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준비 과정 힘들지만... 부모님 추억에 마음이 따스해져
시 동생은 마치 역사 선생님 같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해 주셨던 중요한 한마디 말을 전해 주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이 내일이면 끝난다. 지난 금요일 군산 집에 내려온 세쨋딸네 가족이 오늘 아침 서울로 떠났다. 바쁘고 힘든데도 우리를 찾아와 명절을 같이 보내 준 사위와 딸 손자가 있어 외롭지 않게 며칠을 보낼 수 있었다. 자식이란 올 때는 반갑고 가고 나면 섭섭하다. 언제나 가슴 안에 그리움을 묻고 사는 것이 부모 자식 관계인듯하다.
셋째 딸네 시댁은 명절이면 여행을 가라고 권하는 집안이라서 명절이 되어도 며느리인 딸은 명절 증후군이 없이 사는 사람이다. 그런 시댁 분위기여서 친정인 우리 집으로 여행하듯 마음 놓고 내려온다. 셋째 사위는 손재주가 좋아 손대면 무엇이든 고치는 사람이다. 집에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모두 해결해 주고 간다. 이번에도 그랬다. 고장 난 선풍기까지.
설날 아침, 이번 설은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약속 돼 있어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 큰집으로 가서 제사상에 올릴 밥 준비를 해야 하고 제사상을 차리는 일로 아침이면 분주했었다. 많은 가족이 모이고 제사를 지내고 세배하고 산소에 다녀오고 다음에는 윷놀이하고 점심은 떡국을 먹고 헤어지는 일정이 명절이었다. 항상 가족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라서 즐거운 명절 추억을 안고 살아왔다.
각자의 사정
제사 대신 부모님 산소에 절하기
올해 명절에는 제사를 안 한다고 말을 하니 큰 집에는 갈 수가 없고 전주에 사는 시 동생네 가족과 부모님 산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집에서 준비한 전과 과일 다른 음식도 조금 챙기고 추운 날씨에 몸을 따뜻하게 해 줄 보이차를 커다란 보온병에 준비해서 딸네 가족과 시 부모님 산소로 향했다. 일기예보는 명절날 눈 오고 추울 거라 말을 했지만 날씨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매서운 추위는 아니었다.
명절의 수많은 추억이 쌓여 있는 곳, 큰집을 지나가는 순간 마음이 울컥해 온다. 그렇지만 사람 사는 일은 세월이 흐르면 변하게 되어있다.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은 늙어가고 몸도 아프다. 사람 사는 세상도 달라졌다. 우리 세대는 저물고 있다. 조카와 며느리가 집안의 중심이 되어 우리 일을 이어받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르는 사람은 의아해한다. 다른 자식이 제사해도 되지 않느냐고,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은 남이 알지 못하는 그 집만의 사정이 따로 있다. 무어라 쉽게 말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의 말이라고 쉽게 말하는 일은 아니란 생각이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
산소는 큰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큰집에 가지 않고 산소로 향하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마음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소는 산길에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올 설은 사위가 짐을 들어주고 행여 넘어질까 나를 옆에서 부축해 주어 산소에 오르는 것이 한결 쉬었다. 늘 고마운 사람이다.
우리 가족 이 산소 올라가는 중 부모님 산소에 모인 우리 가족과 시동생네 가족
시동생네 가족과 우리 가족이 모이니 산소가 북적북적해서 좋다. 이곳에 오니 명절 같은 기분이 든다.
산소에 오면 항상 느끼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기억을 연결해 주는 곳이다. 시 부모님들이 누워 계시는 곳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차례대로 어른들이 먼저 제사 지내듯 절을 하고 어린 조카의 자녀들과 손자도 절을 한다. 그런 후 아이들에게 누구의 묘소인가 설명하고 그분들이 남겼던 삶의 지침이 되었던 말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시동생은 아이들에게 교육하듯 말을 해 준다. 이러한 일들은 집안의 문화라고 설명한다.
서로 각자 바쁜 생활로 만나지 못한 사촌들도 만나서 서로 근황을 묻고 세배도 산소에서 했다. 아이들은 세뱃돈을 받고 좋아한다. 올해부터는 산소에서 조상들에게 제사도 하고 산소를 돌아보며 가족들 서로의 화목도 다지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 시어머님이 좋아하실 것만 같다. 시어머님은 살아생전 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제일 좋아하셨다. 예전과 달라진 제사 풍경이다.
우리 집 12살 손자는 10살의 조카 아들과 금세 친구가 되어 못 헤어진다고 30분만 같이 있는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조른다. 작은 집 작은 아들은 용인 처가로 출발하고 시동생 부부와 시동생 큰 아들가족과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시동생 손자 손녀는 우리 집이 신기한가 보다.
실 명절인데 밥 한 끼 같이 나누지 않고 헤어지는 것은 섭섭하다. 아이들은 좋아라 놀고 나는 정신없이 밥준비를 한다. 아직은 기운이 남아 음식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한쪽에서 떡국을 끓이고 냉장고에는 딸네 가족이 와서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이 있어 커다란 상을 두 개를 꺼내 밥상을 차렸다. 밥과 떡국을 끓여낸 밥상이 환하다.
그렇지 않아도 점심을 어떻게 할까? 혼자 고민했었는데 작은집 가족까지 점심을 먹이고 명절다운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 사람 사는 집은 사람이 모여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떡국 끓이는 것은 나에게는 일도 아니다. 명절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고 명절에는 내가 떡국은 끓여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사람의 관계는 마음이다. 사실 제사라는 것은 물론 음식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형제끼리 우의를 나누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억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할 수 없으면 도리 없다. 받아들여야지. 그래서 올 명절부터는 제사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사랑은 배려다. 가족은 사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