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바이'라는 삶의 태도에 관하여

by 참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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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바이." 그 짧은 외침이 들리는 순간, 공간의 공기는 일순간에 바뀐다. 왁자지껄하던 소음은 진공 상태처럼 사라지고,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신경은 오직 하나의 지점을 향해 팽팽하게 당겨진다. 그것은 단순한 시작 신호가 아니다. 지난한 준비 과정을 끝내고 비로소 세상 밖으로 무언가를 내보내기 직전의 찰나, 가장 밀도 높은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평생을 그 단어와 함께 살았다. 몸이 기억하고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그 조건반사는 카메라 렌즈 앞이나 무대 뒤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부턴가 그 '준비의 미학'은 나의 일상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어, 타인을 만나는 나의 가장 사소하고도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약속 시간 10분 전, 아니 30분 전, 때로는 한 시간이나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습관은 어쩌면 강박보다는 안도감에 가깝다. 텅 빈 테이블에 앉아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수없는 리허설을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올 당신의 표정을 상상하고, 첫마디를 고른다. "오랜만이야"라고 할까, 아니면 그저 환하게 웃으며 "어서 와"라고 할까. 날씨 이야기를 먼저 꺼낼지, 당신의 안색을 먼저 살필지 고민하며 마음의 주파수를 당신에게 맞춘다. 허겁지겁 도착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정돈된 호흡으로 온전히 당신을 맞이하고 싶은 욕심. 그것이 나에게는 관계에 대한 예의이자 사랑의 방식이다.


남들은 "왜 그렇게 일찍 가서 사서 고생을 하느냐"라고 묻곤 한다. 하지만 미리 도착해 공간의 냄새를 맡고, 의자의 감촉을 느끼며,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아두는 그 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진정한 '스탠바이'다. 내가 먼저 편안해져야 상대를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기다림은 지루한 인내가 아니라, 상대를 향해 걸어가는 마중의 시간이다. 시계를 보며 조바심을 내는 대신, 당신이 앉게 될 맞은편 의자를 보며 따뜻한 온기를 미리 채워두는 상상을 한다. 그렇게 준비된 마음으로 당신을 맞이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만남은 '온에어(On-Air)'가 되고, 그 순간만큼은 어떤 잡음도 없이 선명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록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사실 나를 다듬는 일이었다. 10분 먼저, 혹은 30분 먼저 도착해 있는 나의 모습은 "당신과의 만남을 이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무언의 고백이기도 하다. 세상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나는 여전히 이 아날로그적인 기다림을 고집할 것이다. 약속 장소 문이 열리고 당신이 들어서는 순간, 나는 속으로 조용히 외칠 것이다. 준비됐어, 큐. 이제 우리의 시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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