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일행의 눈길은 순교자들이 맞이하는 천국의 문을 통과하여 천국의 뜨락을 지나 마지막으로 돔의 맨 꼭대기에 있는 천계의 왕, 예수 그리스도로 향하게 된다. 이곳을 장식한 모자이크의 도상학적 주제는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theophany of Christ)이다. 동그란 원반으로 표현된 천국을 네 명의 날개 달린 천사가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다. 천국은 몇 개의 동심원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동심원 띠의 내부는 과일나무나 빛나는 별과 같이 로마제국의 황궁을 꾸미는 데 사용된 장식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마침내 순례자는 경외감이 가득 찬 눈으로 동심원의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비잔티움 예술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여러 날 고민했을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여전히 황제 숭배 컬트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존귀한 자인 아우구스투스(황제)의 이미지를 빌리기로 했다. 19세기 말에 유럽에서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자동차의 형상은 영락없이 마차를 닮았듯이, 문명의 과도기에는 앞선 세대의 형상을 차용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로툰다 돔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는 지진으로 파괴되어 사라졌지만 목탄으로 그린 밑그림이 살아남아 있어 전체적인 모습을 대략이나마 추정해 볼 수 있다. 그 형상은 비슷한 시기에 만든 이태리 로마의 산타 코스탄차(Santa Costanza) 성당의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와 비슷한 모습으로 밝혀졌다. 산타 코스탄차의 예수 모자이크에서 볼 수 있듯이, 로툰다 돔의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황제를 상징하는 보라색과 존귀함을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물들인 옷을 입고 오른손을 위로 치켜올린 자세로 서 있다. 이것은 테오도시우스 1세 동전의 뒷면에 새긴 황제의 자세와 매우 비슷하다. 우리는 동시대에 제작된 두 유물의 비교를 통해서 로마 황제의 상징요소가 초기 기독교 미술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1. 예수 그리스도, 로마 황제,붓다의 상 비교 공통적으로 ‘두려워 말라’는 손동작을 하고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이크 (4세기 초, 이태리의 산타 코스탄차 성당) (2)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모습을 새긴 주화 뒷면 (CE 379-395년) (3) 쿠샨 제국의 카니슈카 대왕의 금화 뒷면. 붓다를 뜻하는 보도(BoΔΔo)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얼굴과 몸에는 동그란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CE 120년) (4) 서산 용현리 마애불 (7세기, 백제)
그런데 사진에 보인 황제의 제스처는 사실 이보다 훨씬 앞선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유래된 것이다. CE 1-4세기에 북인도에 자리 잡았던 쿠샨 제국의 카니슈카 대왕(재위 기간: 120-144년)의 동전 뒷면에 새긴 붓다상을 살펴보자. 쿠샨 제국은 아프가니스탄 유역의 그리스계 헬레니즘 왕국인 박트리아를 멸망시킨 유목민족(월지족)이 세운 나라이다. 박트리아는 기원전 4세기 말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에 따라나선 그리스인의 후예가 기원전 3세기 중엽에 아프가니스탄 유역에 세운 나라이며, 박트리아 왕국을 멸망시킨 쿠샨 제국은 헬레니즘 문명을 고스란히 흡수하였다. 쿠샨 제국의 역대 왕들도 고대 그리스 양식의 주화를 발행하였는데 그리스 주화처럼 정면에는 왕의 옆모습을, 뒷면에는 그리스, 페르시아 또는 인도 신의 모습을 새겨놓았다. CE 2세기에 제작된 카니슈카 대왕의 금화 뒷면을 장식한 붓다 상을 살펴보자. 그의 왼손은 옷자락을 붙잡고 있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리고 손바닥을 앞으로 내보이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 왕이나 제우스신의 제스처에서 유래된 것으로 ‘두려워 말라(no fear)’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불상의 자세와 손동작을 한자로 시무외인(施無畏印)이라 하는데 ‘시무외’는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뜻이다.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은 불상을 처음 만들었던 쿠샨 제국의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1-2세기 무렵에 등장하였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상은 거의 대부분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불상은 백제 말기에 제작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의 석가모니불이다. 서산 마애불의 시무외인 손동작이나 로툰다의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손 손동작은 왕이나 황제의 권위와 힘을 상징하는 제스처에서 비롯된 만큼, 비록 시대와 종교는 다르지만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두 신상의 자세에는 어딘가 모르게 서로 닮은 점이 있다. 로툰다 돔 모자이크는 단일하고 통일된 도상 해석학에 입각하여 꾸민 것으로 모자이크의 구성은 극도로 상징적이고 영광이 넘치며 위계적이다. 이 작품은 대략 4-6세기에 만든 것으로 초기 기독교 미술과 비잔티움 예술의 결정체를 보여준다.
