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스마트'라는 단어가 막 태동하던 시절, 처음 마주했던 그 작은 기기의 감촉을 기억한다. 차가운 금속과 유리의 조합이었음에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을 때 전해지던 느낌은 기묘하게도 따스한 조약돌 같았다. 크지 않은 내 손안에 빈틈없이 파고들던 그 볼록한 뒷면의 곡선은 단순한 공학적 설계를 넘어선 일종의 배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지손가락 하나로 모든 세상을 제어할 수 있었던, 고급스럽고도 귀여운 장난감. 우리는 그것을 혁신이라 불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디지털 세상으로 들어가는 가장 낭만적인 열쇠였다. 매끄러운 표면을 쓰다듬으며 느꼈던 그 안정감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손끝에 선명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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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아이폰 곁에는 늘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JBL 도킹 스피커가 있었다. 블루투스 페어링이라는 보이지 않는 연결이 당연해진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물리적으로 폰을 꽂아야만 소리가 나는 방식은 다소 투박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철컥'하고 기기를 결합하는 그 명쾌한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던 중저음의 울림에는 디지털이 흉내 낼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블랙과 메탈이 조화를 이룬 스피커의 디자인은 세월의 먼지를 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공간의 공기를 차분하게 눌러주는 중후한 오브제가 되어, 침대 맡이나 책상 위 그 어디에 두어도 소란스럽지 않게 어우러진다.
놀라운 것은 이 오래된 물건들이 여전히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알람을 울려 나를 깨우고, 저장된 옛 노래들을 변함없는 음색으로 들려준다. 라디오 주파수를 93.9 MHz에 맞추면 CBS 음악 FM 특유의 편안한 선율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최신형 기기들이 1년이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며 "나를 사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라고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이 낡은 기기들은 도리어 위안이 된다. 빠름만이 미덕인 시대에, 변하지 않는 속도로 흐르는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진정한 명품이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내는 힘을 가진 물건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겉면의 광택은 조금 바랬을지 모르나, 그 안에 담긴 추억과 본질적인 기능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새벽녘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바꾸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손때 묻은 아이폰과 낡은 스피커가 건네는 아침 인사가 유독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것들이 품고 있는 세월의 온기 때문일 것이다. 낡았지만 낡지 않은, 시간이 빗어낸 아름다움이 내 곁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조금 더 근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