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
"나를 팔 줄 아는 사람이, 무엇이든 팔 수 있다."
자기 계발서의 표지에서, 혹은 성공한 사업가의 강연에서 흔히 듣는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문득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곧 내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진열대에 올라간 '상품'이라는 뜻이니까요.퇴근길 버스 창가에 기대어 멍하니 생각에 잠깁니다. 만약 내 이마에 바코드가 붙어 있다면기계는 얼마를 찍어낼까요. 나는 백화점 1층의 화려한 명품관에 어울리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마감 세일을 알리는 붉은 딱지가 붙은 매대의 상품일까요.
누가 나를 살까. 나의 구매자는 누구일까. 이력서에 적힌 몇 줄의 경력과 통장에 찍힌 숫자가 정말 나라는 사람의 '전 성분'이 될 수 있을까요.우리는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면접관 앞에서, 상사 앞에서,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조차 나를 '어필'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가성비 좋은 사람인지, 혹은 얼마나 소장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설명하려 애씁니다.
그러다 거절이라도 당하는 날이면, 마치 반품된 물건이 된 것처럼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상품 가치 없음'. 세상이 내게 그런 판정을 내린 것만 같아 움츠러듭니다.
하지만 말이죠.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상품과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상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낡고 가치가 떨어지지만,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집니다. 흠집 난 상품은 폐기 처분되지만, 상처 입은 사람은 그 흉터 덕분에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품을 갖게 됩니다.
당신이 겪어낸 수많은 실패는 결함이 아니라, 당신만이 가진 고유한 서사(Narrative)입니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 밤새워 고민했던 열정, 남몰래 흘린 눈물은 세상 어떤 화폐로도 환산할 수 없는 당신만의 자산입니다.우리는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이 아닙니다. 저마다의 계절을 견디며 피어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야생화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의 값을 매기려 들거든, 너무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가치는 타인의 평가표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당신의 거친 손끝에, 그리고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고 믿는 당신의 단단한 눈빛 속에 있습니다.
나를 파는 기술보다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길 때, 세상도 비로소 나를 귀한 존재로 대접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오늘 제 가격표는 '미정'으로 해두겠습니다. 숫자로 단정 짓기엔, 아직 보여주지 못한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비싸고 귀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