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연휴라고 셋째 딸네 가족이 군산집에 내려온다는 전화가 왔다. 뉴스에서는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분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걱정부터 한다. 셋째 딸네 가족은 매일이 바쁜 일상으로 힘드는데 귀찮아하지 않고 빗길을 뚫고 아빠 엄마 찾아온다는데 어쩌랴.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는 다면 아마도 쓸쓸할 것이다.
보통날은 괜찮지만 어버이날은 자식들이 찾지 않으면 허전하다. 바쁜 일정 미루고 찾아와 주는 딸네 가족이 고맙다. 빗길이라고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자식들도 성인이 되면 자기에게 의사 결정이 있어 만류하기도 어렵다. 나이 든 부모는 그저 고맙다고 함께 해 주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은 마음의 위로를 찾기 위함도 있을 것이고 쉬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딸들은 살다 보면 엄마 밥이 그리운 때가 있다. 딸이 오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맛있는 걸 해 준다. 예전에 비해 사는 것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마음의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며칠 전, 항상 씩씩하고 쾌활하던 셋째 딸이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소리로 전화가 왔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업무 중이라 사무적으로 "왜? 무슨 일 있니?" 건조한 목소리로 물으니 "아니 그냥 엄마 목소리 들으려고, " 전화는 끊었지만 그 말이 주는 여운에 마음이 흔들린다. 딸이 힘든가 보다. 손은 책을 만지지만 마음 한편은 딸 생각에 궁금해 신경이 쓰인다.
무엇 때문일까? 딸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해외에서 여유롭게 살아왔었다. 코로나로 한국으로 나와 늦은 나이에 어린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으니 힘들 것이다. 젊은 사람 들과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이 어느 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누군가에게 위로의 한마디라도 듣고 싶어 진다. 내 마음 안에 쌓여 있는 아픈 상처의 찌꺼기를 배출할 출구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한 생을 살아 낼 때,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있다. 가볍고 무거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는 것은 인생고락이라 한다. 그런 날들을 잘 견뎌내면 어느 날부터는 숨을 쉴 수 있고 모든 것은 지나가는 세월이 될 것이다. 그게 다 사람 살아가는 과정이다. 어려움을 견뎌 내야 사람은 단단해진다. 딸들은 아빠의 보호아래 순탄한 삶을 살아왔었다. 힘들어하는 것은 그래서 그럴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때를 놓치면 만날 수가 없다. 보고 싶고 그리움은 사랑이다.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하나 마음에 담지 않고 사는 일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까, 그 생각이 미치면 모든 만남이 감동이고 소중하고 기쁘다. 어버이날이라고 찾아오는 자식이 있음은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다.
밤 시간 딸은 마음 안에 쌓인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직장에서 일, 사람과의 관계, 시댁 여러 사람과의 관계 젊은 나이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일들은 고단하고 힘겹다. 더욱이 아직은 자녀들이 어려 돌보아 주어야 하는 일까지, 아이들이 자라 독립하고 나이 들어 자유로운 시간이 오면 알 것이다. 지난 시간들을 잘 견뎌온 자신이 얼마나 대견했는지.
엄마 인 나는 그저 듣고만 있을 뿐 아무런 조언도 할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를 알지 못하면서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힘들겠다. 세월 가면 다 지나간다." 내가 해 주는 말은 그뿐이었다. 세상 속 사람들은 내가 가장 중요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희생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는 것이 경쟁 사회 안에서 겪어 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딸아, 내 보석 같은 딸아!!
사는 것이 힘겨워도 성실하고 멋진 신랑 곁에 있고 능력 있는 멋진 아들 둘 있는데 무얼 그리 힘든다고 그러느냐. 세상은 그 보다 훨씬 어려움도 다 견디고 사는 거란다. 먼 훗날이 되면 또 지금의 삶이 더 그리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사실은 나도 그런 날들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다 지나가는 날이었다. 앞으로 더 멋지고 자유로운 날을 꿈꾸며 힘든 생각은 오늘은 이만 접자.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