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유감> 한소범 산문집
“나 사실 퇴근하고 소설쓰기 수업들었던 적 있었거든. 근데 그때 결심했어. 더이상 소설은 쓰지 않아야겠다고.“ 언젠가 선배의 은평구 오피스텔에 모여 짧은 인생을 곱씹었을때, 선배는 풀죽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소설을 못 쓰는 것 같아“, ”괜히 소설쓰기를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 “왜 그렇게 소설을 쓰고 싶었을까?”. 거의 울기 직전의 선배였지만 무지몽매한 후배는 천진했다. “엥 그냥 나중에 연차 좀 차고 여유 생기면 다시 쓰면 돼죠!”. 용기와 위로를 전한답시고 던진 말에 선배는 체념하듯 말했다. “그런 게 아냐”. ‘그런게 아닌 게 어디있담!’이라는 말이 목끝까지 찼지만 선배의 대답 끝 온점은 무거웠고, 잔을 부딪히고 나서는 대화 주제가 바꼈다.
“나 옛날에 졸업작품이 단편영화제에 올라간 적 있는데, 그것때문에 내 이름 포털에 검색하면 ‘감독’이라고 나오기도 해.“ 또 언젠가 저녁을 마시며 서로를 알아갈 때, 선배는 부끄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냥 졸업작품이었는데 운이 좋았어.“ 글쓰기만 전문인 줄 알았던 선배가 알고보니 ‘감독님’이었다는 사실에 초짜PD였던 후배는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들었다. ”뭐야 나보다 더 전문가였네!”라며 어깨를 찰싹 때리고서는 앞으로는 감독님이라 부르겠다며 한참을 웃었다. 겸연쩍어하는 선배의 웃음은 어딘가 아련했다.
우리는 자주 소설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나는 청자에 가까웠다. 소설보다 사회과학책이 필요했고, 전쟁영화 혹은 자본이 가득 투입된 한국영화 광으로서 선배가 하는 이야기들에는 비할바가 못됐다. 국문학과 영화과을 복수전공한 선배는 대체로 영화과 시절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때 읽고 썼던 소설과 시나리오, 보고 만들었던 영화,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 그야말로 ‘청춘’ 그자체인 대학생활이었던 것 같아 내심 부러웠다.
그러니 선배가 일간지 최연소 문학기자가 됐을땐, 어쩐지 당연해서 놀랍지 않았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선배는 종종 소설 쓰기를 그만둔 것, 영화의 세계를 떠나온 것에 대한 회한에 잠기곤 했다. 어쩔때는 배부른 소리 같았고, 어쩔때는 안쓰럽기도 했다. 대체 한소범에게 소설과 영화란 무엇인가.깊은 미련을 겉핥기로 알면서 ‘한소범은 기자가 천직!’이라며 응원했다.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다. 선배가 왜 그때 무거운 온점을 붙였는지, 왜 겸연쩍어 했는지. 선배는 ’사랑했고 떠나온 세계‘라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세계와 깊이 사랑에 빠졌던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문학기자’라는 직책을 섣불리 반기지 못한 것도, ‘자격’에 대해 숱하게 고민한 것도, 좋아하고 사랑했던 그 시간들을 훼손하게 되진 않을까하는 걱정에서 였다는 걸 <청춘유감>을 덮고 나서야 알았다.
”울면서 걷기, 넘어지면서 자라기“. <청춘유감>이 단순한 ‘청춘 팔이’가 아니라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청춘‘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삶의 ’유감‘한 순간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기자이자 선배이자 친구인 한소범의 청춘과 그 ‘유감’들에는 배울것이 많고 위로받을 것이 많다. 소설, 영화, 일, 사랑, 가족 등의 매개체로 ’존재 가치’를 끝없이 고민하는 순간들에 마음을 보탠다. 이제는 울면서 운전하고, 넘어지면 때론 못 일어나는 삶이지만, 나의 세계를 넓히고 있는 중이라는 걸 덕분에 ’유감‘한다.
픽션의 세계를 딛고 논픽션의 세계에 선 선배의 글들은 ‘때로는 소설같고, 때로는 기사같아’ 좋다. 팍팍한 세상살이와 거친 정쟁을 다루는 기사들 속에서, 뾰족한 관점과 동시에 다정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기레기들이 문제지‘라는 가볍고 날선 말들에 발끈하는 건, 여전히 ‘좋은 기자‘와 ’좋은 기사‘란 무엇인지 골몰하는 선배같은 기자 친구들이 있어서다.
종종 선배를 ‘학식있는 문학기자‘이자 ’한국문학의 등대‘라고 놀리곤 했다. 빛이 필요한 작품에 빛을 비추고, 사려깊은 문장을 덧붙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스트 A선배가 되고 싶다”던 선배는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포스트 한소범이 되고 싶다“고 말할 후배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문학을 사랑한다면 더더욱. 그러니 선배가 꼭 ’마흔 아홉살까지’ 회사를 다녔으면 좋겠다. 선배의 바이라인을 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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