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반성, 깨달음, 다짐'만큼은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합니만..
사적인 만남을 제외하고 내가 어디를 가든 꼭 챙기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은근히 부피도 무게도 나가는 다이어리다. 내 다이어리는 사실상 스케줄러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물론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 고민 등이 모두 담겨있기는 하지만 다이어리 안에 가장 많이 보이는 문구는 '오늘 해야 할 일 (0월 0일 0 요일)'이다.
이제는 스케줄러로 사용 중인 다이어리지만 그래도 가끔씩 정말 가슴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날, 혹은 어떤 상황과 어떠한 마음 때문에 그날을 기억하고 싶을 때에는 아무런 필터를 거치지 않은 나의 생각들을 모두 기록하곤 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나의 감정, 생각, 고민 등에 대한 문제를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써왔다. 본가에는 10권이 넘는 일기장들이 책장에 꽂혀있는데, 정~말 심심할 때는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서 과거의 나를 자주 만나고 오기도 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고, 그에 따른 경험을 하게 되면서 나의 고민과 걱정들은 바뀌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중학생 때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대 때나 내 일기장의 결론 부분에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사가 있었다. 그 동사는 '깨달았다.'라는 말이다.
어렸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욱 '내 탓'을 하기 바빴다. 특히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았을 때, 그 결과의 원인은 모두 '나'였다. 그래서 내 일기장에는 나에 대한 반성과 깨달음, 그 후에 새로운 다짐이 적혀있었다. 지나간 일기를 읽을 때 가끔은 그 당시에 그러한 고민을 누구한테 말하지도 않고 스스로의 탓으로 돌리며, 그럼에도 어떻게든 정신승리를 하려던 어린 내가 보여서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왜 과거의 나는 그렇게 비슷한 결의 일기를 반복해서 썼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자꾸만 반성과 깨달음의 일기가 계속되었다는 건 일단 결과적으로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지 않고 모든 것을 남의 탓을 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기는 하다. 왜냐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뒤돌아보고 뭔가를 깨닫는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그 시간 동안 지니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단 하나다. '항상 나에 대해 돌아보고, 내 문제점을 파악하고, 깨닫는다. 그리고는 새로운 다짐을 한다.' 그렇다 내 문제는 딱 거기까지 였다는 것이다.
깨달은 후에 행동하지 않았었다. 행동을 했다고 해도 그 행동은 지속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내 탓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나 스스로를 이렇게 늘 뒤돌아보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같은데 왜 잘 안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억울해하기도 했었다. 과거의 나는 이런 어딘가 모를 찝찝한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저 억지로 '그래도 이렇게 계속 노력하면 될 거야!'라고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마음 한구석에는 해결되지 않던 찝찝함에 대해 시원한 정답을 얻게 된 건 불과 2~3년 전이다. 어떠한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있던 건 아니다. 그때도 평소와 같이 전화로 친구의 고민상담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때 친구는 오래된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큰 고민이 있었다. 남자 친구가 가지고 있는 건강하지 못한 습관들에 대해 친구가 고쳐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음에도 전혀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는 이 상황이 더 답답한 이유를 덧붙였다.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매번 남자 친구는 친구에게 "나 이제 정말로 내 습관에 대해서 심각성을 깨달았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나도 내 문제점들을 고치고 싶어. 아니, 고칠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기다려봤지만 결국 남자 친구는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건 내 생각인데, 아무리 백번 스스로 깨달았다고 해도 그 후에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그건 정말로 깨달았다고 말하기 힘든 것 같아. 자신을 뒤돌아보고 그 문제를 인식하는 건 생각보다 쉬워. 그런데 그 문제를 실제로 고치는 것도, 고치려고 노력하는 게 가장 어려운 거지.."
그 말을 친구에게 하자마자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밝은 전구가 탁하고 켜지는 느낌이었다. 그 말은 친구에게도, 친구의 남자 친구에게도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난 10년 넘는 시간 동안 반성하고 깨닫기만 했던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후로 나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것들을 깨달았다면, 처음에는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일단 하려고 한다. 만약 정말 진심으로 깨달았음에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그 깨달음이 진심이었다고 착각을 한 것이거나 아니면 나 자신을 생각보다는 끔찍하게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프로 자기 반성러와 깨달음러로 살아오며 느낀 것이 있다면, 나 스스로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반성과 깨달음은 대부분 진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과 내 인생을 아끼는 마음 또한 생각보다 더욱 애틋하고 진실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너무도 쉽게 갖게 되는 안일한 마음이 드는 것도, 그래서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 또한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반성하고 깨닫는다.
그리고는 늘 마음속으로 이 말을 되뇐다.
"행동하지 않는 반성과 깨달음은 내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
깨달았다면 변하자. 변하려고 노력하자.
내 인생을 아낀다면,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란다면,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움직이자.
순간의 안일함과 귀찮음에 너무도 쉽게 내 인생을 넘겨주지 말자."라고.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반갑고, 고맙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과 시선으로 제 글을 읽어주시고 느껴주시는 분들 덕분에
저는 아직까지 깨닫고, 다짐하고, 다시 쓰고, 움직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