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게 하는 일
2007년 갑자기 남편이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아 미국 NC 샬롯이라는 도시에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아들이 여름 캠프에서 사고가 났다. 왼쪽 대퇴부가 부러지는 바람에 큰 수술을 해야 했다. 그 후에도 물리치료를 오랜 시간 받아야 했고, 캠프 보험회사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여러 명의 변호사를 만나는 등 거주 1년여 동안 아들과 나는 많은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집사님에게서 오래된 클럽을 200불인가에 구매하였고, 그분은 우리 부부에게 두세 번의 무료 레슨을 해 주었다. 오른팔에 힘을 빼고 왼쪽에 벽을 세우라! 는 조언에 따라 인도어장에서 남편과 한 달간 연습을 한 후 라운드를 몇 번 다니게 되었다. 월마트에서 드라이버를 300불인가에 구입한 후 20분 정도를 운전하여 50불 정도의 비용으로 서 너 시간을 함께 보낼수 있었다. 공을 치는 시간은 직장내에서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던 남편에게도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라운드 중 클럽 하우스에서 핫도그와 커피 한 잔으로 숨을 고르며 골프 이야기를 나누던 왕왕초보자의 모습이 생생하다.
한국에 오자마자, 나도 아들과 비슷한 부위인 고관절에 인공 치환수술을 받았다. 왼쪽 고관절 탈골로 인해 만성 통증이 심해져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골프 환경은 너무 열악해 보였기 때문에 골프는 그저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은 주말 새벽마다 골프를 치는 친구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난 절대 골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매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봉사하던 삶을 살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선교를 돕기 위해 골프를 접었다는 한 장로님의 말씀도 있었다. 게다가 골프는 걸레질을 하는 것보다도 운동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방송에서 공공연히 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골프를 치면서 집 한 채는 날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골프는 내 인생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은 화석화되었고, 그 생각이 바뀔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그러던 내가 17년이 지나 골프 레슨을 받으러 동네 골프 아카데미를 찾아간 것이다. 성담 후 레슨을 받기 시작한 첫날, 프로가 내게 물었다.
프로: 골프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한 10년이요...
프로:??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게 골프예요
나:... (속으로 진짜?)
그렇게 3개월 레슨 후 그만두었다. 손가락이 한 두 개 변형이 왔고, 고관절도 아팠기에 변명거리는 많았다. 하지만 프로는 그만두는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그 사이 스크린에서 홀인원을 하였다. 그러자 50대 후반의 사장님이 내게 오더니, 이런 말을 던진다.
사장프로: 골프 프로인생 30년 동안 홀인원을 한 번도 못했어요. 심지어 스크린에서도요.
나:... (내가 우연치곤 대단한 일을 한 것이구나!)
그 후, 1년여 동안 휴식기를 보내며 가끔 연습을 하다가 본격적인 라운드를 시작한 지
어느 날, 73세인 동네 언니와 라운드를 가게 되었다. 그린에 공을 올리고, 카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언니가 한 마디 던진다.
언니: 아직도 퍼팅 할 때 가슴이 떨려!
나: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가 이 나이에 골프 말고 무슨 가슴 떨릴 일이 있겠어요?
가끔이긴 하지만, 필드에 도착해 푸른 잔디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무엇보다 전 날에 간식을 준비하면서 내일의 날씨를 확인하면서 어린 시절 '소풍'이 떠오른다. 내 나이에... 이런 소풍을 갈 수 있다니 행복감이 밀려온다. 오늘은 공이 잘 맞을까? 하는 작은 긴장감과 함께... 아주 가끔은 잘 맞은 공에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예상외로 빗나간 공을 보면 어이없기도 하다. "뭐가 문제지 또 숙제가 생겼구나. 다음엔 연습을 좀 더 해야겠구나! " 이런 반성도 하면서 마음이 젊어지는 것을 느낀다. 라운드 후 식사는 늘 꿀 맛이다. 골프광인 60대 초반인 우정언니는 골프 치는 날만 잘 먹는다고 한다. 평상시엔 입맛이 없다고... 그래서 골프는 시간 많고 건강하고 좀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니어들에게는 좋은 취미이자 친구가 되어준다. 무엇보다 가슴 설레게 해 준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골프광을 넘어 골프 참견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