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날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를 시작하며 브런치 앱을 열고 이웃 작가님들의 글을 잠시라도 읽는다. 세상 이란 넓은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어쩌면 또 다른 공간인 브런치라는 앱에서 그것도 이웃으로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인연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인연이다.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고 예명만 알고 있을 뿐, 확실한 주소조차 모르는 사이다. 글로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글로 그 사람과 마음을 나눈다. 가끔은 이웃 작가님의 댓글이 주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살아내는 용기를 얻게 된다. 사는 게 정답이 없다고 말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만의 삶이 있고 그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살이 긴다.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 번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이 인연이라고 < 감현태 시인의 인연이란 것에 대하여 시중 일부 >
그 시인이 말해 주는 인연의 의미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글을 쓰고 매일 서로의 마음이 교감되고 나면 어느 날은 문득 만나서 차 한잔 하면서 마음속 쌓인 이야기들을 쏟아 내고 싶어 그림움이 차 오를 때가 있다. 사람 사는 일이 누구나 외롭고 고독을 안고 살아야 한다지만 사람은 가끔 사람볕을 쪼여야 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사람이 볕을 쪼인다는 말을 듣고 손뼉을 쳤다. 맞아 그 말이, 참 어쩌면 시인들은 그토록 알맞은 언어로 사람마음을 간지럽히는지 시 낭송을 하면서 매번 놀라곤 한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애틋한 일인지, 그리움이란 내 마음 안에 촛불 하나 켜 놓고 기다리는 일일 거란 속단을 한다. 날마다 사는 일이 나이와 무관하게 마음 안에 느끼는 수많은 감성이 나를 숨 쉬게 한다. 시를 낭송하고 내 사유의 뜰이 조금은 더 넓어진 듯하여 나는 참 행복하다.
'이슬로 손을 씻는 이 저녁에'라는 이기철 시인의 시어에 나오는 말, '아무도 세상을 아름답게 건너가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 없다.' 나는 세상 사는 법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주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걸어가는 다리가 되어 주고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행복지수와도 같다.
그리움이란 언제나 가슴을 에이게는 아픔이 있다. 그러나 그 아픔마저도 나는 아름다운 감성의 현상이리 생각한다. 그리움, 고통은 우리네 마음 안에 타고 있는 촛불이 아닌지, 사람과 사람 관계가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글 속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있고 삶이 있다. 그래서 더 그립고 생각나고 보고 싶어 지는지 모른다. 어느 날 문득 그네의 댓글이 내 하루 일상에 위로가 되고 그리움의 샘물이 된다. 나는 무엇 때문에 매일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지, 무엇이라 꼭 맞는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나는 글 쓰는 순간이 좋다. 아니 행복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음을 가지런히 하면서 키 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빈 공간에 고요를 깨뜨린다. 나는 그 소리마저 좋아한다. 나의 진솔한 마음을 쏟아 내며 나를 만나는 시간은 누구의 눈길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나와 만나는 시간이다. 나는 온통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 시간이 좋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 안에 사람을 잉태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