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생일과 책 출간회

시 낭송 '한시예'에서 생일, 출간회 하기

by 이숙자

나이 팔순인 올해, 나이가 무슨 자랑도 아닐진대 어쩌다 시도 때도 없이 팔순이란 말을 외치며 살고 있다. 지난달 4번째 출간한 책 제목도 '80세, 글 쓰고 시 낭송하는 도서관 사서입니다'라고 했다. 올해 팔순인 생일을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은 서울에서 딸들 가족과 함께했고 또 한 번은 뉴욕에 사는 딸이 방한을 해서 두 번째 생일을 했다.


어제는 예기치 않게한 번의 생일과 출판회까지 있었다. 시 낭송 모임 인 '한시예' 주선에 의한 행사였다. 올해 나에게 귀인이라도 찾아오는 운수가 있었는지 나도 모르는 일이다. 살면서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마주하게 된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행운 같은 날이 오면 오는 데로 안 오면 안 오는 데로 살면 그만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항상 준비해야 하는 먹거리가 있다. 찻자리 준비는 내가 한다고 약속 한 터라 찻자리에 필요한 다구 소품을 준비할 때는 먼저 머리로 그림을 그린다. 어떻게 할까? 찻자리는 그때 자리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보기는 쉬어 보이지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 익숙하지만 며칠 서울 다녀온 후로 바쁜 일상에 피로가 가시지 않아 짐을 챙기면서 혼자 "이게 다시 할 일은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구시렁거린다. 이제는 힘든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젊은 사람 못지않은 에너지를 갖고 살지만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이다.


몸도 한참 젊어서 와는 다르다. 무리하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어제는 보따리 보따리 쌓아놓은 짐을 들 수가 없어 손잡이 밀대를 이용해 차에 옮겨 싣고 장미 공연장으로 달려갔다. 도무지 일을 멈추지 않은 이 마누라 때문에 남편이 고달프다. 딸들 학교 자모하면서부터 3학년 선생님들 밥 해 실어 나르고, 다도 할 때 행사 때마다 짐을 차로 실어 날랐다. 몇십 년을 짐 실어 날라 준 남편, 어쩌겠는가 마누라인 나를 만난 당신 팔자다.


마누라 나이 팔십이 되면 행사 짐 실어 나르는 일은 그만 그칠 줄 알았을 남편, 그런데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반복하고 있으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생각해도 참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이제는 보따리 싸는 일이 없었을 줄 알았지만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으니 이건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럴 땐 긍정의 힘이 우선이다. 감사한 일이지 뭐,

가을이 오면 빨강 꽈리를 좋아한다. 대야 농원 꽃집 선생님이 주신 꾀리 다발


다행히 남편은 군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날라다 주어 고맙다. 장미 공연장에 도착했지만 이른 시간이라서 아무도 오시지 않았다. 내가 너무 빨리 온 것이다. 남편에게 부탁해 테이블 가져다 고정시키고 테이블 보를 깔아 주고 남편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나는 보따리에 쌓인 다기를 꺼내 세팅을 한다. 늘 해왔던 일, 찻자리 세팅을 하는 일은 즐겁다.


세상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무슨 일이든 집중할 때 잡념이 없고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다. 글쓰기를 하고 시를 낭송하고 명상하듯 홀로 앉아 차를 마실 때 나는 나에게 집중한다.

그냥 행복하다. 이제는 무엇 부러운 것도 없고 가지고 싶은 물건도 없는 나이다.


행사할 때마다 수고해 주시는 총무님은 어른들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준비해 놓고 무거운 물도 사다가 놓아 차 우리기에 불편 함이 없도록 준비를 해 준다.


차츰 회원님들도 도착하고 회장님도 도착했다. 케이크에 불을 켜고 생일 축하노래를 한다. 한시예 선생님들과 참 따뜻하다. 이 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다니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울컥해 온다.


어쩌다 시가 좋아 우연히 만난 인연들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사람들, 시와 함께 하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마음 또한 따뜻하고 속 깊은 분들이다. 내 노년이 새로운 인연 들과 빛나는 날들이다. 내가 지금 몇 번째 인생무대를 서는지 셈을 해 보아야 할 듯하다. 모두에게 축하인사를 받고 나는 어쩔 줄을 몰라 웃기만 했다.


회장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귀한 선물을 받았다. 지난번 엘도라도 여행 간 날밤, 소파에 앉아 무심코 앉아서 턱을 고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모델이 되어 그림을 그렸다. 화가이기도 하지만 사진 속 생각을 불러 내여 그린 그림의 감각과 사색하는 느낌이 오는 그림에 놀랐다.


며칠 병원에 입원하시고 퇴원해 아직 기운도 차리지 않으신 몸으로 몰두하면서 수없이 붓질을 하셨을 회장님을 생각해 본다. 마음 안에 사랑이 없으며 하지 못할 일,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어 감동했다. 그림은 내방 서재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매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책을 나누고 사인한 책에서 골라 글을 읽어 주고 건네면서 정말 마음이 흐뭇하다. 내가 쓴 글을 읽어 주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이상하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좋아하는 시 낭송을 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나는 내일을 또 기대하고 산다. 비록 내일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닐지라도.



아름다운 시어의 감성에 젖어 살고 있는 지금, 나는 외롭지 않은 노년이다. 마음 안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나 만의 아름답고 그립고 가슴 절절한 시어들이 나를 살게 한다. 낭송을 하고 극 연습을 끝내고 우리는 곁에 있는 식당으로 옮겨 저녁도 먹었다. 귀한 시간 내어 따뜻한 마음 건네준 분들과 식사는 더 훈훈하고 기분이 좋은 시간이다.


황혼인 내 삶의 화양연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사뭇 기대하면서 오늘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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