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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an 14. 2021

[인터뷰] 나의 '공예'가 '공해'가 되지 않도록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작가 장우희(H22) 대표

*해당 인터뷰는 서울시 청년인생설계학교 기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서울여성공예센터에서 진행하는 <공예창업 맞춤교육 고고고> 수업 첫날, 플라스틱 백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공예를 하는 브랜드 ‘H22(희)’의 사례 발표가 있었다. 업사이클링 작품으로 공예가들의 로망인 더아리움에 입주한 작가라니. 친환경과 공예 둘 다 잡고 싶은 나에게 딱 맞는 인터뷰 대상 아닌가! 나는 발표가 끝나자마자 희 대표님에게 다가가 내 기록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그 자리에서 명함을 받았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대표님은 흔쾌히 응해주셨고 일주일 뒤 내가 수업을 들었던 더아리움의 희 브랜드 작업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나는 최근까지 출판사 취업을 준비하던 인문학 전공자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공예 창업자라는, 급진적이고 새로운 직업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직자를 만나 업계 현실을 이해하고 스스로 정체성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만난 나를 스스럼없이 대하며 부족한 질문에도 성심껏 답해주신 대표님 덕분에 우리는 편한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고, 당초 계획했던 30분을 훌쩍 넘긴 1시간 동안 환경 문제와 업사이클링 공예 창업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창업가의 삶
 

-지난 주 사례 발표 때 이미 말씀하시 했지만, 자기소개를 한 번 더 부탁드린다.


 나는 서울여대에서 섬유공예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섬유디자인 전공했다. 작년까지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작가로 활동하다가 올해 더아리움에 공예 창업가로 입주했다.
 
 


-희<H22> 브랜드의 숫자 ‘22’가 본인이 처음 창업을 결심한 나이 ‘22세’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2살이면 지금 한창 진로 방황 중인 나(김수경, 25세)보다도 어린 나이인데, 그때부터 창업을 생각한 것이 나로선 놀랍다.
 

 맞다. 한 번도 휴학을 안했으니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다. 그때 학교에서 브랜딩 수업도 듣고, 인턴도 많이 했기 때문에 삶의 터닝 포인트로 기억되는 순간이 많았다. 인턴 당시 업무는 흔한 ‘9 to 6’ 일과를 따르는, 그다지 어려움 없는 사무직이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나랑 안 맞았다. 나는 좀 더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일을 하고 싶었는데 회사는 전혀 아니지 않나. 회사 생활을 했던 시간은 말 그대로 쳇바퀴 굴러가는 듯 했고, 퇴근하고 귀가하면 이미 몸이 지쳐서 저녁만 간신히 먹은 뒤 하고 싶은 일도 못한 채 바로 누워 잤다. 그때 “와- 재미없다. 이거 말고 진짜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이런 인턴 생활을 약 1년 간 지속하다가 졸업할 때가 되어 고민 끝에 결국 대학원을 갔다. 사실 그때까지 뭘 해야 할지 확신은 없어 취업 전 도피처로 선택한 거였다. 대학원 조교를 하면 전액 장학금이 나와서 금전적인 부담도 덜했으니까.
 


-희 브랜드를 만들기까지 영향을 준 결정적인 사건이나 인물이 있나.

 공예과 4학년 졸업 전시를 위해 어떤 작업을 할까 고민하던 중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전시회가 DDP에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을 갔다. 거기서 쓰레기로 옷을 만든 작품들을 보고 흥미를 느껴 이후 집에 와서 안입는 맨투맨을 잘라서 리폼해보기도 하고, 졸업 전시 작업으로 배수구망에 쓰레기를 엮어 콘브라(Cone Bra)를 만들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단순히 직물짜고 옷 만드는 작업보다 색다른 소재로 전에 없던 작업물을 만드는 일이 훨씬 나에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대학원에 넘어와서도 ‘색다른 소재’를 계속 찾다가 비닐을 발견하게 된 거다. 비닐을 소재로한 작업물들이 쌓여가다보니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전시회가 나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창업자들은 확실히 그들만의 강한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대표님에게서도 느껴진다.
 

