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비는 그치지 않고 내린다. 그렇다고 바쁜 시간 뒤로하고 군산까지 내려온 딸네 가족이 집에만 있다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쉽다. 딸은 기획력이 뛰어난 재능이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도 잘하고 가족이 모두 모이면 셋째 딸이 빠지면 일이 안된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재주 또한 탁월하다.
아침을 먹고 차 한잔 한 후 딸은 또 일을 꾸민다. 비 오는 날이라서 그냥 집에서 쉬어야 할까 보다. 하고 있는데 조용한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자 비가 와도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갑시다." 정작 바다옆에 사는 남편과 나는 둘이서는 절대 바다를 보러 가는 일은 없다. 딸들이 오면 여기저기 함께 구경을 다니는 것 말고는. 평소에는 자기주장이 센 남편이 지만 자식들 말은 곧 잘 들어준다.
딸들은 군산만 오면은 바다를 보고 싶어 한다. 바다를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해지는 그 무엇인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하늘은 짙은 회색 빛 어둠을 띄고 칙칙하다. 자칫 이런 날은 기분이 내려갈 수 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우리는 바다를 막아 긴 다리를 만들어 놓은 새 만금을 가로질러 달린다. 안개가 자욱한 날씨 때문에 바닷물도 보이지 않지만 느낌으로 상상을 한다.
군산 도시는 섬들이 육지와 이어진 뒤로 바다를 끼고 둘레길이 만들어져 날이 맑은 날 바다 위를 걷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데크길을 걸으면 제주도 바다 못지않은 아름다운 풍광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곧바로 몽돌 해변이 있는 데크 길을 걷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우산을 받고 몇 걸음 걸으려 하지만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우산은 뒤집히고 앞으로 걷는 걸음을 바람이 밀어낸다.
12살짜리 손자가 하는 말이 더 재미있다. "할아버지 이건 아닌데요, 바람 때문에 걸을 수가 없어요." 하면서 뒤돌아선다.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비와 바람을 피해 천막으로 들어가 앉아 음식을 시키고 기다린다. 어쩌면 먼 훗일 이런 날들이 추억이 되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관광객을 위해 바닷가에 시설해 놓은 천막
비 오는 바닷가 남편과 나는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바닷가 포장마차 같은 곳에 사람들을 비와 함께 싱싱한 해산물을 한 접시 놓고 소주 한잔에 낭만을 즐기는 듯옹기종기 모여 술잔을 기울인다. 비가 오고 바람 부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로 잡아 올린 신선한 멍게와 소라 해삼을 주문을 한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즐기는 낭만도 괜찮다. 같이 즐길 사람 있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소라와 해삼
남편은 이런 때는 막걸리라도 한잔 해야지, 그래 아직은 낭만이 살아있는 남편을 보며 흐뭇하다. 우리는 서로 막걸리 잔을 마주치며 오늘의 추억을 쌓는다. 비 오는 바닷가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먹는 바다 내음은 그리움의 맛이다. 얼마 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만남을 하고 살아 갈지, 나이 든 부모와 만날 때마다 즐거운 시간을 나누려는 딸과 사위가 고맙다.
산다는 것이 별것이 아닌 날들이 많아지는 나이다. 지금 이 순간은 더 바랄 것이 없는 시간이다. 내 삶의 그루터기에 앉아 노래라도 부르고 싶어 진다. 아니 막걸리 한잔에 이 무슨 당치 않는 생각을 할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웃고 만다. 살면서 말을 아껴야 할 때가 많다. 명심을 한다.
차를 되돌려 남편과 손자가 좋아하는 초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옆집에서 예쁜 것들이 많아 쇼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딸과 사위는 지인을 만나려 전주로 가고 나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잔뜩이다. 내일 아침 올라가는 딸에게 보낼 반찬 준비를 해야 한다.
묵을 김치를 씻어 된장 넣고 끓이는 묵은지 찜 손자가 좋아하는 장조림
김치를 씻어 신맛을 우려 된장을 넣은 묵은 김치찜도 해야 하고, 고기 사다가 장조림도 하고 깍두기도 담그고 오징어채 조림도 하고 부지런을 낸다. 내가 해 주는 반찬은 무엇이든 잘 먹는 사위를 보면 재미있어 더 해 주고 싶어 진다. 엄마 반찬을 먹으며 한 동안 살아 낼 것이다. 그래야 내 마음이 홀가분하고 안심이 되니 엄마란 이름은 없던 힘도 나게 하니 참으로 모를 일이다.
어제 새벽 여섯 시, 긴장을 하고 잠들어서 그런지 눈이 떠졌다. 나는 살며시 일어나 쌀을 담그고 자리에 들어 잠깐 눈을 붙이고 쉬었다. 쌀은 10분쯤 불리면 되지 싶어 일어나 밥을 밥솥에 안치고 냉장실에 어제 사다 넣어둔 콩나물을 꺼내여 국을 끓인다. 다른 반찬은 어제 해 놓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콩나물 국은 시원하고 담백해 아침에 먹기 좋은 국이다. 냉장실 문을 열고 어제 만들어 놓은 반찬을 꺼내놓고 보따리를 쌀 준비를 마치고 딸과 사위 손자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딸이 어제 말하기는
"엄마 차 밀리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 이성당에 가서 빵과 커피 사가지고 올라갈게 아침밥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엄마 맘이 어디 그런가, 밖에서 사 먹는 밥은 이상하리 만치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허허롭다. 집밥처럼 따뜻함이 없다.
날마다 멀리 출근하느라 새벽부터 동당거렸을 사위와 딸 좀 더 자라고 나는 하는 일도 살금살금 소리를 죽인다. 조금이라도 더 자야 피곤이 풀릴듯해서 나는 깨우지 않고 기다린다. 곧바로 일어나 콩나물 국에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흐뭇하다.
냉장고 털이라도 하는 듯 아침밤 대신 먹으려 맞추어 놓은 떡까지 모두 한 짐 싸서 보내고 나니, 집이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자리 같다. 그래도 이게 사람 사는 일이지 싶어 남편과 나는 쓸고 닦고 집을 청소하고 정리를 한다. 언제나 마음 안에 머물다 갈 내 자식들,
나는 내가 무엇이 든 도움이 뒬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딸은 무엇이던 안 가지고 가려는 마음이다. 그럴 땐 속상하려 한다. 엄마 마음 몰라 주는 것만 같아서, 나는 가족을 위해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기쁨이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그러므로 나는 행복하고 후회 없이 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