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갠지스강 위에서의 사색
어김없이 쉽사리 잠들지 않은 새벽, 어두컴컴한 내 방 천장을 바라본다. 눈을 일부러 감아보는데 이유 없이 찾아오는 불안감이 센 파도처럼 밀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좋은 생각을 하자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그래, 지난 여행 생각을 해보자.' 수많은 기억 속 장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잊기 싫어서 스스로 자꾸 떠올렸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2년이 흐른 지금도 마음먹으면 또렷하게 몇몇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그날따라 내 어두운 방에 활활 타오르고 있던 큰 불빛이 일렁거렸다.
인도 여행 중 마지막 도시인 '바라나시'였다.
난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다. 어느 여행지를 가든 내가 가고 싶으면 가지만 단지 남들이 가라고 해서, 유명해서 가는 곳은 없다. 바라나시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 탄다는 갠지스강 보트 투어. 그 보트 투어는 일출 투어와 일몰 투어, 두 가지로 나뉘는데 솔직히 둘 다 큰 관심은 없었다. 그저 바라나시에 온 이유는 네팔을 육로를 통해 가려고 들리는 겸 이 도시 자체의 분위기가 궁금해서 온 것이다.
바라나시에 도착하고 이틀 째 되는 날 숙소를 같이 썼던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강가 가트 위를 산책했다. 이 곳에 오기 전 사진 속에서 보던 갠지스강은 알 수 없는 신비한 분위기, 오묘한 분위기가 흐르던데 막상 나한테 느껴지는 건 개나 소의 소변 냄새뿐. 인상을 찌푸리고 한참 걸으니 그래도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수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더 이상 불쾌한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고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다고 느껴질 찰나였다. 가로등과 강변 주변 건물에서 나오는 붉은 불빛이 흐르고 있는 강물이 보였다. 수많은 인도 여행자들이 말했듯, '진짜 인도를 느끼려면 바라나시는 꼭 가야 해.'라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저기 강물 위에 둥둥 떠있는 작은 배 여러 척이 두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 동행하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저녁에 일몰 보트 투어를 함께 하기로 했다.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인도인, ‘철수 씨’네 보트를 미리 예약하고 하루를 여유롭게 보냈다. 약속한 시간에 가까워졌고 한국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철수 씨와 우리 모두는 작은 보트 위에 나란히 앉았다. 모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강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갔다. 철수 씨의 능숙한 한국어로 바라나시의 전설, 역사에 대해 들으며 강 건너편을 향해갔다. 배는 모래 위에 멈췄고 철수 씨는 잠시 내려보라고 했다. 건너편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이름의 가트와 그와 엮인 전설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그리고 다 함께 사진을 찍자며 자리를 옮겼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그 모래 속에는 사람의 뼈인지, 다른 가축의 뼈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앙상한 뼛조각들이 흔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있던 내 맨발에 한 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그 모래들이 스쳤다. 내가 어떤 존재들의 지난 흔적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고 있다는 게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어느새 해는 지구 반대편으로 사라지고 가트 위 건물들에서 내는 조명 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철수 씨는 디아에 불을 붙여주며 소원을 빌고 강 위에 띄우라고 했다. 어두운 하늘과 검은 강물 위에서 디아가 내는 빛은 생각보다 강렬한 따뜻한 색이었다. 기도 같은 거 잘 모르는 내가 그 순간만큼은 디아를 두 손으로 들고 마음속으로 평범한 듯 가장 소중한 말하고는 강물 위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거 돈 줘도 안 하는 나이지만 이상하게 여행을 다니며 이런 기회가 오면 일부러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전에 없었던 소중한 것이나,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 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트는 다시 움직였고 방향을 틀어 붉은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어딘가로 향했다. 금세 모터 소리는 잠잠해졌고 강 한가운데 보트는 멈췄다. 우리 보트 주변에도 여러 대의 작은 보트가 있었다. 그 안에는 대부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배들의 모터 소리가 조용해졌을 때, 철수 씨는 말했다.
"여기가 화장터예요."
사실 철수 씨가 말해주기 전 우리의 모든 감각들은 이 곳이 화장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이는 화장터는 분주해 보였다. 줄 지어있는 시신들, 그 시신을 무표정한 얼굴로 옮기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관광객들.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무덤덤해 보였다. 충격을 받아보이거나 슬퍼 보이거나 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죽음' 앞에서 무덤덤했다. 당연하고 초연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며 활활 타오르는 큰 불만 쳐다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불에 타고 있는 시신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쳐다만 볼 수밖에 없는 게, 그게 인생 아닐까. 생을 마감하고 떠나가는 사람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마지막까지 누군가 가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잘 가라고 인사만 해줄 뿐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여러 사람에게 축복받으며 인생이 시작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그건 이 세상에 온 것을 인사해주는 것이다. '잘 왔다고.' 그리고 떠나가는 그 길에는 여러 사람들이 슬픔으로 보내주지만 결국 그것 또한 인사해주는 것이다. '잘 가라고.' 생전 한 번도 마주쳐 본 적도 없지만 멀리 보이는 큰 불 속에 화장당하고 있는, 그리고 화장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조용히 그리고 덤덤하게 인사를 해봤다.
