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글 쓰는 프리랜서로 생존한 지 1년, 꿈과 현실에 대하여.
2020년 11월 22일, 설렘보다는 조금 더 무겁고 진지한 마음을 꼭 안은 채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그 당시 나의 제주행 목적은 단순했고 뚜렷했다.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없는 낯선 곳에서 혼자 글만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내려왔다. 예상했던 기간은 한 달, 길면 두 달이었다.
제주에 내려온 직후, 브런치 1일 1포스팅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나는 매일 글을 써야 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 속에서 미션들을 성실히 수행했다. 매일 글을 쓰는 일상은 생각보다 벅찼지만,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면서 나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매일 글을 쓰면서 돈을 벌 수는 없을까, 글로 돈을 벌며 생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때부터였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인 제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인 글쓰기를 하며 먹고 살아보자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제주살이의 기간은 '개월'단위에서 '년'단위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전부터 도전해보고 싶었던 메일 구독 서비스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메일 구독 서비스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한 건 아니었다. 이전부터 궁금했다. '매일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따끈따끈한 나의 이야기를 보내는 느낌은 어떤지, 그리고 과연 내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
당시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도 메일 구독 서비스를 진행하고 계셨었는데, 작가님께서는 가끔 브런치에 메일 구독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공유해주셨다. 그 작가님은 이미 출판한 책도 상당히 많았고, 그중에 몇 권은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그런 작가님께서 말씀해 주시길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고 처음 1~2년은 구독자가 30~50명 정도였다고 하셨다. 2년이 지나고 나서 차츰차츰 구독자 수 가 늘어서 100명 가까이 됐다고 하셨다.
2021년 1월, 나는 슬기 드림이라는 메일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작가님의 글을 먼저 읽어서 그런지 애초에 구독자 수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감사하게도 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슬기 드림에 구독을 신청해주셨다. 물론 1월 호는 나를 응원하는 지인들도 신청을 해주시기도 했지만 브런치나 블로그만을 통해 내 글을 접하신 분들의 신청이 훨씬 많았다.
공모전 이외에 내 글로 돈을 벌어본 건 처음이었다. 그게 얼만지 그 액수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내게는 이 사실 자체가 너무도 소중하게 와닿았다. '나의 글을 궁금해하고, 나의 글을 매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도 그들의 소중한 가치를 투자할 정도로.' 그 사실만으로 앞으로 나는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마구마구 솟구쳤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다섯 번 (월~금요일)씩 메일 구독 서비스에 보내는 글을 썼고, 동시에 일주일에 두 번씩 브런치에 새 글을 연재했다. 정말 딱 일주일에 7개의 글을 썼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렇게 새로운 글을 쓰는 건 고되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느끼는 보람도 컸다. 그렇게 하루하루 피곤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만끽하며 글 쓰는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모아둔 돈이 소리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계속해서 쓰려면 어떤 일로든 돈을 벌어야 했다. 슬기 드림 구독 서비스만으로는 생활 자체를 이어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불안한 만큼 알바 사이트를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나도 30대가 넘은 나이인지라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난 20대 때 고된 알바를 너무 많이 하면서 몸 여기저기가 망가져있는 상태였기에 어렸을 때처럼 무턱대고 이력서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시 차분히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 능력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달에 빠져나갈 월세와 아끼고 아낀 카드값이 나가는 날이 다가올 무렵, 나는 크몽이라는 프리랜서 마켓 사이트에 가입을 했다. 처음에는 그 사이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고민만 했었는데, 점점 삐쩍 말라가는 내 통장 잔고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전문가 신청 폼을 꼼꼼하게 작성해서 제출했다. 내 간절함과 내 텅장 사정을 알아차린 건지 단 하루 만에 크몽 전문가로 승인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나의 글쓰기 능력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슬기 드림 메일 구독 서비스는 계속해서 연재를 했다. 어쩌면 내가 꿈꾸던 일이었다. '글로 먹고사는 일',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이곳 제주도에서. 하지만 막상 첫 번째 꿈이자 목표를 이뤘는데도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현타가 더 몰려왔었다. 나와는 아주 상관없는 글을 써야 했고(제품 설명이나 주로 마케팅에 필요한 글), 그 글을 쓰고 나서는 그 어떤 '보람'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 대비, 돌아오는 액수는 너무도 적었다.