 성격 자체가 쉬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쉴 거라고 말해놓고 알바라도 하고 있다. 학부생때도 휴학을 한 번도 안하고 바로 대학원으로 진입했다. 창업을 할 때에도 진취적인 성향이 필요한 건 맞다. 그래서 현재의 창업 활동도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이건 반대로 창업 전 했던 작가 활동이 나랑 안 맞는다고 느꼈던 이유와도 연결 된다. 작가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혼자 고민하고 작업하는 것을 반복해야 하는데, 나는 보다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다.
작가가 본인이 하고 싶은, 본인만을 위한 작업을 한다면 창업자는 자기 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상업적인 요소를 더 고려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나는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좋았고 DDP 입주 작가로 사업을 진행했을 당시 직접 홍보, 마케팅, 상품 제작을 하며 이전보다 훨씬 큰 재미를 느꼈다. 작가에서 창업자로 잘 넘어온 것 같다.
 
 
-그럼 혹시 취업할 생각은 전혀 없는 건가. 나는 뭘 시작하고 싶어도 돈 때문에 불안해서 자주 머뭇거리게 된다.
 

 취업은 항상 생각한다. (웃음)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면 당연히 취업에 대한 고민이 올라온다. ‘이럴 때 회사를 다녔더라면...’ 하고. 그래서 스스로 마지노선을 정했다. 29살. 그전까지는 하고 싶은 거 다해보려고 한다. 우린 아직 어리고 그 나이가 지났다고 해서 돈 버는 길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삶의 방식이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정말 내 나이에 졸업 후 바로 취직 못하면 애물단지 취급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까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합격하는 사례도 있지 않나.
 사실 올해는 특히 더 불안한 상황이긴 하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든 대면 행사가 취소되었기 때문에 나도 신청한 사업이 하나만 떨어져도 마음이 안좋았다. 이렇게 불안이 올라올 땐 늦은 나이에 빛을 본 유명인들의 사례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인생의 겨우 4분의 1을 산 것 뿐이다.
 
 
-올해 초 공예창업가들에게 꿈의 공간인 더아리움에 입주했다. 올해 선발된 다른 브랜드들도 둘러보고 왔는데 다들 쟁쟁했다. 어느 정도 사업성이 확보된 사람이 지원해야되는 줄 알았다.
 

 더아리움은 공예창업자에겐 정말 좋은 곳이다. 이렇게 시설이 좋은 곳이 전국에 몇곳 없다. 나는 이곳에서 매년 열리는 창업 대전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입주하는 기업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충분히 예비창업자도 지원할 수 있다. 내 생각엔 참신한 아이템과 작업하는 주제가 중요한 것 같다. 공예창업가는 엄청 많은데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같은 아이템도 다르게 만드는 킥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만약 공예창업을 한다면 원데이 혹은 정규 클래스 위주의 사업을 하고 싶은데 혹시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는가?
 

 클래스만으로 창업을 하는 사람은 못봤다. 더아리움에서도 클래스 사업을 지원하지는 않는다. 센터에서 클래스를 열 수 있긴 하지만 내가 경험한 클래스에 대한 센터 직원들의 반응은 사실 부정적인 편이다. 클래스는 단발성이 강하고 특히 공예 클래스는 유행을 타는 사업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다.
 나도 예전에 클래스101에서 제의를 받아 온라인 수업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이미 한 사이트에도 너무 많은 클래스가 있어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사랑 받기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소비자 입장에서 취미 클래스를 들으려 할 때에도 일단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사람의 제품이 있어 그 제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클래스에 관심을 갖고 이를 통해 유입이 되지 않나. 사업을 하려면 일단 본인이 주력하는 상품이 확실하게 있어야 한다.
 
