의 장소, 본연의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곳, 가장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본연의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영역 너무 많은 의미가 있는 곳이 카렌시아다.>


나이 든 남편은 자꾸만 세상 밖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가 줄어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가족과도 이별이 잦다. 만나야 할 사람이 줄어든 남편은 아마도 식물을 심어놓고 돌보며 자신만의 안식처이기도 하고 피난처인 자신만의 공간에서 삶의 위로를 받는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하는 일도 나무들을 살피며 물을 주고 행여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이다. 마치 엄마가 아기를 돌보듯 식물들을 돌보며 하루를 보낸다. 매일매일 아침에 눈을 마주하고 물을 주는 꽃과 나무는 남편의 친구가 되어 준다. 남편의 카렌시아 영역이 더 편안한 장소가 되어 남편이 삶의 에너지를 받고 더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를 나는 소망한다. 


 가끔씩 거실 창가에 서서 베란다 식물을 바라보는 남편 생각이 궁금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래도 나는 묻지 않는다. 각자의 사색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남편은 친구와 같은 존재다. 거의 날마다 남편과 같이 하는 일상이 소중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깨죽으로 전하는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