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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

죽을 때까지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by 기록하는 슬기


지금 내 나이 30대 초반, 잊을만할 때 즈음 주변 지인들로부터 받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결혼과 관련된 메시지이다. 그중에는 아예 결혼식 날짜까지 다 잡고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는 지인이 있는가 하면, 현재 연인이 결혼을 준비하자고 하는데 막상 결심이 서지 않는다면서 심란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연락하는 지인도 있다. 나는 아직 '결혼'의 '결' 근처도 못 가본 사람이지만 그들의 고민이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간다. 결혼이란 인생에서 손꼽히게 중요한 일임은 분명하니까. 하지만 미혼인 나에게 결혼과 관련된 고민을 말할 때면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몇 달 전이었다. 친구 P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P는 내게 안부 인사를 묻고는 바로 자신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P는 남자 친구 부모님과 상견례 날짜를 잡았다며 이번 연도가 지나기 전에 결혼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곧이어 P는 내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나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니까 너무 하기 싫은 거야. 그렇다고 지금 상견례 날짜까지 다 잡았는데 하지 말자고 할 수도 없고. 에휴. 이렇게 다들 결혼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 조금 우울해."


P의 이 말을 듣고 놀란 이유는 지난번에 연락할 때만 해도 P는 분명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내게 말했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준비해보지도 않아서 그 감정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그런 P를 보며 든 생각은 하나다.



'휴.. 또 갈팡질팡하네..'




어떤 선택이든 가장 중요한 건 '나'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믿음.



P는 자신이 어떤 고민이 있거나 어떤 선택 앞에서 헷갈릴 때 내게 연락을 자주 했었다. 그때마다 P는 늘 마음이 쉽게 변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잘 휘둘렸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어떤 결심을 한 후에도 한참 동안 그 결심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렸다. 내가 느끼는 P는 자기 생각과 주장이 약하다 못해 없는 것 같았다.


P와 대화하는 도중 P가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아.. 그래?"

"그런가..?"

"아.. 그럼 난 어떡하지?"


나와 이야기를 하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든 P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확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어떠한 결정 앞에서 P는 자신의 선택과 자기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P에게 내가 결혼이라는 중대한 일에 대해 뭐라고 말해주기 어려웠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P에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해주고 싶어 졌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김영하 작가의 강연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 말했다.


"내가 결혼 문턱 앞에도 안 가본 사람이라 너한테 결혼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얼마 전에 김영하 작가 강연을 봤는데 그중에 너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야기해.

자신의 생각이나 결심이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을 잘 느끼는 사람이래.

우리가 어떤 경험을 겪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의 감각은 자극을 받고 그렇게 우리는 감성, 감정을 느끼고 알게 된데. 이걸 김영하 작가는 '감성 근육'이라고 표현했어. 그리고 이 감성 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의 감각과 감정을 추상적으로 느끼고 인지하기보다 언어적으로 확실히 표현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자기 기분, 감정,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다 보면 더 명확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된데.


내가 지금 너한테 당장 글을 쓰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물론 쓰면 더 좋지만.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네가 느끼는 감정, 네가 하는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누군가는 너와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도 굳이 네가 그 말 하나하나에 흔들릴 필요는 없어.

너를 의심할 필요는 더 없어.


앞으로 나도 너도 결혼보다도 더 큰 고민을 안고 또 선택하고 살아갈 거잖아.

그때마다 미세한 흔들림은 있겠지.

그런데 불어오는 바람에 매번 흔들리고 꺾이고 부러진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는 우리 인생이 너무 고되고 버거울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 하나야.

네가 어떤 고민 끝에 어떤 결심을 내리든 너의 선택을, 그리고 무엇보다 너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어."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제 이야기와 누군가의 이야기가 곧 당신의 이야기이고, 그래서 누군가와 당신 그리고 제가 서로 공감하며 서로를 알아주리라 믿습니다.

진심을 담아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브런치 새 글은 매주 월요일, 목요일 발행됩니다.

(가끔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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