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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화초

하루를 식물과 함께 시작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by 이숙자

남편의 취미는 단 하나, 베란다 화초 가꾸기다. 밤이 지나고 아침잠에서 깨어 일어나면 맨 먼저 베란다로 나가 화초들과 눈인사를 한다. 혹여 시든 잎은 없는지 물이 부족한 꽃은 없는지, 살펴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꽃이 핀 화분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 그런 후 꽃이 피어 있는 화분에 오래 눈 맞춤을 하며 마치 꽃과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지나 않았을 런지 나는 혼자서 상상을 한다. 얼마 전 화원에서 들여온 수국이 활짝 피어 웃어주는 것 같아 기쁘다. 이 처럼 나이 들면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날들이 평화롭다. 수국 꽃이 있어 우리 집 봄 베란다가 환하다.

베란다에 활짝 핀 수국 베란다에 꽃들이 피어나고 남편은 화초들과 노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침잠이 없는 남편은 언제나 나보다 일찍 일어나 베란다에서 꽃들과 놀고 있다. 내가 잠에서 깨어 바라본 남편의 그 모습이 하루를 보내는 시간 중 제일 멋지다. 아무 잡념이 없이 식물과 교감하는 시간은 맑고 순수함 그 자체다. 사람이 맑아 보일 때는 그 순수함을 잃지 않을 때다.

베란다에 활짝 핀 제나륨과 수국이 예쁘다. 남편의 정성스러운 돌봄에 화분의 꽃들은 잘 자라고 있다.


남편은 아마도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며 '나도 꽃 같은 시절이 있었는데' 하며 회한에 젖는 듯 한 느낌이다. 사람의 일생이란 참으로 사연도 많지만 그 가운데 환희도 있었고 고통 또한 함께 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행적은 다 다르다. 누가 남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삶은 사람마다 각자의 삶이며 숭고하고 고귀하다.


워낙 깔끔한 성격인 남편은 꽃나무가 시들고 보기 싫으면 과감하게 뽑아내고 새로운 꽃나무를 들인다. 처음에는 내가 "아직 살릴 수 있는데 왜 뽑아 버려요." 하고 싫은 소리 해 보지만 소용없는 잔소리다. 꽃을 사들이고 가꾸는 일은 남편의 영역이다. 다른 곳에는 돈을 아끼지만 꽃나무 사는 데는 사고 싶은 걸 사신다.


그래, 사람이 그런 취미라도 있어야지, 돈 쓸 일이 없으면 사는 것이 무료하다 싶어 만류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면서 사랑하는 대상이 없으면 너무 허망하다. 꽃에 관심을 같은 것은 메마른 가슴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놓고 물을 주는 일이다. 무엇인가 몰입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자각을 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 있기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일상에 즐거워하고 있다.


남편 나이 여든을 훌쩍 넘기고, 어느 날부터 가끔 만나던 친구와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나이 든 친구들은 하나둘 세상과 이별을 하며 떠나고 아니면 요양원으로 들어가 만날 수 조차 없다.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 오는 것 같아 딸들은 되도록 가까운 부고를 알리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하는 길이지만 잠시라도 잊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게 모두의 마음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늘 우리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물음이다. 젊은 날도 아니고 나이가 많은 지금 남편은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매일이 소중하고 아무 일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더 절실하다. 아프지 않고 사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아빠로서 가족의 등대로 살다가 세상과 이별을 바랄 것이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 하고 살아왔듯이.


요즈음 나는 남편 얼굴을 자주 바라본다. 언젠가는 그리움으로 남을 사람, 두 사람 중 누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혼자 남게 된 날이 오면 어떤 마음일까. 그래서 그럴까. 남편 모습을 보면 애틋하고 마음이 저린다. 어떻게 반 세기를 넘게 같이 살아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다. 같이 살아온 그 수많은 날들이,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살아온 날이 무려 57년 반세기도 훨씬 지난 세월, 그러나 지루 할 틈이 없었다.


젊어서는 몰랐다. 남편에게 불편한 점만 보였다. 그러나 글을 쓰고 나이 들어가는 지금, 남편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 남편이 있어 내 딸 낳아 내 삶의 둥지를 만들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꿈속 같았다. 남편은 내 삶의 등불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냥 부부는 그렇게 사나 보다 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날이 많지 않았다. 올해는 한 살 더 먹고 나이조차 말하기 민망해지면서 자꾸 생각이 많아졌다. 워낙 강단이 있으시고 자존감이 강하신 남편은 자기만의 세계가 분명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는 아주 센 사람이다.


생이란 어김없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다. 누가 뭐라 한들 소용이 없다. 남편은 어쩌면 그런 강한 결기가 있어 지금의 우리 가정을 지켜낸 듯하다. 딸 넷과 마누라까지, 이젠 해야 할 일을 다 해낸 자유로운 몸, 나머지 삶은 본인을 위해서 살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까지도 절약이 몸에 밴 사람, 베란다의 화초들만 사랑하시지 말고 본인을 더 사랑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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