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를 다니며
치과를 다닌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내 입안의 계절은 여전히 한겨울이었습니다. 임플란트 세 개, 씌우는 크라운 이 세 개. 거기에 신경치료까지. 입을 벌리고 누워 천장의 무늬를 세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시간들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건 입을 벌리고 있는 육체적 고통보다 반복되는 희망 고문이었습니다.
벌써 다섯 번째입니다.
본을 뜨고, 일주일을 기다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 문을 엽니다."이번에는 맞겠지. 이번엔 끝나겠지."
본드로 단단히 붙여놓은 임시 치아를 빼내려 망치 같은 도구가 입안으로 들어옵니다.'탕, 탕.'그 충격이 턱을 넘어 머리 전체를 뒤흔듭니다. 마취 주사의 따끔함은 차라리 애교입니다.
골이 흔들리는 그 진동보다 더 아픈 건, 그 순간 들려오는 의사의 말입니다. "환자분 무는 습관이 좀 다르시네요." "치아 구조가 참 특이해서..."순간, 턱 끝까지 차오르던 울화가 목구멍을 탁 막아섭니다.
본을 뜬 건 병원이고, 그걸 만든 것도 기공소일 텐데.
왜 안 맞는 원인은 내 턱관절과 내 치아의 생김새여야 할까요.나는 그저 입을 벌리고 있었을 뿐인데, 왜 잘못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는 걸까요.
전문가로서의 자존심 때문일까요. 실수를 인정하면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사실 제가 바란 건 대단한 보상이 아니었습니다."많이 힘드셨죠. 저희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이번엔 꼭 편하게 해 드릴게요."그 따스한 말 한마디면 되었습니다. 그 한마디면, 망치질의 충격도, 일주일을 또 기다려야 하는 허탈함도 눈 녹듯 사라졌을 겁니다.
환자는 의사의 기술을 믿고 몸을 맡기지만, 결국 마음을 기대는 건 의사의 태도입니다.'미안하다'는 말은 패배의 언어가 아니라 공감의 언어라는 걸, 그 차가운 진료실 의자 위에서 배웁니다.오늘도 욱신거리는 잇몸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입안의 구조가 유별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과가 유난히 인색했던 것은 아닐지 씁쓸하게 되뇌어 봅니다.아픈 건 저인데, 핑계는 왜 당신의 몫인가요.배려와 친절이 그리 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