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병동 2인실의 기억_6편

그분은 밤하늘의 별이 되었을까?

by 참새수다
믹스보드브런치이미지_병원복도2.png


어젯밤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소음의 지옥이 물러가고, 병동에는 푸르스름한 새벽이 내려앉았다. 곤히 잠든 환자들의 숨소리만이 낮게 깔린 복도. 나는 링거 폴대를 지팡이 삼아 그 고요한 길을 천천히 걷는다. 소란스러웠던 어둠을 지나 맞이한 이 새벽의 적막이 오히려 내 심장 소리를 더 크게 울린다.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낯익은 호실 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창가 쪽 침대가 있었던 그 2인실.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 섰다. 암 환자들에게 입원은 늘 전쟁이다. 항암 주사를 맞으려면 병실이 나야 하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 5인실이나 6인실은 하늘의 별 따기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1, 2인실이 나오면 일단 들어가고 봐야 했다. 하루 이틀 비싼 병실료를 치르다 다인실 자리가 나면 부리나케 옮기는 것이 우리네 서글픈 루틴이었다.


그때도 그랬다. 운 좋게, 아니 어쩔 수 없이 배정받았던 2인실. 나는 복도 쪽, 그는 창가 쪽이었다. 우리 사이엔 얇은 커튼 한 장이 벽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늘 그랬듯 살기 위해, 혹은 버티기 위해 복도를 걷고 또 걸었다. 커튼 너머 그분은 아주 가끔 사모님과 다툼이 있었다. 나직하지만 날 선 목소리들. 내용은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늘 비슷했다. 사모님은 "안 된다"며 울먹이셨고, 환자분은 단호하게 "나는 가겠다"라고 하셨다. 그 실루엣을 보며 나는 그저 치료 과정에 대한 이견이려니, 고된 투병 생활에 지쳐 그러시려니 짐작만 할 뿐이었다.


3박 4일의 항암 일정이 끝나고 내가 퇴원하던 날이었다. 짐을 챙겨 나가며 커튼 너머로 인사를 건넸다.

"저 먼저 퇴원합니다. 치료 잘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그러자 커튼 뒤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괜찮으시면 얼굴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조심스럽게 커튼을 걷었다. 그리고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침대에 앉아 있는 그분의 얼굴은 너무나 앙상했다. 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뼈만 남은 얼굴, 깊게 파인 눈. 같은 췌장암 환자였지만 그는 이미 병마가 깊이 할퀴고 간 말기 환자였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만이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퇴원 축하합니다. 선생님은 꼭 완치되실 겁니다. 정말 좋아 보이세요."

본인의 몸 하나 가누기도 버거워 보이는 분이, 이제 막 항암을 끝내고 나가는 나를 진심으로 격려하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찡해져 오는데, 그가 옅은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저도 축하받을 일이 있습니다."축하받을 일이라니, 혹시 기적 같은 차도가 있으신 걸까. 내 기대와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집사람이랑 좀 다퉜던 게... 저는 경기도 산속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집사람은 끝까지 안 된다고 반대했고요. 그런데 드디어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곳으로 갈 수 있게 됐어요."

그는 정말로 기뻐하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꿈꾸던 여행지라도 가게 된 사람처럼, 평온하고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죽음을 준비하러 가는 길, 삶의 마지막 정거장으로 향하는 것이 그에게는 간절한 소원이었고 승리였던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원 기간 중 우연히 그의 담당 주치의가 복도에서 보호자에게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길어야 3, 4개월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 짧은 시간을, 그는 차가운 병실 천장이 아닌 숲내음 나는 곳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아내 분의 반대는 그를 보내기 싫은 처절한 사랑이었고, 그의 고집은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건강하세요... 꼭 평안하시길 빕니다."

도망치듯 병실을 나오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지금 나는 다시 그 2인실 앞을 지나고 있다. 닫힌 문 너머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생과 사의 경계에서 치열한 밤을 보냈을 것이다. 텅 빈 복도 창문 너머로 새벽 별 하나가 희미하게 반짝인다.

그때 그분은 소원하시던 그 숲 속에서 평안한 쉼을 얻으셨을까. 지금 저 하늘 어딘가에서 고통 없는 별이 되셨을까. 새벽 공기가 유난히 차갑다.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지고, 목이 메어온다. 나는 한참이나 그 닫힌 문을 바라보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내가 걷는 이 걸음이, 내가 내쉬는 이 숨이 사무치게 감사하고 또 미안한 새벽이다. 짧은 인연의 추억이 이리 크단 말인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악몽 같은 밤 병원이라는 정글_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