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청암산으로 간다

by 이숙자

어제 청암산 산책을 했다.


나이 들면 가장 염려되는 것이 건강이다. 건강하지 못하고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나이 들면 돈이 많은 것도, 명예도, 권력도 좋은 집도 다 부질없음을 안다.


많은 사람들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한다. 노년의 삶은 건강을 지키는 일이 으뜸이다. 날마다 사는 것이 단조롭다. 우리 부부는 매일 월명공원으로 출근하듯 산책을 다닌다.

산책을 다녀온 뒤에야 하루를 시작한다. 되도록 운동은 거르지 않는다.


군산 사람들이 좋아하는 산책 코스는 월명산과 은파 호수다. 두 곳은 시내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하기 쉽다. 시내를 잠깐 벗어나면 청암산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곳이다. 아직은 운전해 주는 남편이 있어 참 감사하다. 청암산은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면 도착하는 아주 가깝다. 멀리서 관광 올 정도로 풍경이 아름다워 군산 사람들도 좋아한다.


낮은 산자락과 호수를 끼고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 청암산은 남편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라서 남편이 더 좋아한다. 어렸을 적 수영하고 놀았다는 호수가 있고 호숫가 습지들이 운치를 더해준다. 대나무 길을 걷는 것도 기분 좋고 마치 담양의 죽로원과 같은 느낌이다. 바람에 사각거리는 댓잎소리는 마음이 그윽하다. 청암산 올 때마다 대숲길을 걸을 때는 오랜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노년은 만날 사람이 줄어드는 게 슬프다. 남편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절친 친구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셨다. 어제는 남편의 절친 부부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나이 들면 차 가지고 멀리 가는 게 부담이다. 부담이다. 우리는 가까운 청암산을 가자고 했다. 오래 있다 만나도 언제나 친근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햇볕은 뜨겁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바람도 상큼하다. 푸르른 녹음 속에 앉아 쉬면 볼에 스치는 바람이 청량하다.


청암 산 호수 습지

습지들

청암산 대나무 숲길


우리 부부는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청암산에 온다. 자녀들이 멀리 있어 자주 만날 수 없어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다. 고향 같은 곳, 추억이 있는 곳 그곳에만 오면 남편은 말이 많아진다. 추억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고향에 가면 위로를 받는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회귀 본능이 있다. 청암산에 와서 옛날 추억과 만나고 친구와 정담을 하면서 남편은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오래된 사이는 말없이 같이 앉아 있어도 편안하다.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자연과 교감을 하면서 정자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쉬는 시간도 포근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는 것 같다. 걸으면서 예쁜 경치를 보면 부지런히 사진으로 찍어 저장하는 것은 오래된 후에 꺼내여 볼 수 있어서다. 사진이 하루하루 삶의 기록이 된다. 들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개망초도 예쁘고 분홍 자귀나무 꽃도 예쁘다.


청암산 풍경들


자연 속에서 앉아있으면 마음이 평온하다. 젊었던 숱한 날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아왔던 남편들, 분주하고 힘겨웠던 날들은 잊은 지 오래다. 이제는 쉬어야 할 때다. 사람도 편안한 사람이 좋다. 말이 없어도 서로의 삶을 응원해 주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오래된 인연,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소중하다.


점심은 시골 동네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요즈음은 소문만 나면 멀리 있어도 찾아온다. 자가용들이 많이 주차된 걸 보니 손님이 많은 것 같다. 손님이 많은 식당은 다 이유가 있다. "아, 잘 먹고 즐거웠다, " 남편 친구의 말이다. 그 말이 흐뭇하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사람 사는 일은 모든 것이 마음이다. 날마다 하루가 하루가 획 지나가고 있다. 살면서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마음으로 손가락을 꼽는다.


가장 소중한 걸 버릴 줄 알아 나무는 봄에 새로운 잎이 나온다. 깨끗이 버리지 않고는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진리 앞에 나는 오늘도 내 삶 한 조각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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