  


<H22>


-희 브랜드 제품의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비닐을 여러 겹 레이어링해 열판으로 눌러 녹여 빳빳한 직조물을 만든다. 비닐을 녹일때 쓰는 프레스기는 티셔츠에 프린팅을 인쇄할 때 쓰는 기성제품이다. 이 제품을 구매하기 전까지는 다리미로 작업했다. 비닐의 종류에 따라 수축되는 종류가 다르니 유의해야한다. 어떤 비닐은 얇아서 기계 안에 넣으면 한순간에 녹아버리기도 하는데 이런 종류는 다리미로 수축되는 정도를 봐가면서 작업한다. 어떤 비닐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는 직접 작업하면서 깨쳤다.
 

티셔츠에 프린팅할 때 쓰는 프레스기. 작은 직물은 다리미를 이용해 녹인다고 한다.


-작업에 필요한 비닐은 어디서 조달하나?
 

 주변사람들이 모아서 가져다주기도 하고 나도 여기저기서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소비하는 비닐은 색이 다양하지 않아서 가끔 원하는 색감과 무늬의 비닐을 찾아 구매하기도 한다. 업사이클링의 의미를 계속 담아내기 위해서 최대한 구매횟수를 줄이고 있다. 앞서 말했듯 나는 환경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비닐을 재활용 하고 있기 보다는, 그저 소재 자체에 매력을 느껴 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비닐을 사용할수록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업사이클링을 언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100% 재활용 비닐을 사용하면서 제품에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버려지는 재료로 상품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따른 딜레마도 있을 것 같은데.
 

 종종 내 작업이 ‘쓰레기로 쓰레기를 만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비닐을 조금씩 모아서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비닐로 가방을 만들면 이를 구매한 누군가가 조금 쓰다 버릴 것이고, 그럼 그건 결국 또 쓰레기가 될 텐데 이게 과연 업사이클링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거다. 우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구매해 사용하다가 다시 돌려 보내주면 세척과 분해의 과정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모양의 제품으로 만들어 보내주는 작업을 구상 중이다. 제품의 사용 주기를 늘이면 쓰레기 발생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업사이클링’이라는 단어가 참 무겁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작업할 때 그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완벽한 제로웨이스트와 업사이클링을 추구하려고 하면 작업에 끝없는 제약이 따른다. 최근 온라인 판매를 계획했을 당시에도 일회용 포장재 사용 문제와 맞닥뜨려 장기간 고려해야 했다. 다행히 최근에 친환경 포장재를 공동구매 할 다른 사업자를 만나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긴 했지만.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내 작업을 통해 “비닐이 쓰레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구나.”, “비닐이 더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분리수거를 잘해야겠다.” 정도의 의식만 전달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희 브랜드의 앞으로의 사업 계획을 말해 달라.
 

 비닐을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 창업을 했다. 지금은 여름을 맞이해 부채를 기획했다면, 다음으로는 가구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조명을 기획중이다. 장점이 많은 소재이니 만들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비닐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제품의 범위를 넓히고 싶다. 대중으로부터 “비닐로 이런 것까지 만들 수 있어?” 하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말이다. 그만큼의 가능성을 가진 소재임을 확신한다.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해야하는 사업자가 환경 문제와 만나면 필연적으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을까? 완벽한 업사이클링이 과연 존재할까? 내가 만드는 물건이 결국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킨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장우희 대표님은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 멋지게 본인만의 사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공예도 하고 싶고, 제로웨이스트도 실천해야겠고, 환경도 지키고 싶었기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 나에게 대표님은 ‘현실의 문제를 다 짊어지고 무언가를 시작할 수는 없으니, 내가 다룰 수 있는 만큼의 이슈만 조금씩 가져가 보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주셨다. 생각이 많은 나에게 매우 유용한 조언이었다. 세상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얼만큼인지 가늠하고 말이 아닌 실천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H22 브랜드 인스타그램 : @official_H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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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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