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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파트너 이석재 Aug 22. 2020

밀입국자의 윤곽이 드러나다

마음이 방황하다

미물도 드러내고 싶은 충동을 갖고 있다


나는 밀입국자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나처럼 밀입국자와 동거를 하다가 서로 사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것이다. 바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규약을 맺는 것이다. '우리 서로를 해하려 하지 말고 함께 살자'. 너도 실체를 보여라. 아니 드러내고 싶은 너의 충동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너를 드러내라. 내가 그 길이 될 수 있는 길로 너를 안내하겠다.



가까이 있지만 가깝지 않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정서, 우울


  패러독스는 우리의 삶 깊숙이에 있다. 각자가 참이지만,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보면 모순일 때, 우리는 그 관계를 패러독스라고 한다. 각자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관계로 보면 나와 밀입국자는 모순의 관계에 있다. 그는 내 생명을 원하고, 내가 살려면 그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서로 죽이지 않으면서 서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느 날 각자의 생명이 다하여 자연 소멸한다면, 그중의 하나는 더 긴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주인공이고 싶다.


  나는 속으로 거래를 하기 위한 '카드'를 갖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위 좋은 패를 가지고 있으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대형 병원을 찾았다. 전국에서 구름 뗴처럼 몰려드는 인파를 보고 한때 '온 대한민국 사람들이 환자인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외부적 요구에 길들여진 삶을 사는 환자인지도 모른다. 주체성을 상실한 사람들 말이다. 대학원생일 때 5.18을 겪으면서 느끼는 우울감에 대해 '실존적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붙인 적이 있다. 실존의 근원이 우울인 것이다. 우울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존재를 확인하면 그 정체성의 속살이 우울로 가득한 그런 존재를 생각했다.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굴레에 속박 당한 체 더 나은 가치가 있다고 허공을 향하여 외친다면, 그 외침을 듣는 사람들은 우울해질 것이다.



 진단은 문제를 분석하는 첫 행동이다


  사실 나는 효과성 코칭을 개발하면서 내 코칭의 주된 특징의 하나를 '진단과 피드백 기반의 코칭'이라고 했다. 인터뷰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 코칭 대상자를 알 수 있지만, 코칭 대상자를 보는 개념들의 논리적 틀이 부재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대개 자신이 사용한 도구나 방법을 통해 얻은 정보들의 논리적 관계를 스스로 구성한다. 그러나 접근 방법의 한계로 논리적 빈 공간이 있을 때, 자기의 주관을 개입시켜 그 빈 공간을 메꾼다. 소위 주관적으로 해석한다. 나는 이러한 측면의 문제를 극복하는 한 방법이 진단이라고 믿고 있다. 진단은 만병통치약이 아니지만, 적어도 논리성은 진단 도구에 내재한다. 


  전문의는 나에게 내과 진단을 추천했다. 그리고 내과를 찾아가면서 밀입국자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록 함께 살 생각도 있지만,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과정은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물고 늘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현대 의학의 치밀함으로 숨을 곳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나는 혈액 검사를 받았고, 여타 기초 검사와 더불어 CT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바로 현대 의학이 신무기로 개발해 활용하는 것들이다.



숨는 자의 그림자는 길다.
갑갑한 곳에 숨어 봐야,
너의 가쁜 숨소리로 너를 찾을 수 있다


  그를 더 알기 위해서는 내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분신이 되어버린 그를 파헤치려면 결국 나를 파헤쳐한다. 생살을 찢고 속살을 들춰야 한다. 밀입국자의 주식은 바로 나의 신체이다. 신체가 손상되면서 심리가 흔들린다. 그 소용돌이를 밀입국자는 좋아한다. 바로 신체기능이 약화될 때, 질긴 신경 줄이 나긋나긋해지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적을 이기는 방법은 폭탄을 쏟아붓기보다, 심리전을 펼치는 것이다. 밀입국자는 노련한 책사이며 전술가이다. 소위 멀티플레이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미생이다. 의료진의 도움으로 밀입국자가 림프에 사는 종족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현대 의학은 100가지 이상의 림프 거주민을 알고 있다. 결국 환부의 가가호호를 방문하거나, 가장 사회활동이 뚜렷한 지역을 탐침하여 거주민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현재 '특정할 수 없는 림프종'으로만 판명되었다. 그래도 윤곽이 나왔다. 이제 더 깊게 파고들어가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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