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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Jan 04. 2019

평범한 어떤 날

아침에 내가 혼자 눈 뜨면 좋겠다. 누군가로 인해 잠에서 깨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잠귀가 너무나도 밝은 나는 어느 순간 달라지는 아이들의 숨소리와 작은 뒤척임에도 눈이 떠지는 편이다. 별일 없이 자는 아이들을 한 번씩 둘러 확인하고 올라간 옷을 내려주며 아이들 숨소리를 가만히 들어본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비로소 안심하고 또 다시 선잠에 든다.


우리 집 창문에 해가 커튼처럼 드리우면 어김없이 우리 집 둘째가 나를 깨운다. 내 배를 만지작거리는 보드라운 고사리 손이 느껴지지만 그 조차도 귀찮은 아침엔 모른 척 눈을 감고 있다. 이미 잠은 달아났지만 잠을 다시 부르고 또 부르고 싶다. 아이까지 졸음 주문에 걸린다면 더 좋겠다 하고 생각하면서


오늘은 일요일, 어젯밤 남편과 늦도록 텔레비전을 보다 나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남편은 조금 더 보다가 새벽에나 잠이 든 것 같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은 소파에 누워 집안을 시원하게 해두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이다. 그것마저 못하게 한다면 괜한 잔소리를 더하는 것 같아 그날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 사람 마음이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전날 너그러운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아침 일찍 깨워대는 아이들 성화에 잠귀 밝은 나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 얄미워 마음에 잔뜩 먹구름이 껴버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사부작사부작 아침 준비를 해서 두 아이를 먹이고, 그릇 들을 정리해 넣어두고, 빨래를 돌리고, 잠시 소파에 앉았다. 아까부터 큰 아이는 입이 비쭉해서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결국 징징 스위치를 켰다. 평소에도 아이들의 늘어지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모른 척 하고 앉아 있으니 아빠를 깨우겠다고 난리다. 그냥 좀 더 자게 두자고 나름대로 부드럽게 타일렀으나 그대로 포기할 첫째가 아니다. 그 놈의 징징 스위치는 아빠가 일어나야만 꺼지려나 보다. 일단 커피 한 잔 마셔야겠다 생각하고 물을 끓이고 있는데 두 아이가 서로 엉켜 장난치더니 결국 둘째의 울음이 터진다.

“동생한테 그러면 안 되지~!!”

목소리 높여 한마디 하며 아이 쪽으로 돌아섰는데 말릴 틈도 없이 아이의 주먹이 내 배에 닿는다. 그렇다고 엄청 아팠던 건 아니었지만 눈물이 흘렀고, 밀려오는 무언가의 감정으로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아이는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소란 속에서 남편은 쿨쿨 잘도 잔다.


잠시 후, 오래 참았다 싶었는지 엉덩이를 떼고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제 아빠를 깨우는 아이들, 그리고 그 틈에 어슬렁대며 남편이 나온다. 남편이 화장실 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내 천 가방에서 기저귀와 아이 물건들을 꺼내고, 책 한 권을 새로 넣었다.


“나 나갈 거야”

“어디 가는데?”

“……”


어딜 가냐고 묻는 남편의 목소리가 귓전에 때 이른 모기처럼 앵앵거렸지만 그냥 나섰다. 주말 아침에 나 혼자 길을 나서는 건 지난번 위경련으로 병원 갔던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갈 곳은 물론 없고, 가고 싶은데도 없고, 그런데 오늘은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가까운 동네 카페를 들를까도 싶었지만 너무 가까운 곳은 왠지 싫었다. 우리 아파트 뒷산을 가로질러 천천히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꿔 놓고 오는 버스 아무거나 잡아탔더니 우리 동네 곳곳을 도는 마을 버스였다. 영화나 볼까 하고 검색하다가 들려오는 소리에 귀가 열렸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들의 중간 중간 섞인 거친 소리와 낭랑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깐 나의 학창시절도 굽어보았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은 좋았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볼까 싶어 창문을 스크린 삼아 장면들을 떠올렸지만 마땅한 화면이 상영되지는 않더라. 괜히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고, 아이들 점심은 어떻게 하려나 생각하다 머리를 가로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여름이 가까워 오는 날씨라 창밖의 햇살도 따사로웠다. 조금은 낯선 이곳저곳을 다니며 문을 열었다 닫았다 분주한 마을버스는 나에게 약간의 긴장도 주었지만 내려야 할 곳이 정해지지 않은 나는 이내 마음이 놓였다. 거기가 어디든 반대쪽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될 것이다. 오랜만에 챙길 사람 하나 없이 나 혼자 창 밖 화면을 실컷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마치 내가 혼자 나와 있는걸 알기라도 하는 듯이 자기랑 어디를 좀 같이 가자고 했다. 언니를 따라 외딴 곳에 위치한 의류 창고로 갔다. 전 날 구입했던 옷이 작아 바꾸러 가는 길에 내 생각이 문뜩 났단다. 언니와 오고 가는 길에 펑펑 울며 소소하고도 소소한 나의 불만꾸러미들을 잔뜩 풀어 놓았다. 잠자코 들어주는 한 사람이 있어 편안히 마음을 풀 수 있었다.


한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지나간 자리에 불쑥 끼어든 말들이

“이건 우리 큰애가 좋아하는 건데…… 살까?”

“작은애는 이제 막 뛰어 다닌다니까요 얼굴은 못난이인데 어찌나 애교가 많고 지 귀여움을 아는지, 근데 애들 밥은 먹였을까? 그래도 남편이 그런 건 잘 할 거에요”

“그래 성훈이 아빠는 잘한다 아이가?”

언니의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먹구름이 비가 되어 내려 잠잠해진다.

언니 몰래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아이들과 점심 밥 챙겨 먹고 함께 놀고 있다며 사진 한 장이 도착해있다. 돌아오는 길에 언니와 동네 중국집에 들러 맵고 진한 국물의 짬뽕을 한 그릇 시켜 깨끗하게 먹었다. 집 앞까지 태워다 준 언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은 어색해진 집안 공기에 처음엔 설명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곧 마음을 접고, 아이들 곁에 나도 섞여 앉았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엄마 보고 싶었어.

첫째 아이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조잘댄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남편은 어느새 내 곁에 가만히 앉아 아이들과 있었던 시간을 이야기한다. 막내 꼬맹이는 내 두 다리 사이를 파고들며 반가움을 전한다. 번쩍 들어 올려 꼬맹이를 안고, 나의 얼굴로는 큰애의 볼을 쓰다듬는다. 남편에게는 아직 화가 덜 풀려 조금은 툴툴댄다. 남편은 눈치 못 채고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도 내일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같은 듯 다르게 흘러간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의 기분 좋음이 의미가 없는 예측불허의 하루가 길게 늘어선다. 나는 그 안에서 순간 기쁘기도 했다가 당황하기도 하고 짐짓 서글퍼지기도 한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해도 괜찮은 그 시간 속에 나와 나의 가족이 살아간다. 일탈 아닌 일탈을 하고 와서 보니 집이 주는 편안함이 새삼스럽다.

한껏 길어진 해가 뉘엿뉘엿 물들어 간다. 어서 일어나서 나의 남편, 우리 아이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저녁을 만들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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