'잘 가라고.'
사색에 잠겨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때쯤 다시 모터의 진동이 온몸에 느껴졌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철수 씨는 말해줬다. 화장터로부터 몇백 미터 지나왔을까. 어린 인도 남자아이들 몇몇 이서 속옷만 입은 채로 그 강물에서 깔깔거리며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같은 공간 속에서 이렇게 상반되는 모습을 연이어 보니 내 머릿속은 더 복잡했다. 아니 어려웠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삶의 시작과 끝은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나 결정된다. 내 의지로 시작된 삶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단 삶이 시작되고 보면 본능처럼 인간은 무엇인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간다. 간혹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할 때도 있다. 그들에게 무능하다고, 게으르다고 한다.
과연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하다면 그건 잘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행복'하지 않은 삶은 보잘것없는 삶일까. 인생은 무엇을 위해 '잘' 살아야 하는 것일까. 지금 이 곳에서 죽을 때까지 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죽는 순간까지 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시신이 어느 강물 위에, 어느 모래 위에 뿌려지길 바라는 그 마음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방황하던 내 생각의 끝에는 '집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때로는 삶에, 때로는 죽음에, 그리고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사소한 것들에 수도 없이 집착한다. 그 집착하는 마음이 살아가는 이 시간을 괴롭힌다. 삶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시작되어 있듯 죽음도 분명 지금도 소리 없이 누군가에게는 조금 가까워져 있고, 누군가에겐 조금 멀리 있는 것뿐. 언젠가 우리는 사라진다. 우리의 의지가 아닌 운명에 의해 우린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듯, 그만큼 너무도 얇고 가늘 수 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런 경계 앞에서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사는 삶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는 그것들이 '사소'하다고 절대 생각되지 않겠지만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사소'한 것들이 된다.
몇 년 전 그렇게도 좋아했고, 갈망했던 어떤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지금은 이별한 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생각 한 번쯤을 해봤을 것이다. '그때 내가 왜 그랬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줄걸.' , '그냥 그 사람을 믿을걸. 별거 아니었는데..' 이렇듯, 우리의 생각과 시야가 내 삶 속 안에만 있으면 작은 것이 더 커 보이고 가벼운 것은 더욱 무겁게만 느껴진다. 물론 그것들의 크기나 무게는 추상적이기에 시간에 따라 내 상태에 따라 계속 변한다. 하지만 인생에는 절대적인 것 몇 가지는 있지 않나. 가끔은 한 발자국 멀리서 보고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아보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조금은 그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고, 그것들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말해본다. '행복'이란 것에 집착을 버리고, '사랑'에 집착을 버린다면 어떨까. 이미 우리 삶은 운명으로 시작됐고, 그 운명을 따라 끝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의지를 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의지는 갖되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자는 말. 일단 시작된 우리의 삶 속에서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믿으며 살아가는 일, 가끔은 미친놈 아니냐며 너무 낙천적인 것 아니냐고 할지라도 마음속에 깊고 튼튼한 낙천적인 운명의 뿌리를 심고 그 나무를 키우고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수많은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엉켜 휴대폰을 꺼내 급하게 짧은 문장을 적고 있는데, 내릴 곳에 다다랐다고 철수 씨가 말했다. 금세 우리가 탄 배는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정박했다. 동행했던 모든 사람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긴 여행의 후반기, 지난 나의 여행을 돌아봤다. 나는 여행하는 동안 이 시간들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모르는 내 미래를 걱정하느라, 남은 돈을 보며 한숨짓느라, 길 위에서 혼자인 것을 외로워하느라, 이별했던 누군가를 그리워하느라,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 없음에 슬퍼하느라, 글을 열심히 쓰지 않는 나를 탓하느라.. 나는 늘 꿈에 그리던 여행이라는 시간 위에서도 불안했고, 걱정했다. 그리고 오늘 한 발자국 멀리서 여행 속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불안했던 이유는 어떤 것에든 욕심을 냈고, 그 욕심이 깊어져 집착이 생겼던 것이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다시 숙소로 걸어가는 그 순간, 모든 것이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아도, '사랑'하지 않고, 받지 않아도, 그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긴 방랑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꼬불꼬불 꼬여있는 미로 같은 길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힌트를 얻은 느낌이었다.
오늘도 끝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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