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운명을 지니고, 지키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을 꼽으라고 한다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어요. 바로 '윤종신'이에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토이, 015b, 하림과 같은 가수의 노래를 좋아했던 저에게 윤종신은 예능인 이전에 가수, 그리고 너무 닮고 싶은 작사가였어요. 그때부터 저는 90년대 발라드의 멜로디를 좋아했고, 그중에도 노래 '가사'를 참 좋아했어요.
노래 들을 때 멜로디를 위주로 듣는 사람이 있고,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후자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윤종신 특유의 생활 밀착형 발라드 가사를 정말 좋아했어요. 사실 좋아했다는 표현보다 그런 가사를 쓸 수 있는 그 사람의 재능과 센스를 동경했고 또 질투했어요. 저는 예전부터 '글'로 감정을 표현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유독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 후에도 윤종신이라는 뮤지션이 점점 더 좋아진 이유는 2010년부터 2021년인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는 '월간 윤종신'이라는 프로젝트 때문이기도 해요. 프로젝트 이름 그대로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노래를 발표해요. 새로운 작품을 정해진 기간 내에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일이 힘들다는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하죠. 그래서 저도 10년 전부터 매월 노래가 발표될 때마다 늘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제가 재작년부터 꾸준히 글을 써보니까 온 몸으로 느끼고, 알겠더라고요. 그리고는 대단하다는 감정을 넘어서서 그 꾸준함에 물음표가 생겼어요. '어떻게 자신의 직업을 저렇게 오랜 시간 사랑하면서 그 안에서 성실히 해낼 수 있을까?' 하고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월간 윤종신 2020년 12월에 발표한 'Destiny'라는 곡을 통해 명확히 알게 되었어요. 다음은 Destiny에 대한 설명글 중 일부인데요. 제가 늘 품고 있던 윤종신이라는 사람에 대한 의문점들을 풀 수 있던 문장들이 나와요.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그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시도해본 것 같아요. 음악뿐만 아니라 방송도 해봤고 회사도 해봤고 또 다른 가수를 키우는 일도 해봤죠. 저는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지금도 알아가고 있어요. 나는 어떤 게 가능 혹은 불가능한 사람인지, 어떤 길이 내가 가야 할 혹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인지, 내게 주어진 역할이 어떤 것이고 어느 선까지 해내야 하는지 알게 되었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기 때문에, 그랬는데도 결국 내가 아직도 하고 있는 건 음악이기 때문에, 저는 음악이 제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고요. 물론 그래서 음악을 더 오래 잘해보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요. 자신이 어떤 운명인지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돌고 또 돌아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월간 윤종신 유튜브, Destiny 본문 中)
그러면서 윤종신은 말해요. "운명은 태생적 운명이라기보다는 경험을 통해 발견해가는 것이 운명"이라고요.
맞아요. 돌이켜보면 윤종신도 가수, 작곡가, 작사가로서만 살지는 않았어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았고, 지금도 그렇게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경험이 있기에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생긴 거죠. 꼭 어떤 한 가지 꿈을 쫓아간다기보다 그 꿈으로 가기까지의 과정들이 있었기에 자신의 역할, 자기 자신의 운명이 선명해진 거죠.
그리고 저를 뒤돌아봤어요. 아직 삼십 년 조금 넘는 세월을 살았지만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자발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겪었죠. 그랬기에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의 운명으로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제주도에 내려온 후에는 '글'도 글이지만, '생계'라는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을 쉬는지 몰라요. 가까운 친구들은 이런 제가 걱정되는지 조심스레 이렇게 말해주곤 해요. "금전적으로 많이 힘들면 다른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건 어때? 그렇게 되면 많이 힘든가..?"라고요. 맞아요. 그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해요. 지금 현실적인 제 상황에서 '글'로만 생계를 이어간다는 도전은 무모함을 넘어선 멍청함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요,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들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항상 '글'을 저는 항상 두 번째, 세 번째로 놓고 살아왔어요. '이번에 퇴사하면~', '여행이 끝나면~', '돈을 조금 모아놓고~'와 같이 인생 속 1순위는 '글'이 아닌 다른 것들을 선택했죠. 그렇게 밀리고 밀린 '글'이 언제 제게 1순위가 됐냐고요? 정말 금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준비가 다 되어서 지금 이렇게 글에 매진할 수 있는 걸까요? 결론적으로는 그 반대예요. 제가 딱 서른 되던 해에 인생 최악의 시기라고 불릴 만큼 몸도 마음도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그렇게 바닥을 치고 있는 방황의 끝 무렵,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는 매일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 후, 오래 걸렸지만 '글'로 인해서 저는 다시 일어났어요. 그리고 마음먹은 거예요.
'나는 글을 써야겠구나.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겠구나.'라고요.
언젠가는 이 글이라는 운명을 선택한 저 스스로를 원망하는 날도 오겠죠. 지금도 월세 내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카드값이 나가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심장과 위장을 조여 오는 스트레스는 상상 그 이상이더라고요. 그리고 글이라는 거, 늘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잖아요. 저 글 앞에서 마냥 행복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30년 동안 음악을 해온 윤종신 같은 뮤지션도 음악 앞에서 늘 행복할 수는 없었겠죠. 모두 다 이런 시간과 과정을 견뎌냈으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도 음악 앞에서 고민하고, 한숨 쉬는 시간이 대부분 일 거예요.
생각해보면 이건 비단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 창작자의 삶에만 해당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는 맡은 역할과 운명 앞에서 늘 즐거울 수도, 웃을 수 없죠. 아니 조금 더 직설적이게 말하면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 쉬고, 참고, 삭히고, 견디는 시간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이유가 됐든 나의 역할과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죠.
맞아요. 삶에서 나의 역할이란 운명이란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고단할지라도 아무리 힘겨울지라도 일단 그 자리를 지키는 거요. 그 일을 해내는 거요.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거요. 제가 윤종신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저렇게 꾸준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을까.'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이거 같아요. 삶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생각과 태도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요 며칠 저 사실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다고,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에요. 그런데요, 저는 그 와중에도 뭔가를 쓰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모든 사회 경험을 20대 때 다 해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글쓰기'만큼 제게 '욕심'나게 만드는 건 못 찾았다는 것을요. 몇 년 뒤 또 다른 저의 역할과 운명이 생길 수 있겠지만, 전 아마도 '글'이란 운명 앞에서 쉽사리 도망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오늘도 써요. 제가 선택한 역할과 운명에 충실하고 싶어요. 다시는 후회 같은 거 하기 싫어요.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제가 쓴 글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싫어요. 내가 다짐하며 쓴 글 속의 나와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글 속 나와 비슷해지고 싶고, 그렇게 변하고 싶어요.
그게 제 진심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운명이자 삶이니까요.
삶이라는 운명을 만들고, 지키고, 살아내시느라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또 응원합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느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