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칠판만 사용하지 말라

Blended Teaching

by 영어 참견러

일 년에 한 번씩 세상 구경삼아 방문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재래시장이나 쇼핑몰이 아닌, 코엑스 교육 박람회 장이다. 그곳에 가면 AI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물건을 구경할 수 있다. 코딩을 위한 각종 세트와 3D 프린터로 만든 장난감들이 보인다. 특히, 전자칠판이 눈길을 끈다. 초등시절, 수업이 끝나자마자 하얀 쵸크(chalk)로 물들여진 블랙보드를 닦은 지우개를 창가에 서서 뽀얀 먼지를 마시며 눈을 감고 탁탁~털던 기억이 난다. 뭔가 교실에서 일어나는 성스러운 일로 여기곤 했다.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의례라고나 할까?


중2 때 학습 부장이 된 난 수업 전에 미리 배워야 할 내용을 칠판에 적곤 했다. 그때 칠판을 사용하면서 교사들이 느낄 자부심을 미리 느껴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변하면서 화이트보드에 다양한 색의 마커(marker)가 나오더니, 이제는 전자칠판에 멋진 전자 펜(electronic pen)이 나온 것이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 칠판의 색과 필기도구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전자칠판은 가격이 너무 고가여서 살 수도 없지만, 교사들이 가능한 칠판만을 사용하지 않길 바란다. 학생의 몸짓과 표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내 기억에 있는 거의 모든 교사들은 수업 시간의 반 정도를 칠판에 적고,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 내용을 설명하거나 읽어 주었다. 수업 종이 치기까지 난 내용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쉬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넘겼다가는 다른 친구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께도 실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나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 같아 그냥 아는 체하고 넘어갔다. 아니,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교사도 없었다. 그저 칠판에 무엇인가 쓰고, 설명하였고, 받아 적었다. 그리고 시험을 위해 무조건 외우고 4지선다 답안지에 답을 표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참 재미없는 시간들이었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에 의하면, 1차 2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산업 근로자와 관리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스템에 맞는 평균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공장식 학교교육이 이루어졌다. 표준화된 시스템에서는 개개 인성이 무시되는 테일러 주의적인 방식으로 평균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테일러는 1890년대부터 평균 방법이 오류를 최소화해준다는 가정과 같은 방식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비전으로 표준화를 주장하였고, 그러한 방식이 지금까지 거의 모든 산업과 교육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난 교사 지망생이 되어 칠판에 필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왼쪽부터 깔끔한 글씨체로 필기하는 법을 배웠다. 수업 중 칠판을 사용할 때가 있긴 하다. 어떤 단어의 세부적인 부분을 영어로 설명하거나 중고등 생들에게 문법을 설명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가끔 피카소가 되어 학생들에게 웃음을 주곤 하지만, 가능한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맞추면서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려고 애쓴다. 왜냐하면, 필기를 하는 동안에는 학생들의 얼굴 표정을 읽기 힘들고, 또 하나는 내 교실의 책상은 원탁(round table)이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들이 소통을 하는 수업, 그리고 학생과 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수업을 원했기에 일률적으로 교실 정면에 있는 칠판을 보는 위치가 아니라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요즘 학교의 수업을 참관해보면, 칠판만 사용하는 교사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칠판 대신 ppt자료를 이용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바람직한 모습이긴 하다. 수업 전에 미리 보충 자료를 준비했기에 시간도 절약될 것이다. 칠판의 주 기능은 학생들에게 수업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말보다는 글로써 정확하고 분명하게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강의식 수업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은 전면 바뀌어야 하는 시대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모든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이미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그래서 나온 학습이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을 통한 혼합형 수업(Blended Learning)이다. 하버드 의대, 경영대학원과 미네르바 스쿨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거꾸로 수업은 수업 전에 미리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는 강의나 설명보다는 토의나 토론 혹은 실험 등을 통해 수업의 질을 높이고, 학생들의 참여와 상호작용을 높이고자 나온 수업 방식이다.


