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계산인 홍석경 Oct 20. 2022

고려청자 칠보무늬의 기원(2)

테살로니키 로툰다에 핀 산딸나무 꽃(상편)

테살로니키의 로툰다에 핀 산딸나무꽃(상편)

갈레리우스 로마 황제의 개선문이 세워진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125m 떨어진 거리에 로툰다(Rotunda)가 있다. 로툰다는 바닥이 둥근 원형 건물을 일컫는 건축용어로, 로마의 판테온(Pantheon·범신전)도 로툰다이다. 테살로니키 로툰다는 직경 24.5m의 원기둥 벽체에 둥근 돔을 얹은 것으로 지상에서 돔 중앙까지 높이가 30m에 달하는 상당히 우람한 벽돌 건물이다. 그런데 원기둥 모양의 바깥 벽체가 둥그런 돔 위쪽으로 치솟은 탓에 외부에서는 거대한 돔이 보이지 않는다. 로마 건축가가 이렇게 설계한 이유는 돔을 보호하기 위한 기와지붕을 얹기 위해서였다. 높이가 30m이면 대략 10층 건물에 해당한다. 로툰다처럼 10층 높이의 벽돌 건물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벽체가 두꺼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로툰다 하단의 벽체 두께는 자그마치 6.3m나 되는데 로마 건축가는 이 두터운 벽체에 둥근 아치 천장을 갖는 8개의 벽감을 일정 간격으로 설치하여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건물의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로툰다의 용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갈레리우스 황제가 자신의 마우솔레움(mausoleum·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하고,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본 따 지은 황제 숭배 신전이었거나 제우스 신전이었다고도 한다.

사진 1. 갈레리우스 로마 황제의 개선문과 로툰다 (그리스 테살로니키)  (1),(2) 갈레리우스 로마 황제가 부제(카이사르) 시절이었던 서기 298년에 사산조 페르시아 군을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관할구역인 테살로니키에 세운 것이다. 현재는 개선문의 기둥(4x2=8개) 가운데 서쪽에 있던 기둥 3개만 남아 있다. (3) 개선문에서 바라본 로툰다 (4) 로마제국 시기(CE 4세기 초)에 황제 도시로 번영을 구가했던 테살로니키 모습으로 개선문과 로툰다는 남북대로 상에 놓여 있었다.  


CE 306년 무렵에 지은 것으로 짐작되는 로툰다는 수십 년간 사용하지 않다가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지시로 4세기 말에 기독교 교회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로툰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가운데 하나이자 테살로니키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는 교회 건축양식이란 게 따로 없던 시절이라 로툰다나 바실리카와 같은 기존 공공건물을 교회로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테살로니키 기독교인들은 원형 건물을 교회로 사용하기 위해서 동쪽 벽감의 벽을 허물고 여기에 반원형 후진으로 마감한 직사각형 모양의 지성소를 이어 붙였다. 또한 이 시기는 아직 기독교 미술이 정립되지 않은 때라서 교회 내부를 어떤 도상학적 콘셉트로 꾸미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당면한 숙제였다. 당연히 초기 기독교 예술가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들은 머리를 감싸 쥐고 궁리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인 아우구스투스(로마 황제)가 머무는 황궁의 장식과 황제 숭배 컬트에서 일부 이미지를 빌렸다.  

사진 2. 로툰다  (1) 땅바닥에서 돔 꼭대기까지 높이는 30m이고 돔 높이만 10m이다. 돔 위에는 지붕을 씌웠다. (2) 로툰다 내부. 둥실한 천장(돔)을 세 영역으로 나누어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3) 평면도 (4) 출입문이 있는 남쪽에서 바라본 로툰다  


자, 그러면 초기 기독교 예술가가 어떤 도상학적 콘셉트로 세계 최초의 교회 가운데 하나인 로툰다 내부를 꾸몄는지 안으로 들어가 구경해보자. 이를 위해 우리는 개성상인으로 변신하고, 13세기 말 동서무역을 위해서 고려 벽란도를 출발하여 오늘 오전에 테살로니키 항구에 도착했다고 상상해보자. 고려청자는 비잔티움 제국에서도 최고 인기를 누렸다. 고려 무역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는 신하를 급히 보내 산딸나무 꽃무늬나 들국화 무늬가 장식된 최상품 고려청자 수십 점을 싹쓸이해갔다. 나머지 중하품은 로만 아고라에 풀어놓기가 무섭게 테살로니키 부자들과 중간상인들이 모두 사갔다. 배에 싣고 온 고려청자 수천 점을 불과 반나절 만에 팔아치운 개성상인은 이국정취가 물씬한 테살로니키에서 가장 볼만하다는 로툰다 구경에 나섰다. 로툰다 교회는 원형의 건축물과 내부를 장식한 모자이크 성화가 아름다워 로툰다 주변은 늘 순례자로 북적였다.


개성상인은 길게 늘어선 순례행렬의 꽁무니에 붙어서 로툰다 출입구인 남쪽 통로를 통해서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의 둥근 아치 천장에는 황궁의 벽이나 거실 바닥을 꾸미는 데 사용됐던, 지극히 세속적이지만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예쁜 새와 과일 문양으로 풍성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통로에 들어선 순례 일행과 개성상인은 처음 보는 멋진 장식문양에 이끌려 일제히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장식문양의 아름다움에 저마다 경탄을 하였다. 모자이크로 치장된 통로는 지상세계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건물 중앙의 거대한 돔에 표현된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길이었다. 통로를 통과하여 중앙의 돔에 의해 만들어진 널찍한 공간, 즉 네이브(신자석)로 들어선 순례자들은 거대한 돔을 360도 빙 돌아가면서 돔 표면을 장엄하게 장식한 모자이크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비잔티움 예술가가 창안한 돔 모자이크 구성의 주제는 천상의 세계(the heavenly world)였다. 그는 천상의 세계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거대한 돔을 삼분할하고 각 영역마다 특정 주제를 모자이크로 나타내었다.

사진 3. 로툰다 돔의 모자이크 비잔티움 예술가가 창안한 돔 모자이크의 주제는 천상의 세계였다. 그는 천장 돔을 삼분할 하고 아래부터 위로 순교자, 천국의 뜨락,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오른쪽 위 사진)을 표현했다.   


로마제국이라는 현실세계는 황제-귀족-평민-노예로 구성된 계급사회이었듯이, 중세 초기의 기독교 예술가가 상상한 천상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천사 또는 열두제자-순교자-일반 기독교인이 계층을 이루는 위계적 세계였다. 로툰다 돔의 맨 아래 부분은 순교자 영역이다. 돔의 아래쪽 원둘레는 65.5m이며, 여기를 360도 빙 돌아가면서 순교자를 그린 8개의 패널이 일정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지성소 바로 윗부분(동쪽 패널)을 제외하고 7개 패널이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각 패널마다 두 명 또는 세 명의 순교자가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리고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펼친 채 기도하는 자세로 서 있다. 이들의 배경에는 헬레니즘 시대나 로마시대 극장의 무대 정면(scaenae fron)을 닮은 장엄한 건축물이 있는데 이것은 천국의 문을 상징한다. 돔의 중간 부분인 두 번째 면은 거의 다 파손되고 샌들을 신은 발 흔적만 남아 있다. 따라서 여기에 어떤 도상이 있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의 제자인 사도들이라는 주장도 있고 천사들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이곳의 도상학적 주제는 천국의 뜨락(the heavenly court)이었을 것이다.

(하편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려청자 칠보무늬의 기원(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