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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 모든 사람은 감정 노동중입니다.

감정 노동자인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by 기록하는 슬기

지난 나의 20대를 떠올려보면 내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있었다. 늘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랬을까.

나는 20대 때 다양한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봤다. 대형 마트 판촉 행사, 의류 판매, 장난감 시연 설명 및 판매, 명절 선물 세트 판매, 각종 행사장 도우미, 학원 강사, 카페 아르바이트 등 대부분 고객과 직접 소통을 해야 하는 서비스 직종에서 일을 했다. 직업의 특성상 고객들에게 친절히 응대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부당함과 마주했을 때도 항상 상냥한 말투와 함께 ‘미소’를 지어야 했고, ‘죄송’ 해야 했다. 특히 20대의 가장 오랜 세월을 보낸 카페라는 곳에서 기계적인 나의 미소는 계속됐었다.


여러 카페 매장에서 오랜 시간 바리스타로 경험을 쌓고,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프랜차이즈 카페 본사에 정식적으로 취직을 했었다. 그때 나는 매장 직원들의 인사 관리와 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카페는 서울 강남이나 여의도와 같이 사무실이 밀집되어있는 빌딩 숲에서 직장인 상대로 주로 운영을 해왔다.


그래서 아침 출근시간만 되면 카페는 전쟁터를 연상시킬 만큼 바빴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출근길의 고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드’였다. 특히 가장 조심해야 할 기간은 신입 사원이 들어왔을 때였다. 신입 사원들은 이런 빌딩 숲 속의 카페 혹은 사내 카페의 아침, 점심시간의 러시를 처음 겪을 때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 당황은 실수로 이어지고, 그 실수는 손님들의 컴플레인으로 이어지곤 했다.


내가 관리하던 강남지역의 한 카페에 신입 사원인 S가 들어온 어느 날이었다. 이렇게 신입 사원이 첫 출근을 하고 일주일 정도는 나도 직접 매장으로 나가서 교육과 매장 지원을 해주곤 했다.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인 아침 7시가 다가왔고, 각자의 포지션을 정했다. 신입 사원은 대부분 초반에 주문을 받는 것부터 배운다. 다행히도 S는 이 분야의 경력이 없음에도 업무 습득이 빨랐고, 실수 없이 주문도 곧잘 받았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순조롭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낯익은 한 손님이 인상을 쓴 채로 S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요. 이거 제가 주문한 거랑 다른데요?”


나는 당황하는 S 곁으로 빠르게 다가가서 손님의 영수증과 주문 이력을 확인했다. 그런데 받은 주문과 완성된 음료는 정확히 일치했다. 손님에게 확인을 시켜드렸지만 그 손님은 내 말은 듣지 않고 다짜고짜 반말을 섞으며 “아 아니, 이거 내가 시킨 게 아니라고. (주문받은 S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사람이 잘 못 한 거 같은데 빨리 다시 만들어주던지 환불하던지 해줘요. 아 바빠 죽겠는데 짜증 나네.”라고 했다. 그 손님은 S가 새로 온 직원이라는 걸 알았는지 바로 직원의 실수라고 단언 지어 말했다.


이럴 때 우리가 배운 카페 매뉴얼 속 첫마디는 일단 “죄송합니다. 고객님.”이었다. 나는 본사 소속이고 게다가 직원들을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에서 더욱 매뉴얼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얼른 다시 만들어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억지로 미소를 띠었다. 내가 직접 커피를 다시 만들어 그 손님에게 가져다 드렸고, 그분은 내게 죄송하다거나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커피 네 잔만 챙겨서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났다. 사실 이런 에피소드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아마 그 손님은 자신이 손가락질했던 그 직원의 얼굴조차 기억을 못 할 것이다. 나도 이런 일쯤은 무뎌진 지 오래였다.


바쁜 시간이 끝나고 S는 나에게 따로 찾아왔다.

“저.. 아까 그 손님이요.. 제가 실수한 거 아니에요.. 분명 배운 대로 메뉴 한 번씩 다시 확인했고, 그분이 확인하셨었어요..”

그녀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고,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묻어 나왔다. 그녀는 내가 진짜로 그녀의 실수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 알고 내게 찾아와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조건 직원을 믿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이 카페에서 평균 8~9시간 일하는 우리보다 커피 메뉴에 덜 익숙하다. 생소한 단어들로 만들어진 메뉴가 많기 때문에 본인이 시켜놓고도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도 기분은 나빴지만 나는 그저 ‘일반적인’ 에피소드 정도로만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아까 바로 왜 죄송하다고 하신 거예요? 저는 죄송하다고 사과를 바로 하셔서 제 실수라고 생각하시는 줄 알았어요.”


짧은 시간 고민을 하고 나는 답했다.

“회사 매뉴얼도 그렇고, 여기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면 일만 더 커지는 경우가 많아서요.. 혹시라도 앞으로 이런 손님들이 오면 일단은 사과 먼저 하고 관리자를 부르면 돼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 한, 이 분야에 꿈을 품고 입사한 한 사람에게 이렇게 밖에 이야기해줄 수 없는 내가 참 멋이 없었다.




