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이 필 때면

by 이숙자

5월이 가고 있다. 5월, 줄줄이 매달려 있던 기념일들의 무거움을 내려놓는다.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이 세상 떠나신 지 오래되었고 손자들만 챙기는 노인 세대가 되었다. 젊었을 때는 언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살 수 있을까, 주변 건사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복잡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알지 못해서 그랬다. 무거운 짐이라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몰랐었다.


아득한 먼 옛날, 지금 돌이켜 보니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이 그립다. 찔레꽃이 피는 이 오월이 오면 나는 예전 추억들에 가슴앓이를 한다. 산다는 것은 세월을 흘러 보내고 그리움을 묻고 사는 일 같아 마음이 아린다. 그때는 아팠던 일도 지금은 그립고 애달프다. 힘들었던 추억마저도.


5월이 가는 아쉬움을 달래듯 산책길에서 만난 찔레꽃이 반갑다. 찔레꽃은 화려하지도 않고 소박한 시골 새색시 닮은 꽃이다. 그렇지만 향기만큼은 다른 꽃과 다르게 청초함과 함께 향이 일품인 꽃이다. 찔레꽃은 이상하리 만치 나에게는 추억이 많은 꽃이다. 매년 찔레꽃만 피면 어찌할 줄 몰라 그 향기 곁으로 달려간다.



예전 시골에 살았을 때 학교 가는 길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 향이 얼마나 좋던지 한참을 서서 찔레향을 맡으며 찔레순과 꽃잎을 따 먹으면 향도 좋고 입안에 맴도는 달달함이 있어 더 좋았다. 간식거리가 귀한 시절 따먹었던 순과 꽃, 우리처럼 나이 든 세대는 찔레꽃에 대한 향수가 마음 안에 베여 있다. 그립고 아린 사연의 추억들. 삐비 철이 오면 삐비를 따 먹었던 사람은 그 맛을 알 것이다.


왜 그럴까, 찔레꽃을 말할 때는 어머니 추억도 따라오는 이유는, 시골 '마당에 앉아 봄나물을 다듬으시면서 혼자서 구슬 픈 콧노래로 불러 주던 찔레꽃노래.' '봄날 피고 진 꽃에 대한 추억'이란 시에서 나온 말이다. 누군들 마음 안에 추억하나 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몰랐던 그리움과 어머니의 삶을 나이 들고 서야 이리 절절하고 애틋해 오고 있으니 참 그때는 철이 없었다.


어머니의 삶을 내가 나이 들고 어머니가 되고서야 어머니 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 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감성의 새싹들이 학생 때 자연과 함께 놀면서 그때부터 내 안에서 자라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본다. 학교 갈 때 들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찔레꽃, 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걸어가면서 찔레꽃 향기를 마음 안에 담아 두었다. 마치 보물을 숨겨두듯이. 찔레꽃 향기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아련하고 그윽함이 있다.


유난히도 찔레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럴까. 찔레꽃이 필 때면 나는 잊지 않고 그날들의 추억을 소환해 내고 아득히 먼 그날들을 기억해 낸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내 안의 추억이다. 동생들은 어렸고 누구와 속 마음을 꺼내 보일 수 없었던 나는 자연과 교감하면서 감성이 풍부한 소녀로 자랐다. 살아온 숱한 날들 좋아했던 것들이 모여 나이 들고 내 놀이가 되었으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찔레꽃은 언제나 내 안에 좋아하는 추억의 꽃으로 머물 것이다.


찔레꽃의 가시는 사랑의 아픔을 상징하는 꽃이라 한다. 찔레꽃이 시들기 전에 문정희 시인의 시 찔레를 암송해 본다.


찔레 /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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