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겠다고 삼킨 미음_8편

어느날 암환자가 되었다 ( 병원 화장실 비데 사용하지 마세요)

by 참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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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장기 네 개가 떨어져 나갔다. 텅 빈 뱃속을 안고 중환자실의 기계음 속에서 며칠을 버텼고, 일반 병동으로 옮겨와서도 또 며칠을 뜬눈으로 견뎠다. 인간의 존엄이나 삶의 질 같은 건 사치였다. 그저 내 장기가 다시 꿈틀대주기를, 멈춰버린 내 몸의 공장이 다시 가동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기적처럼 '뾰로록'하고 가스가 터져 나왔다. 그 짧고 경박한 소리가 그토록 반가울 수 없었다. 의사는 이제 물을 마셔도 좋다고 했고, 곧이어 뽀얗고 묽은 미음이 내 앞에 놓였다. 쌀알의 형체조차 거의 남지 않은, 그저 쌀뜨물보다 조금 진한 액체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내가 이승에서 다시 맛보는 첫 번째 '밥'이었다.


오랜 굶주림 끝에 들어온 곡기는 달았다. 혀끝에 닿는 미지근한 온기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비어있는 위장을 조심스럽게 적셨다. 하지만 감동은 짧았고 현실은 가혹했다. 위장은 너무 오랫동안 파업 상태였던 탓일까, 아니면 낯선 침입자에 놀란 탓일까. 미음을 몇 술 뜨자마자 뱃속에서 천둥 같은 꾸르륵 소리가 났다. 소화가 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거부의 신호였다. 식판을 밀쳐낼 새도 없이 링거 폴대를 끌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괄약근의 조절 능력조차 잃어버린 듯,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묽은 변이 쏟아져 나왔다.


문제는 그 다급한 뒤처리에 있었다. 평소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데 버튼을 눌렀다. 그것이 내 몸에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수술과 항암 치료로 내 몸의 면역 체계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고, 겹겹이 쌓인 방어막은 모두 해제된 상태였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겉보기엔 하얗고 깨끗해 보이지만, 불특정 다수의 환자가 공유하는 화장실, 특히 비데 노즐은 세균의 온상이나 다름없었다. 그 쏘아 올려진 물줄기는 위생이 아니라 독이었다. 무방비 상태인 내 점막으로, 멸균되지 않은 타인의 흔적과 세균들이 거침없이 침투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그날 이후 내 몸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처음엔 그저 오랜만의 식사 탓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에 세 번, 네 번, 화장실을 찾는 횟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먹은 것이라곤 고작 미음 몇 숟가락과 물뿐인데, 뱃속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쥐어짜 냈다. 단순한 설사가 아니었다. 장염에 걸린 듯 배를 쥐어짜는 통증이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다리가 풀려 침대까지 기어가다시피 했다. 뱃가죽은 등가죽에 붙을 만큼 말라가는데,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탈수와 함께 찾아온 무력감은 수술 직후의 통증과는 또 다른 공포였다. 비데 버튼 하나가, 겨우 붙잡은 내 생명의 줄을 갉아먹고 있었다. 몸은 점점 더 깊은 늪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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