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변하는 옷에 대한 이해
핑크색 코르덴 바지를 샀다
연말이 오기 전 쿠팡에서 핑크색 골덴 바지를 하나 샀다. 내가 인터넷에서 옷을 사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아날 로그 세대라서 그런지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하고 난 후 물건을 사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다. 그러나 살면서 습관도 생각도 바뀐다. 나는 원래 옷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옷을 사는 돈은 조금 무리를 하면서 좋은 옷을 사 입고 쇼핑하는 걸 좋아했다. 젊어서는 그게 큰 즐거움이었으니까.
"여자는 멋을 내야 하고 옷을 사려면 좋은 옷 예쁜 옷을 입어야 해" 남편의 지론이다. 남편도 보통은 넘는 패션 감각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은 옷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유난히 옷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1990년에 큰 딸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나는 서울을 올라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을 가면 옷 구경 다니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비싼 옷만 고집하는 편은 아니었고. 나와 맞지 않는 옷은 아무리 고급진 옷이라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젊은 이들이 다니는 보세 매장, 백화점, 남대문 곳곳을 돌아다니며 옷 구경을 즐겼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왜 그렇게 옷을 좋아하고 시간을 보냈는지 참 어이없다.
딸 만 넷인 우리 집
딸넷이 서울로 대학을 가고 원 없이 서울 거리를 누비며 많은 구경을 했었다. 남편은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 서울은 매번 나 혼자 다녔다. 버스를 타고 서울을 올라 다니면서 여행하는 기분으로 힘듦을 느낄 겨를 없이 언제나 서울을 가는 일은 설레고 기뻤다. 그럴 때마다 지방에 살면서 답답했던 마음을 해소라도 하듯 서울을 관광하듯 많이 돌아다니며 딸들과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 먹고 힘든 부분을 다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유난히 패션 감각이 뛰어난 큰 딸 곁에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해 본다. 큰 딸이 미국유학을 가고 딸이 그곳에서 취직을 하고 살게 되었을 때, 부부를 초청했지만 남편은 가지 않고 나만 뉴욕을 처음 갔었다. 생전 처음 가본 뉴욕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별난 세상을 이었다.
딸은 내게 보상이라도 하듯 입고 간 옷을 다 벗기고 새 옷을 사주고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엄마를 최고의 대접을 해 주고 옷도 평생 처음으로 입어보지 못한 옷을 사주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딸에게 섭섭한 일이 있어도 그때 받은 보상으로 큰 딸에게는 더 이상 받으려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딸은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낳고 자기 생활하는 것도 벅차다.
다도를 하면서 옷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다도를 하고 옛것을 좋아하면서 옷에 대한 개념이 바뀌게 되었다. 소박하고 화려하지 않은 옷, 내 손으로 내 옷을 만들어 입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뜨개질을 해서 상의는 떠서 입었고 하의는 광목에 염색해서 야생화 수를 놓아 고무줄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내 손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것에 만족을 했다.
나이 들어가고 이제는 달라졌다. 옷 사는 것도 절제를 한다. 있는 옷을 잘 입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옷 사는 걸 멈추려 했는데 살이 쪄서 예전에 입던 바지가 맞지를 않는다. 외출을 하려면 입을 바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바지를 사야 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비싼 옷은 사지 않는다. 입어서 편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분위기 있는 옷이 좋다.
새해가 되면서 내 나이 팔순이지만 나는 아직도 여자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옷 잘 입는 것을 보면 좋아 보이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즐긴다. 예쁜 모습이 보기 좋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삶을 디자인하고 사는 거라 생각한다. 내 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 사람만의 감각을 말해준다.
옷 색깔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검정, 그레이, 카키, 커피, 차콜 인 무채색만 입었다면 이제는 밝은 색 옷을 입고 싶다. 빨간색을 좋아하면 나이 들었다고 사람들은 말하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다. 이번 겨울은 골덴이 유행이라고 해서 딸들에게 골덴 바지를 사 달라 부탁했더니 그래이 색, 옅은 고동색 바지를 두 개를 셋째 딸이 사 보냈다.
아직도 무채색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밝은 색이 눈에 들어오는 내 마음의 변화를 보면서 생각한다. 아! 내가 늙기는 했나 보다 하고서, 이제는 변화를 받이 들여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비싼 옷보다는 입어서 편하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좋다. 많은 옷도 필요하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나이와 무관하게 나는 멋진 노인으로 살고 싶다. 아직도 멋있고 아름다운 여자로 살고 싶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을 해 놓고 나는 웃는다. 마음을 무겁게 보다는 가볍게 살고 싶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