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정지용 시집, 이숭원 주해, 깊은 샘,
-최백 화가, 김환태 문학 비평가, 정지용(2002-) 시인을 만나다
남편과 겨울 여행으로 떠난 무주 덕유산 리조트 가기 전에, 문학관에 들르게 되었다. 여행 중에 가장 큰 즐거움은 역사의 인물을 만나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큰 수확을 얻었다. 조선 후기, 정선(진경산수화)의 제자라 할 수 있는 경주 최 씨이지만, 무주인으로 살은 최백 화가와 문학 비평가인 김환태, 그리고 그를 통해 정지용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김환태는 일제 암흑기에 순수문학의 이론을 정립하고 1930-40년대 크게 활약한 문학평론가이다. 그는 경향문학과 계급주의 비평에 의해 정치성과 사상성으로 경직된 문단에서 순수문학의 옹호자로서 순수비평의 씨앗을 띄운 기수라고 한다. 당시 일제 말기에 우리 문학이 친일 문학 일색으로 변모될 것을 예견하고, 그에 대한 경계의 뜻을 담고 있었고, 그의 문학과 예술의 위대성에 대한 확신은 정확한 미학의 기준을 말하고 있다. 그가 문학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그의 문화적 유산은 오늘날의 민족문학을 확립하는 기틀이 되었다.
안타깝게 독립을 앞둔 1944년에 35세로 사망했다. 구인회의 일원으로 카프라는 조직에 반대하였고, 도산안창호가 결혼 선물로 주신 은 숟가락도 전시되어 있었다. 봄봄을 쓴 김유정의 사랑과 함께 정지원과의 친분이야기도 해설가가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대전 근방 옥천에 있는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을 들르게 되었다. 이 비평가로 인해 정지용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작은 개천 바로 옆에 재건된 그의 초가집이 우리를 먼저 맞아 주었다. 이미 수 십 년 전에 붕괴가 되어 다시 지어진 집이지만, 소박하고 정감 있는 전형적인 우물이 있는 한국의 초가집이었다. 그 옆 카페에서 구입한 원본 시집과 더불어 문학관에서 시 낭송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만남의 기쁨이 배가 되었다. 할아버지, 향수, 홍시 등 쉽고, 정감 있는 자연의 모습과 식민지의 삶에서 가난하고 혼란스럽고 외롭고 괴로운 삶을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한용운과 김소월 시인과 동시대인으로 저항의 모습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으로 이겨내려는 모습이 엿보였다. 12세에 결혼을 한 후에 휘문고등 보통학교를 졸업 후,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간 후에 돌아와 교사로서 17여 년간을 살았다.
안타까운 사실은 1950년 6.25가 발발하자마자, 몇몇의 문학인들과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생사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100여 점의 시와 수필 몇 점이 남아있다. 100여 년 전의 시 인지라 한글의 변천 과정도 조금은 느낄 수 있어 좋다. 한자도 종종 등장하지만, 그것 또한 변화의 문턱에서 서 있기에 그럴 것이다. 아무튼 이 분의 시를 통해 다시 한번 나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시인과 대화를 나누었고 삶의 고뇌와 슬픔을 느끼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