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중환자실의 긴 밤 _2편

췌장암 수술 후 "입안에서 쇠맛이 났다"

by 참새수다

고통은 나눌 수 없다, 중환자실의 긴 밤 _2편

2021년 2월. 겨울바람이 유난히 매서웠던 그달, 나는 수술대에 올랐다.

췌장암 3기 초. 살기 위해서는 내 몸의 장기들을 덜어내야 했다. 위, 십이지장, 담낭, 그리고 췌장까지. 복부를 가르고 장기들을 절개하고 다시 잇는 9시간의 대수술. 마취 가스가 폐부로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나는 몰랐다. 눈을 떴을 때 마주할 세상이 지옥과 가장 닮아 있을 줄은.


눈을 떴다. 아니, 통증이 나를 깨웠다.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흐릿하게 번졌다. 여기가 어디인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할 새도 없었다. 거대한 덤프트럭이 내 배 위를 짓누르고 지나간 것 같은, 아니 뱃속에 불타는 숯덩이를 한가득 쑤셔 넣은 듯한 격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눈을 뜨고 자연스럽게 통증의 신음 소리가 나왔고 입안과 목덜미 안에는 한 가득의 오물들이 꽉 차 있어 숨쉬기도 버거웠다 말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들어 올린 팔로 허공을 휘저으며 도움을 요청했다 지나는 간호사 얼마나 많은 중환자들을 대했을까 기계 대하듯 상투적인 목소리가 살짝 들린다

"환자분 수술 잘 끝났어요. 중환자실입니다. 아프시면 손에 쥐어준 버튼 누르세요 마약 들어가서 좀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리고 뭐라고 말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신경은 오로지 복부의 절개창에 쏠려 있었다. 무통 주사(PCA) 버튼을 미친 듯이 눌렀다. '딸깍, 딸깍.' 버튼 누르는 소리만 허공에 맴돌 뿐, 통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마약성 진통제라는데, 남들은 이걸 맞으면 몽롱해진다는데, 왜 나에게는 듣지 않는가. 약물이 혈관을 타고 들어올 때마다 통증이 잡히기는커녕, 속 깊은 곳에서 역겨운 오심이 치밀어 올랐다.

"우욱..." 오바이트 올라온다 배에 힘을 주니 더욱 통증이 심해진다

장이 다 끊어진 상태에서 올라오는 구역질은 내장을 뒤틀어 짜는 고문이었다. 진통제는 나에게 구원자가 아니라 또 다른 가해자였다. 오바이트가 나올 정도로 역겨웠지만, 비워낼 위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중환자실은 철저히 혼자였다.

기계들이 규칙적인 비프음을 내며 내 생명 신호를 감시하고, 간호사들이 바쁘게 오갔지만, 그들은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모니터의 '수치'를 관리할 뿐이었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이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들은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수많은 '수술 후 환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소리를 지를 힘도 없었다. 입안은 바짝 말라 있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고통은, 절대 나눌 수 없는 것이구나.

가족도, 의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이 끔찍한 시간은 오롯이 내 살과 신경으로 견뎌내야만 하는 형벌 같은 것이었다. 중환자실의 시계는 멈춘 듯 흘러가지 않았고, 나는 1분 1초를 톱으로 썰어내는 심정으로 버텼다.

삼 일 후. 영원 같던 시간이 지나고 일반 병실로 옮겨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침대가 움직이고 중환자실 문이 열리자 익숙한 바깥공기가 느껴졌다. 살아 나왔다.

내 몸속 장기들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흉터와 통증이 남았다. 하지만 나는 살아서 일반 병실의 천장을 보고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던 그 밤, 그 고통의 기억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이제 진짜 싸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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