돔 구경을 모두 마친 개성상인은 테살로니키의 기독교 순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라 부르는 인물상이 자신이 믿는 붓다와 너무 빼닮아서 한편으론 놀랍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고향에서 붓다라고 부르는 신을 이곳 사람들은 예수라 부르는가 싶기도 하였다. 너른 세상에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자들과 헤어진 개성상인은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새살낙니기(塞薩洛尼基)에 와서 로툰다 구경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아직 구경하지 못한 모자이크를 마저 구경하기로 했다. (테살로니키를 한자로 표기(음차)하면 새살낙니기(塞薩洛尼基)가 된다.)
그는 지성소 맞은편에 있는 서쪽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천장에는 로마인들이 거실 바닥이나 벽면을 꾸미는데 즐겨 사용했던 기하문양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개성상인이 천장을 올려다본 순간, 기절초풍하여 쓰러질 뻔하였다. 왜냐하면 이 천장 문양은 그가 오전에 비잔티움 황제에게 판매한 청자베개의 투각 문양을 고스란히 빼다 박은 십자형 꽃잎무늬였기 때문이었다. 개성상인은 여러 청자문양 가운데 특히 이 십자형 꽃무늬를 좋아했다. 고려왕실의 화원들은 이 문양을 ‘칠보무늬’라고 부르지만 개성상인은 그런 따분한 이름보다는 ‘산딸나무 꽃무늬’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로툰다의 십자형 꽃잎은 한술 더 떠서 불교에서 즐겨 사용하는 만(卍) 자 문양으로 멋까지 부렸으니 독실한 불교신자인 개성상인은 코가 막히고 기가 막힐 일이었다.
사진 2. 로툰다의 산딸나무 꽃무늬 모자이크 (1)-(2) 서쪽 통로의 둥근 천장을 장식한 모자이크와 노란색 동그라미 부분의 확대 사진 (3)-(4) 중앙 돔 모자이크(순교자 영역)에서 배경 건물의 아키 트레이브를 장식한 모자이크와 노란색 동그라미 부분의 확대 사진
개성상인은 놀란 가슴을 쓰다듬고 혹시나 싶어 로툰다의 돔 모자이크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고려청자 문양을 계속 찾아보기로 하였다. 이것은 숨은 그림 찾기였다. 장사꾼의 예리한 촉은 최첨단 3차원 스캐너가 되어 중앙 돔 모자이크의 순교자 영역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또 찾았다! 순교자 영역에서 배경으로 사용한 천국 문의 아키트레이브 한 귀퉁이에 숨어있는 산딸나무 꽃무늬를 발견한 것이다. 여기 산딸나무 꽃무늬는 한 줄로 늘어서 있어서 얼핏 보면 엽전 무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전무늬로 불리기도 하는 엽전 무늬는 사실 산딸나무 꽃무늬의 착시 문양이다. 개성상인의 머리털은 주뼛 곤두섰다. 고려청자 문양을 새살낙니기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까 들어왔던 남쪽 통로로 발걸음을 옮겨서 둥근 천장을 올려다봤다. 아까 입장할 때 보았던 새, 과일, 별 문양 모자이크의 바깥 테두리 장식문양으로 사용한 산딸나무 꽃무늬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오늘 오전에 로만 아고라에서 팔았던 고려청자 합의 뚜껑에 그려진 산딸나무 꽃무늬와 비교해보면 두 문양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 닮은꼴이다. 청자 고유 문양으로 알고 있었던 산딸나무 꽃(칠보문)이 로툰다의 지상과 천국에서 무리 지어 활짝 핀 광경을 목격한 개성상인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여기서 붓다를 닮은 예수상을 봤을 때는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지만, 산딸나무 꽃무늬를 보고 나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가 싶어 개성상인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한동안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사진 3. 로툰다와 고려청자의 산딸나무 꽃무늬 두 문양은 완전히 닮은꼴이다. (1)남쪽 통로의 둥근 천장을 황실문양(새, 과일, 별)으로 꾸미고 산딸나무 꽃무늬로 테두리를 둘렀다. (2),(3)고려청자 합 뚜껑의 테두리를 산딸나무 꽃무늬로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