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경단녀가 아닌 결단녀다

by 쉼표구름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기로 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저를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의 줄임말)’라 불렀습니다. 아이들조차 “엄마는 맨날 집에서 노니까 좋겠다.”라고 말하곤 했지요. 해명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렌즈로 세상을 보니까요. 제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그 안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는 쉽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이해하면서도, 왠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은 쉽게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경력 단절이라 부른다고 해서, 나까지 그 말에 갇혀 있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나는 왜 타인의 기준에 주눅 든 채로 나를 규정하려 했을까?

어떤 틀에 갇혀 버리면, 어느 순간부터 갇혔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맙니다. 「프레임」이라는 책의 저자는 이런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라고요. 맞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제멋대로 정해 놓은 단어와 그 뜻에 매몰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스스로를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부르기로 했어요. 저는 ‘경단녀’가 아니라, ‘결단녀’입니다. 아이를 키우고자 회사를 떠난 것도, 지금의 삶을 선택한 것도 모두 ‘결단’의 결과였으니까요. 회사에서 부서가 바뀌면 ‘보직 변경’이라 하고, 다른 회사로 옮기면 ‘이직’이라고 합니다. 엄마의 삶도 다르지 않아요. 저는 회사원에서 엄마로 이직했고, 업무 내용 역시 아이 돌봄과 살림으로 보직 변경된 것입니다. 그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린 사람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디서도 배우지 못할 귀중한 기술도 매일 몸으로 익히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능력이 인생에 큰 고비와 역경을 극복하게 할 날이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매일의 삶 속에서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택과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왔는지 스스로 인정해 줄 때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엄마의 일은 어떤 직업보다 힘들고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그에 걸맞은 보상이나 인정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직장인은 열심히 회사에 다니면 매달 월급을 받습니다. 경력이 쌓이면 진급도 하고 성과에 따라 인정도 받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자리는 다릅니다. 매일의 노동이 수치화되지 않고, 그 어떤 ‘급여’로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혹시 ‘경제’라는 말의 어원을 알고 계시는가요? Economy(경제)는 그리스말로 oikos(home 집)와 nomos(management 관리, 경영)가 합쳐진 것으로 즉 가정 경영이라는 뜻에서 출발했습니다. 경제를 제대로 세우는 첫걸음은, 결국 집을 돌보고 관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기에 엄마가 가정을 경영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 가정 경영 기반을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도구가 바로 가계부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지출을 적는 도구로만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우리가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정 경제를 세우는 강력한 힘이 되어줍니다.


저 역시 세상의 시선에 맞춰 ‘경단녀’로 살던 시절에는 끊임없이 불안했고, 과거의 경력만 바라보며 후회했고, ‘돈을 벌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돈 한 푼 없이 가난하게 사는 상상을 하느라 하루를 망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결단녀’라고 부르기 시작하자 삶이 달라졌습니다. 정체성을 바꾸니 생각도 행동도 따라 바뀌었습니다. 내 인생을 무엇이라고 부를지는 오롯이 내 선택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결단녀라고 부르며 내 인생에 주도권을 갖기를 선택했습니다.




전문은 브런치 책방에 등록되어 있는 <엄마의 틈새 시간>에서 읽어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publish/book/1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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