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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계산인 홍석경 Oct 19. 2022

고려청자 칠보무늬의 기원(1)

내 고향은 그리스·로마입니다.

헤라클레스가 지났던 길을 따라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존재했던 인도·페르시아·지중해 문명이 중국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근거리에서 이루어졌던 문물교류가 7세기에 이르면, 서쪽의 지중해 연안부터 페르시아-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을 거쳐 동쪽의 장안까지, 8세기에는 신라 경주까지 양방향으로 활발히 일어났다. 동·서간 문물교류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대되었다. 마침내 북인도·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지역에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고대 그리스 문명이 불교를 매개로 해서 신라까지 전파되는 동방 실크로드가 구축되었다. 


동방 실크로드를 통해서 입상, 좌상, 반가상과 같은 불상과 더불어 보살상과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수호신상, 사자상, 당초문, 연화문과 같은 불교예술이 신라로 들어왔고, 신라는 이를 적극 수용하여 독자적인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우리는 불상을 처음 탄생시킨 쿠샨 제국의 마투라에서 만든 초기 불상에서 불교미술이 동쪽으로 전파된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두 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좌정한 붓다(seated Buddha with two attendants)’라는 제목이 붙은 이 좌상은 사르나트(녹야원)에서 다섯 명의 비구에게 행한 붓다의 초전법륜 장면을 붉은빛이 감도는 사암에 새긴 불상으로, 가장 오래된 초기 불상 형식이다.


좌정한 붓다의 얼굴에는 깨달음을 설파한다는 기쁨이 잘 표현되어있으며, 그의 손동작(시무외인)에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탐진치(탐욕·성냄·어리석음)에 휘둘리지 않는 두려움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잘 드러나 있다. 불상의 조각 솜씨는 매우 정교하고, 이상적인 신체 비례에서 오는 균형미가 뛰어나며, 전체적인 조형미가 대단히 뛰어난 명품이다. 이 불상에서 내가 특히 관심을 갖고 살펴본 곳은 붓다가 앉은 좌대, 즉 사자좌의 문양이다. 먼저 장방형 사자좌의 한가운데에 새겨 놓은 기둥을 크게 확대해서 살펴보자. 

사진 1. 좌정한 붓다 석상과 좌대(사자좌)의 문양 (1) 사르나트(녹야원)에서 행한 붓다의 초전설법 장면을 붉은빛이 감도는 사암에 새긴 불상이다. (2) 장방형 대좌 한가운데에 있는 꽃무늬를 확대한 것으로 로마 전통문양인 ‘산딸나무 꽃무늬’가 보인다. (CE 82년, 킴벨미술관 소장)


기둥의 꼭대기에는 부처를 상징하는 법륜(wheel of dharma)이 자그마한 대좌 위에 올려놓아져 있고 대좌에는 십자형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문양은 필자가 ‘산딸나무 꽃무늬’라고 부르는 것으로 특히 로마제국에서 모자이크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유럽에서는 이 문양에 ‘네 잎 꽃무늬(four-petal flower pattern)’라는 심심한 이름을 붙였지만,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는 ‘칠보무늬(seven treasury pattern)’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달라서인지 전 세계의 어느 고고미술사학자도 두 문양이 기하학적으로 완전히 닮은꼴 문양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오랜 문양 연구에 의하면, 동서양의 두 문양은 기하학적으로 완벽히 똑같은 문양이며 그리스·로마의 꽃무늬가 그 원형에 해당한다. (사실은 네 잎 꽃무늬 그리스·로마 문양도 진짜 원형은 아니며, 산딸나무 꽃무늬의 기원은 인류 최초의 문명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 계곡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후 시기에 로마의 산딸나무 꽃무늬는 북인도로 전파되었고, 대승불교가 동쪽으로 전파될 때 불교미술의 장식문양으로 건너와 불화나 불구에 널리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생활 자기의 장식문양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적당한 기회에 동아시아 칠보무늬의 원형에 해당하는 그리스·로마의 산딸나무 꽃무늬의 기원과 전파과정에 대해 보다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사진 2. 로마의 꽃무늬는 동아시아에 전파되어 장식문양으로 사용되었다. (1)-(3): 로마 모자이크(2-3세기, 7세기), (4) 펜지켄트 벽화 (6-8세기, 타지키스탄), (5) 안서 유림굴의 천장벽화(11-13세기, 중국 서하국), (6) 청자 투각환화문 돈(13세기, 고려)

사진 3. 실크로드를 통해 동방으로 전달된 꽃무늬: 이 문양들은 같은 뿌리(인더스 계곡 문명)에서 나와 서로 다른 가지에서 활짝 핀 산딸나무 꽃무늬이다. (1) 미케네 청동칼 (BCE 16세기, 그리스) (2) 로마 모자이크 (CE 2-3세기, 로마제국), (3) 코카 석굴교회(투르키예 으흘라라 계곡)의 천장 벽화 (CE 10-11세기, 동로마 제국), (4) 태화원년명 석가모니불좌상의 좌대 (477년, 중국 북위), (5) 8각 금제 술잔의 테두리 장식문양 (CE 8-9세기, 중국 당), (6) 자주요(磁州窯) 형 도자기 (CE 10-12세기, 중국 북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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