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쏠리 Aug 28. 2024

광복절에 독도를 다녀왔습니다

국뽕 치사량 맞고 온 사람의 독도 방문기


서울에서 차로 포항까지 다섯 시간,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크루즈로 일곱 시간,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한 시간 반. 대략 열세 시간쯤 됐을 때야 저 멀리 빼꼼히 솟아있는 독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열네 시간쯤 됐을 때야 독도에 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사방에 흩날리는 태극기 물결은 독도에 가득 핀 꽃 같았다. 심연에서 솟구치는 국뽕의 울림에 약간 눈물이 핑 돌았는데, 그걸 깨달으니 왠지 모를 쑥스러움에 웃음도 났다. 독도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뭐라고. 당연한 모습이거늘.


이번 ‘울릉도-독도’ 여행은 공교롭게 광복절 연휴에 하게 됐다. 이때만 여유가 되는 아빠를 기준으로 휴가지 선정을 했는데 여름휴가를 섬으로 가고 싶다는 아빠, 그렇다면 울릉도가 어떤가라는 제안을 한 나, 울릉도라면 가겠다는 엄마까지 삼박자가 고루 맞았다. 게다가 휴가 첫날이 광복절이니 독도에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배편 예약을 완료한 시점부터 가슴속엔 태극기, 머릿속엔 독도를 심고 그 시절 노노재팬 운동을 재현했다. 가끔 ’ 나는 전생에 독립운동가였을 것이다‘라고 자신하곤 했는데, 이렇게 설레는 걸 보니 자신에 확신이 더해졌다.


‘삼 대가 덕을 쌓아야~’ 시리즈 중 하나는 독도 입도다.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선착장 접안이 어려운 탓에 애써 배를 타고 와도 한 바퀴 돌고만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번 울릉도-독도 여행 목표 1순위는 당연 독도 입도였던 터라 아빠는 매일같이 기상과 파고를 확인했다. 그렇게 울릉도에 입도하며 맞이한 동해는 찬란했고, 바람은 선선했으며, 바다는 잔잔했다. 독도에 입도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바뀌는 독도의 하늘은 언제나 변수인 탓에 독도행 쾌속선 안에서도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온갖 태극기 악세사리로 가득 찬 만선의 배는 유난히 조용했다.


기나긴 이동에 지쳐 쓰러져 갈 때가 돼서야 광활한 동해 바다 한가운데 독도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처음엔 귀엽던 저 멀리 작은 섬이 점점 웅장해질 때 벅찬 셧터 소리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접안 시도 방송에 잠시 주춤했다가 독도경비대의 경례를 받으며 접안에 성공했을 때, 배 안은 환호성이 일었다. ‘삼대가 덕을 쌓았다’고 믿게 해 준 날씨와 선장님에 대한 감사와 독도경비대에 대한 반가움이지 않았을까. 조금이라도 독도에 오래 머무르려 분주한 사람들 틈 사이로 정신없이 독도에 두 발을 올렸다.


광복절을 맞은 독도는 태극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간 유튜브에서 본 평범한 모습과는 달라 더욱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주권을 되찾은 날, 더욱 우리 영토임을 확실히 하는 풍경이었다. 다케시마, 마쓰시마 등 잘못된 이름으로 전전하다 독도로 온전히 불리기까지의 지난한 여정에 다시 한번 정확한 마침표를 찍는 것 같았다. 이 작은 섬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이라 생각해 큰 감흥 없이 지켜보기만 한 독도 수호 운동이 그제야 와닿았다. 태극기 꽃이 필 수 있게 씨앗 심고 오랜 기간 물 주고 키운 사람들. 여기엔 분명 나 같은 독도 방문객도 포함이겠지.


20분가량, 그것도 아주 작은 선착장 주변에서만 독도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유난히 맑은 동해바다, 저 멀리 독립문 바위와 촛대바위, 동도와 서도를 어떻게든 담아내기 위해 폭풍 셔터를 눌러댔다. 바글대는 사람들 속에서 태극기를 들고 인증샷을 남기는 것 만이 ‘대한민국 동쪽 땅끝’에 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념이었다. 다시 만나기 힘든 광복절 독도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육성으로 못 외치고 온 게 제일 아쉽다. 그 많던 관종끼는 어디로 갔나. “아따 대한민국 만세다 만세여~”라며 엄마아빠랑 조용히 중얼댔다.


“독도야 잘 있어라” 외치고 돌아온 울릉도에서 각종 독도 기념품도 사고 독도 박물관도 갔다. 독도 주민 1호 최종덕 씨의 삶, 독도가 생긴 지리적 역사와 독도 주변 생태계 변화, 독도 경비대와 독도 수호의 역사와 현재 등 독도의 모든 것을 파고들었다. 그제야 독도에 제대로 다녀온 것 같았다. 사라진 독도 강치와 최종덕 씨, 제주 해녀 이야기가 제일 인상 깊었다. 섬과 함께 살아온 삶의 형태는 다채로웠다. ‘독도 영유권 분쟁’이란 납작한 이야기로만 설명하기엔 독도는 너무나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섬이었다. 자세히 알아야 더 매력적이고 오래 지켜봐야 더 아름다운, 독도는 그런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도에 갔으면 좋겠다. 그냥 ‘우리 땅’이라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 ‘독도’라서 지켜야 하는 이유들이 무궁하다. 이 작은 돌 섬에 담긴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알고 나면 더욱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겠지. 국뽕 치사량 맞고 이제야 더 크게 ‘독도는 우리 땅’이라 외치는 나처럼. 애국심이 없어 고민이신가요? 그렇다면 독도에 가세요!(찡긋)



작가의 이전글 가을, 서울 창포원 나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