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오래 바라볼 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세상

관찰이 당신의 삶을 구원하는 방식

by 참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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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우리는 무언가에 쫓기듯 집을 나섭니다.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익숙한 길을 걷습니다. 그 길에 어떤 나무가 심겨 있는지, 오늘 하늘의 구름 모양은 어떤지,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떤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저 '지나가야 할 길'일 뿐이지요.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은 기억에 남지 않고 증발해 버립니다. 우리의 하루가 늘 똑같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특별한 사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특별함을 발견할 시선을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관찰'이란 단어는 언뜻 건조하게 들립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과학자나 범인을 쫓는 형사에게나 필요한 덕목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에서의 관찰은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대상을 향한 '오래된 응시'이자 '다정한 애정'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던 아파트 화단에 쪼그려 앉아본 적이 있나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작은 공간 안에도 치열한 우주가 있습니다. 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가지 끝에 맺힌 연두색 눈, 바쁘게 먹이를 나르는 개미의 행렬, 햇살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잎사귀의 반짝임.

그것들을 발견하는 순간, 그저 '배경'에 불과했던 풍경은 비로소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김춘수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된 것처럼, 우리가 관찰할 때 세상은 비로소 의미를 입고 우리 곁에 머뭅니다.


관찰의 습관이 무서운 점은, 이것이 '공감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운다는 사실입니다. 타인을 그저 '행인 1'로 보지 않고 관찰하기 시작하면 그의 굽은 등에서 짊어진 삶의 무게를 읽게 되고, 지하철 맞은편 청년의 낡은 운동화에서 치열한 청춘을 보게 됩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던 세상이, 실은 모두가 각자의 전투를 치르며 살아가는 곳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때 솟아나는 유대감과 위로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수록 내 마음의 그릇도 함께 커집니다. 또한 관찰은 우리를 '지금, 여기'에 살게 합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대개 우리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할 때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하지만 눈앞의 커피 잔에 피어오르는 김의 모양을 관찰하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의 온도를 느끼는 순간, 우리는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게 됩니다. 잡념이 사라진 그 몰입의 순간들이 모여 단단한 자존감을 만듭니다.

그러니 오늘, 잠시 멈추어 보셨으면 합니다. 거창한 것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매일 쓰던 볼펜의 흠집, 창가에 내려앉은 먼지의 춤, 사랑하는 사람의 눈가에 생긴 옅은 주름까지.


오래 보고, 자세히 보십시오. 세상은 관찰하는 자에게만 자신의 속살을 보여줍니다. 그 비밀스러운 발견들이 쌓여 당신의 하루를, 마침내 당신의 인생을 전보다 훨씬 풍요롭고 아름답게 바꿀 것입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새로운 인생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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