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를 하면서…
사전투표를 하면서…
여섯째 아이를 데리고 그 자리에 가면서, 내 마음속에 한 가지 결정이 내려졌다.
‘왜 이번 대선이 이렇게 일찍 치러지게 되었을까.’
만약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대선은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뒤인 2027년 5월 9일 즈음 치러졌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시간’이다. 가장 공평한 것도 시간이다.
후보자들의 토론 현장도 지켜보았다.
만약 토론의 결로만 따진다면 그것과 상관없는 바른말하는 자가 더 우세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12월 3일부터 시간은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아픈 소리가 터져 나왔고, 광장마다 절규가 아우성쳤다. 그 무렵 나는 백일도 안 된 딸과 함께 글짓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원래도 불안의 수치가 높은 나에게, 하나의 사건은 자식을 키우는 일에 더 열심을 내게 만든다. 여섯 아이를 데리고 광장에 나갈 수 없던 나는, 집에서 살림만 하며 지냈다. 면역력이 떨어져 온몸이 가려웠고, 긁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그저 뉴스만 보고, 시민들의 저항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대선이 조기 실시되었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생각의 마침표를 찍고 투표하러 간 것의 결정적 이유는
‘왜 대선이 조기에 시작되었는가.’
그것이 내게 선택을 가르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사람이 있다. 모든 후보를 다 믿고 뽑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는 내란으로 인한 선거였다. 내란의 종식을 바란 현장이다. 만약 정상적인 상황에서, 임기를 마친 뒤 대선이 치러졌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집에서 출산하고 자식만 키우는 사람이다. 직장도 다니지 않으니 6월 3일 화요일, 본투표 날 투표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전투표를 한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대로 흐르도록 두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멈춰 서서, 지금 시대정신이 무엇을 따르고 있는지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5년이라는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
내 자식 여섯이 그 시간 동안 잘 살아갈 수 있게, 길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