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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브런치북 공모전 결과가 내게 알려준 것

3년에 걸친 나의 브런치북 공모전 도전기

by 기록하는 슬기

5일 전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은 후,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였다. 너무도 조용한 내 휴대폰을 들어 올려 sns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요즘 새 글은 자주 올리지는 못하지만 왼쪽 상단에 초록점(내 소식)이 생겼을까 궁금해하며 하루에 한두 번은 꼭 브런치에 들어가 본다. 그날도 늘 그랬듯 내 엄지 손가락은 브런치 어플을 눌렀다. 그러자 못 보던 팝업창이 하나가 떴다. 그 안에는 진한 폰트로 한 문장이 쓰여있었다.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위에 한 문장을 보자마자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맞다. 오늘이 브런치북 공모전 발표날이었다. 물론 나도 이번 브런치북 공모전에 출품을 했다. 그런데 발표날은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 솔직히 발표날을 일부러 잊으려고 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내가 브런치에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2019년 8월부터다. 그래서 2019년 10월에 열렸던 제7회 브런치북 공모전에 참가는 했지만 정말 마음을 비웠었다. 브런치 북이라는 것을 처음 만들어봤고, 애초에 글을 발행할 때 책 한 권을 쓴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지만 대학교 4학년 때 1년 내내 논문을 썼던 기억을 되살려가며 주제를 잡고, 목차를 잡고, 책 한 권을 엮어냈다. 물론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래도 내 이름으로 한 권의 책이 나온 것 같아서 신기했고, 뿌듯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 해의 브런치북 공모전은 정말 제대로 준비해보겠다고 다짐, 또 다짐을 했다.


2020년 한 해도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써왔다.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왔고,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 소식이 브런치 작가들에게 전해졌다. 다른 공모전은 몰라도 브런치 출판 공모전에는 후회 없이 최선을 다 하고 싶었다. 일주일 내내 공모전에 출품할 브런치북을 만들기 위해 모든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다. 그동안 꾸준히 써놓은 글이 많아서 두 권의 브런치 북을 만들었는데, 브런치북 하나당 책 제목도 약 20~30개씩 적어보고 고치고, 골랐다가, 다시 골랐다가를 반복했다. 이어서 목차를 짜고, 글을 고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앞머리를 쥐어뜯으며, 카페 구석에서 마스크 속으로 깊은 한숨을 푹푹 쉬어가며 그렇게 출품을 마쳤다.


2020년 12월 21일, 제8회 브런치 공모전 수상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어떤 상이라도 받게 되면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메일을 통해 연락이 왔을 테니까. 아쉬운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건 내가 최선을 다한 내 글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는 말과 같다. 솔직히 아쉬웠다. 많이. 하지만 동시에 그 결과가 쉽게 받아들여졌다. 애초에 이 공모전에 출품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최선을 다하자.'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까.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작년에 발행했던 브런치북 세 권 모두 브런치 메인에 올라가서 사실 남몰래 기대했었다고 한다. <2020. 12. 브런치 PC 캡처>



그런데 이번 연도는 달랐다. 브런치에서 내 글을 적어도 1년 전부터 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2021년 5월 이후로 새 글을 발행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적어도 매주 1~2개의 새 글을 발행했었지만 어느새 한 달에 발행하는 새 글이 1~2개뿐이었다. 물론 그동안 글쓰기를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연도 1월부터 시작한 슬기 드림 메일 구독 서비스를 계속 연재하고 있었고, 동시에 돈을 벌기 위한 원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브런치에는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글로 먹고살아보겠다는 도전을 하고 나서부터 정말 치열하게 글을 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통장 숫자는 삐쩍 말라져만 갔고, 점점 글에 대한 뜨거운 마음도 서서히 식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브런치 공모전은 그냥 지나치기 싫었다. 그래서 작년에 엮어둔 브런치 북 두 권, 올해 지난 파키스탄 훈자 여행기로 엮어 둔 브런치북 한 권을 출품했다. 그리고 그동안 제주살이를 하며 써내려 갔던 이야기들을 발행해서 '불안한 제주에서의 삶이 좋습니다.'라는 새로운 브런치북을 만들어서 출품했다. 그것도 공모전 마감 당일, 몇 시간 전에 모든 출품을 마쳤다. 그러고 나서 나는 브런치북 공모전에 대해 잊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2개월 정도 후, 예고 없이 맞이하게 된 수상작 발표 소식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최선을 다 하지 않은 걸 알고 있었기에 기대는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상작 목록을 보던 도중 익숙한 한 작가님의 이름을 보고는 기분이 묘해졌다. 구독까지 하면서 글을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가끔 추천 글 리스트에 뜨면 공감하며 읽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가님도 정말 꾸준하게 글을 쓰시는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축하한다는 마음보다는 부럽다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고, 이내 내 가슴에는 '후회'라는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


이번 제9회 브런치북 공모전에 응모작이 총 5,900여 편에 달한다고 한다. 이중에 단 10편만이 대상으로 뽑히니, 수상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리고 나는 생각해봤다. 이렇게 힘든 공모전인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게다가 이번 연도 전체로 놓고 봤을 때 나는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쓰지 않았으면서, 왜 후회하는 걸까.


내 후회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최선을 다 하지 않았던 나 자신'때문이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면서 나도 모르게 '혹시..?' 하는 기대감을 속으로는 품고 있었기에 더욱 그 후회가 진하게 다가왔다. 사실 최선을 다 했던 작년 공모전보다 혹시 모를 '운'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운'과 같은 것을 더 기다리고 기대하게 된다는 것을,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지만 또 동시에 나란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 또한 '나'이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지 않았을 때 더욱 '요행'을 바라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이번 공모전 발표 소식은 내게 오랜만에 부러움, 질투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줬다. 요즘 나는 내적으로 크게 어떤 감정에 동요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서 비대면으로 일을 하고 있고, 일 외적으로도 어떤 사람이나 사건도 호수 같이 잔잔한 내 마음에 그 어떤 작은 일렁임도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99% 예상 가능했던 브런치 공모전 발표 결과를 본 이후로 내 마음에는 꽤 높은 파도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예전에는 이렇게 마음속에 거센 파도들이 몰려올 때면 그 파도들을 감당하기 조차 버거웠다. 몰아치는 그 파도들을 하나하나 다 막아내고 받아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 파도들은 내게 쓰라린 상처를 주기 위해 치는 파도가 아니라, 고여있던 내 마음의 잔잔함을 깨 주는 하나의 건강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파도들 덕분에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아직 나는 '글' 앞에서만큼은 잔잔한 호수가 되기 힘든 뜨겁고도 일렁이는 그 진심을 갖고 있다는 것,

좋은 글 앞에서 나는 부러움을 넘어서 알량한 질투심이 자주 생겨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질투심은 결국 나를 움직이고, 다시 쓰게 만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듯이.






물론 공모전 당선이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자 목표는 결코 아니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내가 걷는 어두운 이 길 위에서 아주 짧고 희미한 빛을 만나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잘 걸어온 것이라고, 그러니 앞으로도 난 잘할 수 있다는,

그런 확신들을 가끔씩은 느끼고 보고 싶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는 어둠이 짙은 이 길 위에서 언젠가는 밝은 빛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대신 그 빛을 만나려면 어둠 속,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안 되겠죠.

그래서 저는 멈춰있지는 않으려고 해요.

물음표보다는 느낌표를 꼭 껴안고 일단은 움직이고, 또 움직여보려고 해요.


항상 저의 움직임과 기록을 지켜봐 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여러분의 의미 있는 움직임을 응원하고, 또 응원합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이렇게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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