P20180708_164911529_282BBFB1-DDDD-4107-8200-913474932994.jpg 누군가의 꿈을 지켜줄 수 있는 멋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그날 퇴근길, 내 머릿속에 하나둘씩 계속해서 어떤 장면들이 떠올랐다. 지금 막 입사한 S와 같은 시절, 그때의 내 모습이었다. 그 시간 속에 나는 늘 억울했다. 이유를 모른 채 고객과 직장 상사에게 가장 먼저 해야 했던 말은 “죄송합니다.”라는 다섯 음절이었다. 신입 시절 나와 일했던 상사들은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내가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 손님처럼 일단 내 실수라고 단정 지어 나를 혼내고 지적했다.


신입 사원이던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직장 상사들 앞에서는 꾹꾹 참고 밝은 척, 괜찮은 척을 했었다. 그리고 퇴근 후 집에 가 혼자 방문을 닫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나는 1년, 2년, 몇 년을 버텼었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웃으며 고객을 응대하는 나를 보며 감정이 무뎌졌는지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신입 사원 S의 눈물 고인 눈을 보고,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 그동안 나는 그저 참으며 견뎌온 거라고 느꼈다.


사람의 ‘감정’이란 그 순간 느끼는 본능이라 절대 무뎌질 수 없다. 상처가 생긴 부위 바로 위에 상처가 생긴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아픔에 아픔이 더해져 그 부분은 당연히 아프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곪아 버릴 때로 곪은 그 상처가 언제 어떻게 터져버릴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렇듯 어떤 일을 하든 매 순간 ‘감정 노동’을 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감정’은 참는다고 무뎌질 수도 강해질 수도 없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주 지나지 않아 신입 사원 S는 카페를 그만두었다. 그때 나는 그녀가 유독 마음이 여리다고 생각했다. 진상 손님을 대할 때 그녀는 많이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후, 지금 나의 생각은 다르다. 그때 나와 그녀의 동료들 모두는 '그녀는 서비스직에 맞지 않는다고, 마음이 약하다고' 여기고 그녀의 상처를 방치했던 것이다.


그녀가 그만둔다고 내게 말할 때 그녀의 어두운 눈빛과 목소리에는 이 일에 대한 ‘실망감’과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그녀가 입사하기 전에 면접을 본 것도 나였다. 면접을 볼 때 그녀의 눈망울과 단단한 목소리에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었다. 커피를 배워 언젠가 자신의 카페를 내는 게 꿈이라며 분홍빛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난 그녀의 진심을 느꼈고, 경력이 없음에도 그녀에게 높은 점수를 줬었다. 그런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와 오랜 시간 일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분야에 아무런 관심도 없이 단지 짧게 일할 목적으로 지원하는 사람들보다 잘 버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랐다. 기대가 컸던 만큼 그녀에게 이 일의 이면에 있는 어둡고 힘든 점들이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 당시 일했던 우리 카페 매장 직원들이 있던 유니폼 등 뒤에는 고객들에게 자주 하는 말과 하고 싶은 말을 프린팅 했었다. 고객들에게 하루에도 50번은 넘게 말하는 '잠시만요ㅠㅠ'라는 문구와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문구를 넣었었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잊지만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귀한 자식, 귀한 사람이다.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해서 괜찮은 사람은 없다.








모든 일을 혼자 하고 있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요즘은 예전처럼 매 순간 '감정 노동'에 시달리지는 않지만 문득문득 예전의 나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카페에서 몸 담았던 세월이 길기도 하고 지금도 작업을 하러 매일 같이 가는 곳이 카페이다 보니 카페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오래전 내 모습과 그때 누군가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카페뿐만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볼 때 그때의 나도, S도 스쳐 지나간다.


때론 고단함이 잔뜩 묻어있는 그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이 내게 쌀쌀맞을지라도 가끔은 그 사람들이 나 같고, 내 친구 같고, 나의 가족 같아서 이해가 되기도 하고 또 안쓰럽기도 하다. 예전에는 특정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감정 노동을 하고 그로 인해 마음도 몸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는 생계를 위한 노동 속에서, 그리고 그저 살아가는 이 순간순간, 어쩔 수 없이 감정을 노동시킬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니 누군가가 내게 지어주는 다정함과 그 미소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그 미소 위로 어렴풋이 비치는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과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그 감정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다 똑같은 사람이기에.

그리고 우리 모두는 남의 집 귀한 자식, 귀한 사람이니까.







우리가 상처를 받고 또다시 치유받을 수 있는 건 '감정'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감정을 기억하고 또 기록합니다.

저의 기록된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고, 치유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늘 이 자리에서 저는 마음을 기록하고,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브런치 새 글은 매주 월요일, 목요일 발행됩니다.

(가끔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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