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야전(野戰)'이 AI라는 날개를 만났을 때

현장사람들

by 참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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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편집실의 방음문을 밀고 나올 때의 그 서늘한 공기, 수십 명의 스태프가 숨죽여 기다리던 큐 사인 직전의 긴장감, 그리고 마침내 "오케이, 컷!"을 외칠 때 온몸을 감싸던 짜릿한 전율.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담아냈고, PD의 귀는 현장의 소음 속에서 진실된 목소리를 골라냈습니다. 이제 정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다가와 명함 위의 직함이 사라졌지만 , 그 치열했던 현장의 감각과 본능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책상머리에서 글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비가 쏟아지는 야외 촬영장에서, 펑크 난 출연자를 대신할 대안을 찾으며 1분 1초를 다투던 그 절박함 속에서 몸으로 체득한 '야전의 지혜'는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PD만의 고유한 훈장과도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우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AI는 평생을 이야기꾼으로 살아온 PD에게 가장 완벽한 파트너가 되어줄 준비를 마쳤습니다. 과거에는 머릿속에 그려진 웅장한 장면 하나를 구현하기 위해 수억 원의 제작비와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타협해야 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AI 영상 제작 도구들은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는 수십 명의 유능한 조연출이자 미술팀이며, CG팀입니다. "이 장면은 로우 앵글로, 조명은 누아르 영화처럼 거칠게 잡아줘."라는 PD의 주문 프롬프터 한 줄은 영상이 되어 나타납니다 30년 내공의 연출가는 AI가 만들어낸 수많은 컷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울릴 단 한 장면을 골라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과 인력의 한계에서 벗어나, 오로지 당신의 연출력 하나로 승부할 수 있는 진정한 '1인 제작사'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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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대중은 차가운 정보가 아닌 뜨거운 '사람의 이야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지난 30년간 현장에서 부대끼며 겪었던 수많은 갈등과 해결의 과정,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사람 사이의 매듭을 풀어냈던 그 생생한 경험담은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가 됩니다. AI는 정보를 조합할 수는 있어도,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출연자의 마음을 열게 했던 PD의 따스한 카리스마나,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던 동물적인 감각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이제 유튜브나 강연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혹은 전자책이라는 지면을 통해 후배들과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진짜 어른'의 문제 해결법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계적인 매뉴얼이 아닌, 땀 냄새 베인 경험의 '실천적 지혜'에서 위로를 얻고 길을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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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거대 조직의 부품이 아니라,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손발처럼 부리는 '총괄 디렉터'이자 '자유로운 거장'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직접 복잡한 툴을 다루는 것이 번거롭다면, 큰 그림을 그리고 결정하는 역할에 집중할 것입니다. AI가 수백 개의 시안을 1분 만에 쏟아낼 때, "이건 감정선이 약해", "이 컷은 호흡이 너무 길어"라고 판단하고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세월이 빚어낸 거장에게만 허락된 권한입니다. 더 나아가, 동년배 시니어들에게 "AI는 어려운 기계가 아니라, 내 말을 잘 듣는 똑똑한 막내 스태프와 같다"라고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시는 건 어떨까요. 은퇴는 마침표가 아니라, 30년의 내공이라는 든든한 닻을 내리고 AI라는 새로운 바람을 타고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출항의 신호탄입니다. 카메라의 빨간 불은 꺼졌어도, 당신 인생의 'On Air'는 지금부터가 진짜 나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그간의 레트로가 뉴트로와 Mix 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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