그래도 일단은 먹고사는 일, 생계가 해결되어야 하니 원고 문의가 오는 대로 받아서 바쁘게 일을 했다. 그즈음이 2021년 7월~8월이다. 이 두 달 동안 내 일상은 단 두 곳에서 모든 것이 이뤄졌다. 카페에서 원고 작업을 하고, 늦은 밤 집에 돌아가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이게 다였다. 그렇게 매일 밤낮없이 업체에서 의뢰하는 원고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이대로 가도 괜찮을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크몽에서 원고를 받으며 일을 하면서부터 시간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내 글을 기다리는 구독자님들께 보내야 하는 슬기 드림 구독 서비스에 이전보다 시간적으로, 마음적으로 집중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원고를 쓰면서 기본적인 생계는 해결할 수 있게 됐지만 내 텅장 사정은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쭉 가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하다가 나는 원고 작업과 메일 구독 서비스, 모두 다 잠시 쉬었다가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슬기 드림 구독 서비스는 2021년 1월부터 8월 말까지 쉼 없이 연재를 이어왔지만 9월 호부터 휴재를 했다. 그리고 크몽에서 원고를 받아서 하는 일은 최소한의 작업만 이어오고 있고, 이 마저도 계속해서 줄이고 있다. 이러지 않으면 내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 원고 작업만 죽어라 하다가 이 제주도 생활이 끝날 것 같았다.
잠시 쉬었다가 가기로 다짐한 지 어느덧 2개월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달력은 벌써 11월을 단 3일만 남겨놓고 있다. 이렇게 2021년도 한 달뿐이 남지 않게 되었다. 길었던 해가 짧아지고, 습했던 바람이 건조해지고, 뜨거웠던 태양이 따뜻하다고 느껴질 때면 자연스럽게 한 해를 뒤돌아보게 된다. 특히나 나에게 있어서 2021년은 낯섦과 익숙함, 도전과 좌절, 뿌듯함과 허무함, 성공과 실패, 웃음과 눈물로 가득했던 해였기에 더욱이나 큰 의미가 있다.
아직 2021년 1개월이나 남아있지만, 제주도에 내려와 글쓰기를 하며 산지는 딱 1년이 됐다. 좋아하는 곳에서 생계를 해결하며 사는 일은 실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히 해결한 것 도 아니다. 굳이 O, X 중에 하나를 그리라고 한다면 나는 어정쩡하게 △ 세모를 그려야 할 것 같다. 이 세모인 상태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요즘, 나는 조금 힘이 빠졌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산다는 건 그저 나만의 욕심이었을까?'
근 한 달 정도 나는 글쓰기를 외면했었다. 돈을 벌기 위한 글도, 나를 위한 글도, 구독자님들을 위한 글도, 쓰기 어려웠다. '글쓰기'로 근 1년 간 빠듯하게 먹고살다 보니 그 행위가 내게 주는 주된 감정은 '고단함'과 '서러움'뿐이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건지, 정말 나는 글쓰기를 원하는 건지.
지금도 사실 그 어떤 질문에 대한 답도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시기를 몇 번이나 겪을 때마다 선명하게 보게 되는 내 모습이 있다. 글을 한참이나 멀리하다가도 어느샌가 나는 다시 이렇게 자연스레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그리고 하얀 공백 위에 빼곡하게 나의 슬픔과 절망, 실패를 고백하고는 이내 다시 일어날 힘을 되찾은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 2021년 1월에 내가 남긴 브런치 글 중에 '2021년 나의 새해 목표'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그때 나는 새해 목표에 대해 이렇게 적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인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2021년 12월을 코앞에 둔 지금, 돌아보니 그래도 나 이거 하나만큼은 끈질기게 지켜왔다.
만약 지금 내게 이른 2022년의 목표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고 싶은 이 욕심을 쉽게 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답이 △ 세모일지라도, 이 세모를 X 엑스로 바꾸지 않는 것,
이왕이면 너무 늦지 않는 시기에 그 답을 O 동그라미로 바꾸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제주라는 곳을 배경으로 했던 일은 매일 혼자서 글을 썼던 것이 80-90% 이상이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글 앞에서 처참히 무너지기도 했고, 눈물도 흘렸고, 또 사무치게 외롭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를 겪은 덕분에 나는 내가 하는 일과 내가 지내는 곳을 조금 더 깊게, 진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진정한 사랑은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과 같이 상반되는 감정과 경험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고 믿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아니, 앞으로 계속 글을 쓸 것 같다.
몇 번이나 나를 무너지게 했을지라도 그 몇 번 이상으로 나를 일으켜줬던 건 '글'이니까.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브런치에 새 글이네요.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 건지, 무작정 제주에 내려와 산지 1년이 되어서 그런 건지,
요즘 저는 글쓰기와 꿈, 삶, 현실 등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어요.
꼭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직 저는 이 문제에, 이 꿈에 조금 더 도전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이 욕심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 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공감하며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 항상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는 글을,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며 즐길 수 있었어요.
응원해주시는 마음 늘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받은 마음, 그 이상으로 여러분의 삶과 꿈, 현실을 진심을 다해 응원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기록하는 슬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