MIT 국립 교육 연구소(National Trainging Laboratories)에서 발표한 '학습 피라미드'에 의하면 주입식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강의 내용의 5% 밖에 기억 못 하지만, 서로 소통하고 참여한 학생들은 50% 이상을 기억한다고 한다.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학습의 효율과 효과가 있는 수업의 형태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거꾸로 수업을 여러 학교에서 진행한 결과 장점과 단점이 나오게 되었다.


장점으로는,

첫째로 학생들이 미리 수업을 듣고 왔기에 수업 이해도가 높다.

둘째는 학생 수준에 따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을 수 있어서 중간 수준의 학습자에게 도움이 된다.

셋째는 교사의 강의에 대한 부담감이 줄었다.


단점으로는,

첫째로 인터넷이나 컴퓨터의 사용에 있어서 취약한 가정의 학생들은 학습에 어려움이 있었다.

둘째는 낮은 수준의 학습자는 미리 듣고 오지를 않아서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셋째는 교사의 부담감이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교사에 대한 점이다. 장점과 단점이 겹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말은 교사의 역량이 상당히 필요한 수업이라는 말이다. 교사가 수업 전에 학생들이 읽거나 보고 와야 하는 수업 자료, 특히 동영상을 제작해야 하는 부담감이 가장 크다. 또한 수업 중에 토의나 토론을 통해 학습 내용을 다른 지식과 연계하거나 질문을 통해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키워야 하지만 방법도 지식도 부족하다. 또한 이러한 역량을 단기간에 키울 수는 없기에, 이러한 '거꾸로 수업'은 교사들이 '고꾸라지게 만든 수업'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학부모들도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없고, 교사들은 수업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반발도 한다. 그러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억지로 온라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의 온라인 수업에도 장, 단점이 있겠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더 이상 교사의 설명을 통해 지식을 얻는 시대가 아님을 인식해야 하고, 교실 안에서의 주도권과 초점을 교사에서 학생에게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도구(tool)를 교실에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발도르프 초등학교는 애플, IBM 등 실리콘 밸리에서 근무하는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와 같은 디지털 도구를 만든 부모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본인 자녀의 수업 시간에 전자기기 사용을 금지시킨다. 그 이유로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데에는 책과 연필만 한 게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화면(screen)으로 보이는 글은 뇌에서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인식하기에 종이책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거나 아예 학교에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은 디지털 기기를 학교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대중의 건강 위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스크린 중독의 현상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사이버 중독, 수면 부족, 불링(bullying 괴롭히기) 등을 야기시킨다는 이유로 2020년에는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디어 매체 금지로 인해 학습 향상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반대의 주장도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 책과 필기도구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문자를 통한 문화와 문명의 발달을 이루어 온 인간의 역사를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다양한 매체를 통한 진정한 학습(authentic teaching)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주어져 있고, VR과 AR을 통한 생생한 교육을 할 수 있다면 가능한 모든 것을 사용해야 한다. 도구가 문제가 아니고, 도구를 사용하는 교사의 역량이 중요한 것이다. 나도 휴대폰을 이용하여 수업 중에 자료를 같이 찾아본다거나 퀴즈를 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 본 결과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터넷의 상황도 고려해야 하고, 쉽게 손이나 막대기를 들고 0 × 게임을 하면 될 것을 앱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시간 낭비가 되어 중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매체나 도구를 이용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도 학생과 교사 모두 배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교사는 이제 칠판만 사용하던 강단에서 내려와 학생들의 배고픔을 직접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AI가 절대 줄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러한 맛 말이다. 온라인, 오프라인의 방법 외에 온갖 다양한 가상 재료를 사용한 혼합형 티칭(Blended Teaching) 기술을 이용해서라도 누구나 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뜨거운 난로 위에 올려놓은 점심 도시락의 구수한 누룽지 냄새를 피워서라도 학생들을 교실에 머물게 해야 한다.


영어와의 중매 레시피 여섯 번째 비법: 학습 피라미드를 기억하자!

이전 13화육, 육하원칙으로 질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