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3기
2020년 12월, 여느 해와 다름없이 익숙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늘 보던 의사 선생님들의 얼굴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이곳저곳 검사를 받고 마지막으로 초음파 검사를 위해 침대에 누웠습니다. 매년 그랬듯 미끄덩한 차가운 젤이 배 위에 닿았을 때, 순간적으로 닭살이 돋는 익숙한 감각.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초음파 기계를 든 선생님의 손이 유난히 여러 번 같은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짧은 침묵 끝에, 선생님은 작년에는 보이지 않던 '종양'이라는 낯선 단어를 꺼내셨습니다. 건강검진이 끝난 후 꼭 병원에 등록해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당부가 왠지 모르게 가볍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한참 뒤, 병원 수간호사님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왜 아직 정밀검사를 안 받으셨어요? 꼭 오셔야 합니다." 그 목소리에 그제야 왠지 모를 찝찝함이 불안감으로 변해 심장을 짓눌렀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휴가를 내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PET-CT, MRI 등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정밀 검사들이 이어졌습니다. 며칠 후, 초음파, 외래, 내과 전문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다학제 '라는 곳에 들어섰습니다.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는 그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내 몸의 운명이 결정될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 악성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수술해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보인다 한다
시간이 멈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나와 세상 사이를 가르는 투명한 막이 '툭' 하고 내려와 닫혔을 뿐이다. 의사의 설명은 계속되었지만, 내 귀에는 웅웅 거리는 이명처럼 들렸다. 1기인지 2기인지, 생존율이 몇 퍼센트인지 나열되는 숫자들은 그저 허공을 떠도는 먼지 같았다.
나는 방금 전까지 '생활인'이었으나, 문을 나서는 순간 '암 환자'가 되었다.
다학제 후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병원 복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했다. 접수 대기표를 뽑는 사람, 커피를 들고 웃으며 지나가는 간호사, 휠체어를 미는 보호자. 그 모든 풍경이 어제와 똑같은데, 나만 달라져 있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 주인공만 컬러이고 배경은 흑백으로 변해버린, 혹은 그 반대의 상황에 놓인 기분.
엘리베이터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어제 먹은 김치찌개 국물이 튀어 있는 셔츠 깃. 아침에 급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내 몸 안에 자라고 있다는 그 낯선 세포 덩어리는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차라리 온몸에 붉은 반점이라도 피어올랐다면 덜 억울했을까.
병원 밖으로 나오자 훅 끼쳐오는 12월 겨울의 찬바람과 도시의 소음이 낯설었다.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자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저들은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주말 약속을 잡고, 밀린 카드 값을 걱정하겠지. 나도 불과 한 시간 전까지는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내 고민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재배열되었다. 카드 값 따위가, 직장 상사의 꾸지람 따위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돌덩이가 내 가슴 한복판에 떨어졌으므로.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대신 목구멍 깊은 곳에서 갈증이 올라왔다.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 한 병을 샀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감각이 너무나 생생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아니 '아직은'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괜찮아, 죽지 않아."
누군가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내 입에서 새어 나온 혼잣말이었다. 그 짧은 문장이 발밑으로 툭 떨어져 부서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흔들리는 차체에 몸을 맡기니 비로소 묵직한 피로가 몰려왔다. 암 환자가 되었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버스는 달리고, 해는 저물고, 배는 고파왔다.
이제 알게 되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내일이, 사실은 기적 같은 우연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아주 긴 터널 앞에 서 있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신발 끈을 고쳐 매 본다.
살아야겠으니까. 오늘 저녁은 맛나게 밥 먹고 푹 자자
2020년 12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