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은, 책 읽기 좋은 날

by 이숙자

오늘 은 아침부터 하늘이 캄캄하다. 곧 있으면 비라도 쏟아질 것 같다. 어제도 흐린 날을 핑계로 운동을 가지 않았다. 가끔 꾀를 부리고 산책 가는 걸 빼먹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여름이 오면서 자꾸 몸이 나른하다. 계절 탓인지, 나이 탓 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노인의 삶이 아닌 젊은 사람들의 삶을 소화하면서 살아간다. 매일 게으름을 피울 시간이 없다.


어찌 됐건 일이 있고 내 몸이 소화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남편은 내가 행여 또 운동 안 간다고 할까 봐 "비 오기 전 운동이나 갔다 오지? 하면서 채근을 한다. " 하늘이 캄캄한데 괜찮겠어요? "괜찮아 오후부터 비 온다고 했어.' 그러면 가야지 별도리가 없다. 같이 가 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지 혼자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컴컴한데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모두가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그렇다. 그 시간대에 운동을 하니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똑같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사탕도주고 안부도 묻곤 한다.

산책길 공원 숲 풍경

집에서 나서기는 싫지만 공원 와서 걸을 때는 기분이 좋다. 나무들을 온통 녹음이 욱어져 초록 초록 하고 걷는 길은 언제나 꽃이 지지 않고 피어있다. 꽃이 마라톤 이어받기라도 하듯 꽃마다 시간을 나누어지고 나면 다른 꽃이 핀다. 자연은 참 오묘하다. 남편과 나는 산책하다가 쉬는 곳이 정해져 있다. 여름이면 사람들이 선호하는 편백 나무 숲아래 의자에 앉아 쉬면서 바람소리를 느끼고 새소리를 들으며 쉰다.


나는 쉬는 것이 그냥 쉬는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는 외웠던 시들을 불러내어 작은 목소리로 낭송을 한다. 남편은 옆에 앉아 내가 낭송하는 시를 듣고 계시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워낙 표현하지 않는 분이라 그러나 보다 한다. 옆 의자 젊은 분은 이상하게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작은 목소리로 낭송을 했기 때문에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혼자서 외웠던 시 몇 편을 잊지 않기 위해 틈만 나면 다시 외우곤 한다. 시을 외우는 그런 과정들을 즐긴다. 아름다운 시어들이 내 마음 안에 저장된 곳간이 있다.


숲 속에 앉아있으니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주차장까지는 멀지 않아 우리는 서둘러 주차장에 와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온몸의 땀과 장마의 끈적임을 씻어 내기 위해 샤워를 한다. 적당히 따끈한 녹차 한잔은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준다. 젊은 날은 분주하게 살아왔었다. 사람의 일생은 나이대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노인세대인 남편과 나는 지금 자유롭고 편안한다. 어렵고 힘들었던 수많은 날들을 지나고서 오늘이 있다.



사람 사는 것이 걱정을 하려면 끝이 없다. 독립한 자녀들은 자기들의 삶을 잘 살아 갈거라 마음에서 내려놓는다. 지금은 두 부부의 삶에만 집중을 한다. 돌아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 미리 걱정은 그때 가서 할 일이다. 사람 사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삶의 바다 곳곳에 무수한 고통이 암초처럼 놓여 있는 탓이다. 고통에 부딪혀 좌초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살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은 왠지 모를 그윽한 분위기에 몸도 마음도 착 가라앉는다. 남편은 거실에서 나는 내 방에 선풍기를 틀어 놓고 까슬까슬한 여름 이불을 깔아 놓은 침대 위에 배를 깔고 책을 읽고 있는 이 시간이 좋다. 여름 피서가 따로 없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정지아 작가의 장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는다.


아버지가 빨치산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 놀랍다. 예전에는 빨치산이라면 자다가도 놀라 자빠졌던 이름, 이제는 세상 속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놀랍기는 하다. 작가의 유연한 필치로 자기 삶을 잘 풀어쓴 사투리도 맛깔나다. 지금 반절 정도 읽고 있는 중이다.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오늘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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