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일주일에 두 시간씩 켈리그라피(calligraphy)를 배우기 시작했다. 간단한 붓 펜과 수채화 물감을 사용하여 글을 쓰고, 간단한 그림을 장식으로 그려놓은 시간이다. 중학교 때 이후로 수채화 물감을 만져본 적이 없었기에 살짝 설레는 기분으로 그려보았다. 초보인지라 강사가 어떻게 잎을 그리는지 시범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난 내 마음속에 있는 수국 꽃과 민들레 씨를 한껏 멋지게 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본 강사가 한마디의 말을 하고 지나갔다.
"도전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시네요."
아, 어찌 알았을까? ㅎㅎ그림을 통해서 마음과 성격이 드러나는 모양이다. 강아지 산책 중에 화려한 장미꽃이나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수국의 향기를 맡아보곤 한다. 작은 이름 없는 들꽃에도 시선이 멈추곤 한다. 그런데, 수채화 물감을 사용한 그날 이후로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꽃의 색깔과 모양뿐만 아니라, 나뭇가지와 꽃잎의 모양과 색깔 그리고 꽃잎의 수까지도 관찰하게 된 것이다. 어제만 해도 그저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과 잎에 불과하였는데, 오늘은 하나하나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풀잎 하나까지도 너무 아름답고 귀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그들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는 모습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학창 시절, 생물시간에 배우기도 하였지만, 내 관심사와는 동떨어진 그저 암기해야 할 내용에 불과했었는데, 이제는 이리도 아름답게 느껴지다니...
캘리그래피 수채화의 한 시간 강의로 어떻게 이러한 큰 변화가 생긴 것일까?
하나의 짧은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이런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 가능한 일일까? 내 경험에 의하면 가능하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없던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에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생각 혹은 목표에 이르자 행동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 관찰을 해야 했고, 관찰을 하다 보니, 그들만의 규칙과 질서 속에서 피고 지는 다양한 색과 모양까지도 보게 된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니, 더 멋있게 그리고자 하는 마음과 목표까지 생겼다.
사실, 이러한 경험은 다른 영역에서도 생긴다. 기타나 드럼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자마자, 음악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해 보았다. 예전에는 들리지도 않았던 기타나 드럼의 리듬과 비트가 들리는 경험을 말한다. 새로운 차나 값비싼 가방이라도 하나 사게 되면, 예전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지 않았던 그러한 물건들이 거리에서 종종 보이곤한다. 반대로 관심이 있어서 관찰 혹은 구경을 하다가 구입이라는 목표 달성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사실, 내가 캘리그래피를 배우게 된 것도 관심이 있어 수업까지 듣게 된 경우이긴 하다. 그저 이쁜 글씨를 써서 책에 사인을 해주고자 하는 목표에 불과했었는데, 생각 의외로 큰 수확을 얻게 되었다. 바로 관찰의 힘이다!
한 모퉁이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가 내 강아지를 공격(attack)하는 봉변을 당하긴 했지만, 행복한 관찰 시간이었고, 앞으로 매일의 산책시간은 관찰로 인해 더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다음엔 그림을 그리면서 진짜 관찰일지를 써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